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가 열등감과 피해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고, 피해의식은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하는 피해자의 마음입니다.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은 긍정적인 힘으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이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기에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만약 치유되지 못하면 늘 남과 비교하면서 경쟁심과 시기심의 노예로 살게 되고 더 나아가 누구 때문에 어떤 일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는 피해의식 속에서 가장 어리석은 삶의 태도인 ‘남의 탓’을 하며, 삶을 불행하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크게 생각해서 남이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피해의식, 자격지심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기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학벌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출신이 다르다고,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나한테 늘 이렇게 잘못 대우하니까 잘 안 되는 거잖아! 나만 늘 손해를 보고 있잖아!’
열등감과 피해의식의 시작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한 이후부터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사망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가 오히려 해결하지 못할 죄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뒤에 숨는 열등감이 생기게 되었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아담은 하와 탓, 하와는 뱀 탓을 하며 ‘남의 탓’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손으로 태어난 가인은 자신의 제사는 열납되지 않았다는 열등감 속에서 제사가 열납된 동생 아벨과 비교하면서 분노하였고, 결국 아벨 탓을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동일하게 우리 안에 있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이용하여 분노와 미움, 좌절과 절망의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며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실 구세주 예수님은 가장 작은 자, 가장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여관에 빈방이 없어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천민의 마을 나사렛에서 당시 천한 직업인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세리와 창기와 같은 당시 죄인 취급 받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고, 33살 젊은 나이에 가장 극악한 죄인의 사형틀인 십자가에서 벌거벗김을 당하시고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신 후 가장 치욕적으로 죽으셨습니다. 어디에도 위대하고 흠모할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의 구세주, 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구세주 예수님이 내 안에 충만해지면 어떤 열등감도 이길 수 있습니다. 피해의식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참한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확실하게 붙들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미칠 듯한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보다도 더 큰 십자가의 능력으로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이겨내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