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신천지에 빠진 지인 분을 걱정하며 질문을 했다. 자신이 아는 지인 분인데 25년 동안 성실하게 신앙생활하며, 누가 보더라도 독실하고 바른 기독교인이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신천지로 교회를 바꾸더니, 남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신천지가 사실 잘 알고 보면 이단이 아니라, 도리어 정통 교회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리고 오히려 동창 친구에게 “자신이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거 보면 이단이라는 곳에 빠질 사람으로 보이냐”며 반문을 했단다. 그리고 그 지인 분이 이단이라는 건 기존 기독교 기득권 세력(장로, 감리, 침례)의 모함이라며, 신천지를 믿을 것을 권유했단다. 그러면서 제 친구가 도대체 왜 이런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신천지’와 같은 이단에 빠지는지를 질문했다. 참 중요한 질문이라 생각해서 이에 대해 쉽고 명확하게 답변을 했다.
왜 독실한 기독교인이 이단에 빠질까?
사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원래 이단은 성경이나 기독교에 대해 모르는 비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성경이나 신학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사람 중에 나온다. 초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성경을 가르치고 해석한다는 소위 신학자나 목회자들 가운데서 이단이 출현했다.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를 아는데, 진실을 왜곡해서 알 때 이단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한국의 일제 3년 식민지 시절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극명하게 다른 두 해석이 존재한다. 민족 사관학자들은 그것을 일본에 의한 한국의 암흑기로, 식민사관 학자들은 일본을 통한 한국의 근대화로 해석한다. 왜 그럴까? 식민사관 학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은 역사적 사실을 몰라서 식민 사관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알지만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처음부터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가진 게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다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이단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 꾸지람을 받은 그룹은, 사실 성경과 율법에 대해 무지했던 가난한 자들, 억압 받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학자들, 도덕적으로 흠이 없었던 바리새인들이었다. 이들은 성경을 아는데 사실을 왜곡해서 알고,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데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이라고 꾸지람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단은 과연 기존 기독교 기득권 세력의 모함인가?
이단들이 흔히 주장하는 논리인데,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사실 자신들의 자리매김을 위해서 그렇다. 예를 들면, 어느 학교에 새로 전학 온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낯선 환경과 새로운 친구들로 채워진 반 분위기에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건 아마도 그 반에서 제일 힘센 애한테 무조건 시비를 걸어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면 설령 져도 그 힘센 애 하고 싸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아이들에게는 강하게 인식된다.
사실 이단도 이와 비슷하다. 무조건 기존 기독교를 부정하고 틀렸다고 논쟁을 벌여, 사람들의 관심도 끌고 한 종교 단체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다.
왜 이단이 생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새롭고 자극적인 요소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 인간의 심리가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신문에 "예수님은 사랑이다" 라는 제목과 "예수님이 마리아와 결혼했다" 는 두 기사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느 기사를 더 많이 클릭할까?
아마도 당연지사 후자일 것이다. 이는 아주 중요하고 단순한 진리보다, 자극적인 요소에 관심을 갖는 인간의 심리 때문이다. 일전에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댄 브라운이 저술한 소설 "다빈치 코드",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 이라는 책이 한 때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것도 비슷하게 새롭고 자극적인 요소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한 결과이다.
이단도 이런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다. 기존 기독교와는 다른 새롭고 자극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필자가 히브리대학에서 수학할 때, 한 역사학 교수가 세미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매년 수 많은 크리스천 기자들, 소설가들이 이스라엘에서 예수에 대해 전혀 색다른 것을 찾고자 혈안이 되어있다고 말이다.
올바른 기독교의 모습은?
이단이나 잘못된 교리는 언제나 분열과 갈등, 대립과 논쟁을 불러일으켜 때로 가정이 파괴되고, 인간 관계를 해치지만, 올바른 기독교는 관용과 사랑, 포용과 인내로서 가정에서도 이 사회에서 존중과 섬김을 실천하는 종교이다. 이단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목회자 한 사람을 신격화하지만, 올바른 기독교는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는 루터의 말처럼, 언제나 성경 자체가 그 중심이 된다. 그리고 목회자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모습을 따라 실천하는 자이다.
시대가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이단 종교들이 더욱 기승을 부려 기독교인들을 현혹하고 그릇된 길로 빠뜨려 삶을 파괴시킨다.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깨어 깨달아 분별하는 영성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