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시 118:18)
The LORD has chastened me severely, but he has not given me over to death.
시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경책하다'란 말씀은 '단련하다' 혹은 '훈계하다'는 의미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심히"라고 반복된 말로 표현하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잘 느끼게 합니다. 이로인해 시인은 이러한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본 시편 22절에서 "건축자의 버린돌"이라고 표현했을 법도 합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돌'이 되어 아무렇게나 들판에 뒹굴고 있는 시인의 초라한 모습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심한 고난 중에 있던 욥처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욥 1:21)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극심한 고난의 상황을 목도하며 눈물로 한숨 짓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의 고백에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시인은 대적들로부터 겪고 있는 고난이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인한 것임을 마음으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자신을 경책하신 분이 바로 여호와시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생각이 주님의 허락하심 없이 어떻게 시인의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시인은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라고 주님의 기이한 구원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시인은 자기 영혼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 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여기에서 '붙이다'는 말은 '허락하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죽음에 자신의 영혼을 붙이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자신을 향한 참된 하나님의 긍휼과 끝없는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도의 고백과도 일치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오 주님! 이 아침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사망에서 살리신 놀라운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의 입술을 열어 찬양하게 하여 주소서.
(존 칼빈 주석/ 시편 118편) "다윗은 악인들이 자기에게 퍼붓고 있는 비방을, 옳은 길로 가게 하기 위한 온유하신 아버지의 보살피심이었다고 매우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환난 중에 있을 때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낮아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통해서 우리로 충성되게 하며, 우리의 마비된 심령을 다시 일어나게 하며, 하나님께 복종하고 굴복하여 하늘 나라의 생명을 묵상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하나님의 징계는 비록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기는 커녕 치료제의 효과를 내어 우리의 질병을 거두어 주시고, 우리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변화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