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한인장로교회 김호환 목사
시애틀 한인장로교회 김호환 목사

미국 예수(American Jesus)와 한국 예수(Korean Jesus)는 다르다. 서로 다른 문화적 해석으로 각기 다른 달리 각색된 옷을 입고 있는 예수는 단지 모양만이 아니라, 성격 역시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분명 오리지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이해의 눈이 차이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는 때때로 개성을 을 의미하지만, 차이가 난 만큼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7년 랄프 코잭(Ralph Kozac)이라는 미국 화가는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그려진 예수의 얼굴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서 화제가 되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며 기도하는 예수님의 얼굴이 아니라, 큰 웃음을 웃고 있는 히피의 행복한 얼굴을 그렸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극히 당황스러운 예수상이였지만,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은 그런 예수 상을 자신들이 신봉하는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예수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겟세마네의 예수이다. 대체로 한국의 모든 교회를 들어서면, 첫 눈에 띄는 것이 양 떼를 몰고 가는 예수상이 아니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의 상이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가 지닌 예수에 대한 인상과도 일치한다. 즉, 심각한 예수의 얼굴은 세상을 심각하게 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해석이 그려놓은 예수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1992년 나는 오하이오 주 애쉬랜드대학에서 목회학을 공부했다. 당시 박사과정의 수업에 들어온 미국목사들과 함께 삼년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나는 미국 예수와 한국 예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점심시간에도 미국 목사님들은 쉴 틈이 없이 웃기고, 농담하고, 조금만 짬이라도 나면 몰려나가 농구도하고, 테니스도 치고, 야구도 한다. 무엇인가 분주하기도 하고 떠들썩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장에서 볼을 차는 예수, 심지어 골프를 치는 예수를 머릿속에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당시 극히 보수적이기도 하고 근본주의적이기까지 한 나의 눈에는 그들이 불경스러워까지 보이기도 했다. "목사들이 왜 저리도 가벼울까." "전혀 무게감이 없어!" 내 눈에 비친 미국 목사님들의 예수상은 가볍고, 다혈질 적이면서도 또한 분주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미국 목사들의 얼굴에는 전혀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 예수상은 가볍게 느껴지지만 전혀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예수 상은 어떤가! 지금이야 많은 달라졌지만, 당시로는 여전히 엄숙하고, 조용하고, 그리고 어두운 얼굴 그림자를 띄고 있었다. 심각하기만 하던 한국 예수상은 때로 복잡한 당시 한국의 목회상황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한국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그려 놓은 예수에 대한 심각한 해석의 일종이다. 분명 한국 예수는 문화적으로, 혹은 시대적 해석이 반영된 우리들만의 해석이 만들어 놓은 투영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에게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이 예수가 미국인이나 서양인들에게는 전혀 낯설다는데 있다. 단지 개성차이가 해석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들이 발견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다시 말해, 미국 예수는 예스와 노가 분명하고 성격의 변화가 분명하지만, 한국 예수는 성격의 동요를 보이지 않고, 언제나 심각하고 깊은 사색을 동반한 중심 무게가 동반된 예수이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부처님과 공자님이 한국 예수 상에는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고난당하는 예수의 상은 분명 어두운 면이 많이 있다. 그러나 복음서 전반을 둘러보면, 분명 예수상은 다혈질 적이며, 예스와 노가 분명한 예수가 발견된다. 심지어 화를 내기 잘하는 예수와 마음에 동요가 잦은 예수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희로애락이 분명하고 성격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모형이지만,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런 예수상과는 전혀 다른 예수 상을 가지고 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배고파도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는 예수, 말하기 좋아하기 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뛰어 가기 보다는 천천히 무게 있게 걷는 예수, 그리고 세상에 대해 언제나 초탈한 예수가 곧 우리들의 예수상이다. 꼭 부처님이나 공자님과 같은 예수 상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의 문화 속에 이미 색인되고 각색된 우리들만의 정서가 부처상이나 공자 상을 예수 상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굴은 예수님인데, 그 속에는 부처나 공자가 들어 있는 것이 한국의 예수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