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과 다윗.
지난 성경공부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삼상 16장을 나누면서 은혜받은 내용을 나눕니다. 다시 한번 저를 감동주신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왕궁에 있었던 사울이 아니라, 양치는 목장의 다윗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의 관심은, 화려한 장소와 인생이 아니라, 냄새나는 곳, 세상도 심지어 가족들도 무관심했던 양치는 목장에 있던 막내 다윗에게 멈추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순종하는 화려한 인생과 장소보다, 순종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과 장소에 우리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렀던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왕궁의 화려함, 왕권과 외모의 위대함에 압도당하기 쉬운 시대에, 주님의 눈길이 머물럿던 다윗의 영성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불순종하는 세상적인 화려한 곳과 존재이기를 포기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심지어 '냄새가 날지라도 날마다 순종하는 양치기의 삶을 경주하기'를 조용히 다짐해봅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나의 가정과 목회, 직장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일테지요.
그루뎀 교수님을 통해 배운 점.
이런 세상의 주목을 떠나, 화려하지 않지만 참된 주님의 마음을 좇아서 아낌없이 떠나셨던 한 분을 소개합니다. 제가 트리니티에서 조직신학 교수님으로 웨인 그루뎀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사실 처음엔 저는 그분의 강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아서(^^) 나는 그분에 대한 존경심은 '감히'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졸업하고, 그 분이 트리니티를 떠나서, 당시엔 거의 신학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아리조나 피닉스로 옮기시면서 하신 말씀을, 신학교 동문뉴스레터를 통해서 보게되고, 다시금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당시에 사모님께서 몸이 많이 안좋아서, 한번은 피닉스 지역으로 휴양차 가셨다가, 사모님이 그곳에서 몸도 좋아지고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어떠한지 사모님께 여쭈었다고 합니다. 사모님은 개인적으로는 좋지만, 그루뎀 교수님이 가르칠만한 곳이 그 곳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트리니티에서는 당시에 파격적으로 연구교수직을 제의해서, 봄학기는 시카고에, 추운 가을학기엔 피닉스에 있도록하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때, 그루뎀 교수님이 미련없이 당시에 이름도 없던 피닉스신학교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뉴스레터에 남긴, 나를 흔들었던 단순한 말씀은, '우리가 사역지를 정할 때, 그곳의 사이즈나 상태나 숫자의 외적인 것에 의해서 결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하는 것. 그리고 미련없이 약 20 여년(?) 정도의 오랜동안 몸담았던 곳을 떠나셨습니다. 과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정약용이 당시에 강진으로의 유배생활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면에선, 학문적인 유배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요즘 신문지상과 미디어를 통해서 보면, 우리 시대엔 하나님의 관심은 화려한 장소, 인생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들이 부쩍 많아보입니다. 심지어 교회와 목회에서도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이때, 나를 비롯한 우리 동역자 모두가, 과연 하나님의 관심과 눈길이 머무는 인생과 목회, 장소는 어디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성경은 약속하시길, 순종하는 인생과 땅에게 하나님의 눈이 머물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네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11:12).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눈이 머무는 인생이요 가정, 목회, 직장이 되기실 기도합니다. 다윗같이, 화려한 궁궐의 불순종의 사울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