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사랑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모든 할머니가 그러하듯이 할머니는 저에게 사랑 그 자체셨습니다. 동생이 태어나서 제가 어머니의 품을 떠났을 때, 저는 할머니의 빈 젖을 빨았고, 할머니의 품을 차지하기 위하여 누나와 다투어야 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시던 할머니는 서울의 작은 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하셔서, 작은 집이 서울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방학이면 매번 서울을 올라가서 할머니를 보고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하며 방학을 지냈습니다. 할머니는 눈이 어두우셨으나 바느질을 잘하셨고, 저는 즐거이 실을 바늘에 꿰어 드렸습니다. 저는 점점 성장해 갔지만,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지셨습니다. 제가 고2 때에 할머니는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인 적이 없던 저지만, 위암으로 신음하는 할머니를 위하여 나가지 않던 집 근처의 교회당 새벽기도에 나가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의 할머니의 위암을 고쳐 주세요. 그러면 제가 예수 믿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머니를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지 약 1년 후에 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이 구원받았는지 궁금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누님은 할머니의 영혼을 위하여 한동안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저도 기도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배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만, 그렇게 바라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랑했던 할머니이시기에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는 마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적이고 논리적일 수는 있지만, 감성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자신의 공로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처럼 사랑이 많은 할머니,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저의 곁에 계셨던 할머니이시지만, 저는 할머니께서도 저와 동일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내가 미래의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므로 공평하게 저의 할머니의 거취를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미래에 저주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나무랄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에게, 조부모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신앙과 영적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가족 구원을 위한 견고한 기반을 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