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
(Photo : 기독일보) 이성자 목사.

최근에 어떤 목사님의 건강강좌를 동영상으로 보았는데 거룩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몸의 척추가 가장 기본적인 골격인데 척추 뼈가 제 자리에 있으면 오장 육부가 제 위치를 유지할 수 있고 우리 몸은 하나님의 창조 의도대로 건강할 수 밖에 없다고 하시며 척추 뼈들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소개하셨다. 그런데 이 개념이 성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이 제 위치를 벗어날 때 죄를 짓게 되고, 마찬가지로 몸의 기관들이 제 자리를 벗어날 때 육체도 병이 든다.

목사의 위치가 있고 성도의 위치가 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이 자기들의 위치를 벗어나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을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 결국 그들은 지진 가운데 산채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모의 위치가 있고 자녀의 위치가 있다. 남편의 위치가 있고 아내의 위치가 있다. 주인의 위치가 있고 종의 위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조주의 위치가 있고 피조물의 위치가 있다. 주어진 자기 위치를 지킬 줄 아는 겸손이 거룩의 시작이요, 건강의 비결이며 삶의 지혜이다. 교회의 각 기관들도 제 위치를 지킬 때 교회는 불협화음 없이 아름답게 세워진다. 우리 교회 여선교회의 섬김이 조용하고 질서있게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사하다. 여선교회 대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목사님, 우리는 그저 교회가 필요한 것 도울 것입니다. 말 없이 봉사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자기들의 사업을 따로 안 하겠다는 것이다. 그저 교회의 여러가지 필요를 최선을 다하여 돕겠다는 결단은 바로 교회를 돕는 지체로서의 자기 위치를 지키겠다는 고백이다. 교회 모든 지체가 이렇게 자기 위치를 지키며 몸된 교회를 세워갈 때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최초의 죄는 하와가 자기 위치를 벗어남으로 시작되었다. 하와는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는 뱀의 유혹에 결정적으로 넘어가 선악과를 먹으며 온 인류를 죄 아래 가두게 되었다. 하와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위치를 벗어나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 뜻대로 지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인간들의 근본적인 죄는 피조물로서의 자기 위치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기 보다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위치를 지키는가? 하나님 말씀의 바운더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절하면 천하 영광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물리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는 일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심으로 당신의 위치를 끝까지 지키셨다. 다윗은 사울의 모진 박해에도 그의 생명을 구하며 신하로서 자기의 위치를 끝까지 지켰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주의 기름 부으신 자를 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요셉도 유혹하는 보디발을 물리치며 십계명 안에서 사는 자기의 위치를 지켰다. 모름지기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 말씀의 바운더리 안에서 살아감으로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피조물의 삶을 가장 복되고 건강하게 하는 길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오만불손한 인간은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 C.S. Lewis의 지적대로 오히려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히고 인간이 재판장 노릇 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법을 부당하다 하며 인간의 법이 옳다고 판결하고 이를 온 세상에 시행코자 한다. 버지니아 200년 역사에 처음으로 민주당 주지사가 당선되었다. 그는 낙태법을 보호하여 낙태하고자 하는 자들의 부담을 덜고, 동성애자들을 환영하는 버지니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그 동안 미국내 가장 보수적인 주로 알려졌던 버지니아 주지사의 이같은 발언은 진정 충격이다.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점점 벗어나고 있는 미국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면 하늘에서 듣고 이 땅을 고치시겠다고 하셨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이 땅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히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