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전에 '파네라(Panera:체인 빵집)'를 자주 갈 일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열어 일을 보는데 머리 하얀 할머니 한 분이 '보행보조기'를 밀면서 들어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고, 그냥 집에 계시지 저런 몸으로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오셨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 나처럼 컴퓨터를 열어 놓고 책을 보던 한 백인 여자 청년이 얼른 일어나서 그 할머니 곁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뭔가 대화를 주고받더니 할머니와 함께 카운터까지 동행하며 주문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아,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요.' 그 할머니가 나가실 때까지 내내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 일을 내가 해드리지 못한 부끄러움도 한껏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드는 생각은 '저 백인 아가씨는 기독교인일 거야'하는 자위적 생각이었습니다.
과거 KFC에서 한 소년이 컵에 잔뜩 음료수를 받아 들고 오다가 컵을 떨어뜨려 온 바닥을 음료수로 강을 만들었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자기가 실수한 일에 놀라 그 자리에 서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곁에 있던 한 여인이 얼른 일어나 아이 손을 잡아주고 괜찮다고 안정을 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급히 엄마에게 데려다 주고 카운터에 가서 그곳의 문제를 일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나는 '아, 정말 멋진 사람이다'는 생각만 가득 품었습니다.
왜,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는지 부끄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분명 우리 주님은 우리로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고, 나의 착한 행실들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마5:14-16).'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마음에는 착한 행실이 가득하고 입술에는 수 많은 열매들이 있는데, 삶에서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개신교가 갈수록 힘을 잃고, 외면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 유대교에서는 실제 고난 속에 나눔과 헌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사후 초대 교회들이 갈수록 교회 밖으로의 헌신과 나눔 보다 자기들끼리의 생활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고, 나눔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여 '복음'만 전하는데 전념하고, '세상을 섬기는 행함'을 보여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전도지를 들고 전도는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세상 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지거나 아예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가르쳐주신 진정한 복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단순히 말로나 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생활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께서 마음이나 양심에 주시는 신호에 망설임 없이 순종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 위치나 상황, 체면 따지며 이미지 생각하지 말고 말입니다. 그럼 이미 늦습니다.
나처럼 후회만 하지 마시고, 주변에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위기를 만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지나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기회를 날려버리지 말고 붙드셔서 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많은 돈을 기부하고, 선교 헌금에 큰돈을 드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나의 삶 속에서 착한 행실로 영광 드러내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Ki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