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금식’(fasting)이 중요한 영적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성생활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의 ‘식사’(eating)입니다. 제 처음 영어 설교의 첫 문장이 “Jesus loved eating and drinking. So do I."(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매주일 번거롭고 때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식사 친교를 계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과 식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먹는 얘기를 빼면 책이 얇아질 정도로 성경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많습니다. 천국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자연세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이지만,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다 있는 곳입니다. 죄의 영향력이 사라졌을 뿐입니다. 그곳에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잔치가 있습니다.
식탁은 예수님 사역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부분 잔치 자리나 식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잔치를 좋아하셨던 예수님은 초청받으면 누가 초청했는지 가리지 않고 응하셨습니다. 그래서 적대자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 술고래, 식탐하는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눅 7:34). 예수님에게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자리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자리요, 하나님의 가족됨을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식탁은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약 교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먹고 떡을 떼었습니다(행 2:46). 식탁 교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을 선출할 때에 손님 대접을 잘하는 사람을 뽑도록 했습니다(딤전 3:2).
진정한 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같이 밥을 먹어야합니다. 집에서 밥상에 둘러 앉아 같이 음식을 먹을 때에 비로소 거리감이 사라지고, 진정한 사귐이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나눕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같이 먹었기 때문에 있는 자와 없는 자, 히브리인과 헬라인, 주인과 상전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허물어졌고,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갈 3:28).
성도들에게 식탁은 단순히 영양 공급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가족 됨을 즐기는 자리입니다. 교회가 날마다 잔치하는 교회, 즐거운 식탁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