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나의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시 88:18)
시인의 영혼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있는 모습이라고 느껴집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로 부터 버림 받은 상태이며,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이며, 영혼의 아품이 가장 심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인은 이런 절망적인 상태를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한 은사님께서 본 시편을 강해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만일 성도중에 어떤 분이 교회에 와서 이런 절망적인 상태를 이야기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을 가지고 믿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 절망적인 상태를 가지고 나온 것이 이미 믿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심령이 파괴된 사람들도 가끔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상한 심령을 위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 라는 말씀으로 위로하고 있다고 들려집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시인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질식할 지점에 이른다 할지라도 기필코 보호와 일깨움을 받는다. 아무리 맹렬한 폭풍우가 불어와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믿음을 갖게 하시어 자기 자녀들이 결코 실망하거나 버림받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사실, 이것이 성도들의 방패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금 응답을 하시던 안하시던 구원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위대한 믿음의 승리일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과연 이런 고난의 상태를 이해하며 올바로 반응하고 있을까요? 만일 우리의 경험이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일 것입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영혼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체험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지난 이후에 더욱 깊이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혼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더 잘 알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절망의 터널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중에 있는 우리 성도님에게 예수님께서 특별한 은혜의 손길을 펼져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 88:14-18) "이 시가 감사로 끝나지 않고 슬픈 탄식으로 끝을 맺어 마치 긍휼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을 지라도 이 시는 우리가 계속하여 기도의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보다 유익한 교훈을 주고 있다. 선지자는 이 탄식의 짐을 하나님의 품에 풀어 놓음으로써 감각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 표적도 볼 수 없는 구원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이 시의 서두에서 하나님을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에게서 부터의 모든 구원 소망에서 멀어져 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