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녀가 10명이라고 애정을 10분의 1씩 나눠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는 모든 자식에게 100% 이상의 애정을 골고루 주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한 만큼 사랑의 보답을 그대로 기대한다면 그 사랑은 투자에 불과 합니다. 참사랑은 한없이 주고 또 주는 지고한 사랑이며 자신을 희생할 때에 사랑의 진가가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의 적은 마음의 무관심입니다. 이웃의 고뇌를 도와야 할 상황에서 동정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으로 무관심은 있어서 안 되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면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되받게 됩니다.  사람이 믿으면 믿음을 받게 됩니다. 미워하면 미움을 받습니다. 빼앗으면 빼았깁니다. 의심하면 의심을 받습니다.

스스로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의 반을 얻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제 나머지 반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면 됩니다.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은 복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하다고 감사해야 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플 때에 그것으로 인해 가족들이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며 사랑으로 돕고 긍휼한 마음으로 쾌유를 위해 기도합니까?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좋지 않은 면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사고방식이나 인간성 더 나아가 가족관계까지 좋은 면을 알게 되면 생각이 아주 달라집니다. 참으로 사랑하면 세상에 미워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려 가지 면에 문제꺼리는 늘 바로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크게 보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적게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지기도 하고 전혀 생각 밖의 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누구한테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 중에는 학력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또는 부자나 유명한 사람의 말만 듣는 이가 있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은 논리에 근거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이해관계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마음이 있어서 감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감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사물은 반드시 양면성을 띱니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견해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하나님만이 알고 바르게 판단하기 때문입니다.마음을 꼭 닫으면서 살았다면, 이젠 그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마음 씀이 비록 크지 않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려 주변의 사람을 향하여 미소로서 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는 내가 사랑을 받고 나눠야 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이 분주하고 여유가 없을지라도 사랑으로 남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자신의 일에 취하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세상이란 벽에 자신을 걸어 놓고 불안에 빠져 있지 않도록 내다보며 살아야 합니다.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멀어졌던 발길을 한걸음씩 더 다가가게 하는 것은 삶의 참 맛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하여 무관심의 소외가 얼마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지 아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같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절망이 보이니 서로의 만남을 기뻐해야 합니다. 삶의 세세한 생활들을 주고받음으로 서로가 믿고 신뢰하며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의 통로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내 마음속에 넣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 자신의 마음속에 넣고 싶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내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해준 사람이며, 내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반대로 가장 마음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존재합니다. 누구겠습니까? 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입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대해줘 보세요. 마음에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베풀기로 작정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나를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선대하는 일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를 잘 대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선대를 하는 것입니다. 훗날 그들은 내 마음의 호의와 사랑을 기억해낼 것이므로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잘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좋은 일을 계획했다가도 이권문제로 계획을 취소하기도 하고 또는 인정에 얽혀서'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하면서 자기 마음을 바르게 잘 추스르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요셉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참으로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린 사람입니다. 그는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외국 상인들에게 팔려서 먼 애급 나라의 보디발이라는 이의 집에서 일꾼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붙들고 성범죄를 하려고 할 때에 그는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 붙잡는 옷을 벗어던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붙잡혀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에서도 자기의 마음을 잘 진정하여 모든 사람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 후 그가 애급의 총리가 되어서 돈 받고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에 그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억누른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온 것입니다. 아무도 보복의 행위를 막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나 쉽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끊어 오르는 격한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잠언 16:32절에는"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교훈을 배워 값진 생애를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