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시 79:9)
시인은 자신들의 죄를 사해주실 것을 하나님에게 간곡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들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이렇게 자기 체험으로 고백하고 있다고 들려집니다. 하나님은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근거를 자신 안에서 찾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서 찾을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시인은 고난중에서 '도우시고', 위경에서 '건지시며',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늘 체험해 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 고백은 주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를수 있게된 지난 체험의 확증으로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 파멸상태에 놓여진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의 은혜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시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이유를 더욱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시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은 어떤 행위로 말미암은 공로의 결과가 아니 었다는 것이 시인의 체험을 통한 고백 내용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 성도들이 고난중에도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만 소망을 두고 간구와 기도를 드릴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오늘도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자비의 은혜가 충만하길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 79:9) 여기에서 우리는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로 말미암은 공로 또는 만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값없이 거저 주시는 공로없는 사죄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내리길 바랄 때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하자.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