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내가 가지고 있는 명시집 워즈워어드(William Wordsworth)의 명시(한림출판사간)에는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이봉국'의 역으로 주옥같은 100여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웬일인지 저 유명한 '초원의 빛'은 실려 있지 않다. 번역(飜譯)이 반역(叛逆)이 되어 초원의 빛이 어둠의 빛이 될까 두려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는 겁도 없는 아마추어들이 초원의 빛에 홀려 무수히 졸역(拙譯)하여 광휘의 초원을 버려 놓았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Splendor in the Grass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이왕에 의역을 할 것이라면 이렇게 노래하면 어떨까?

한때 그렇게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젠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우리 서러워 말지니
도리어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얻게 하소서./
여태 있었고 또 영원히 있을 그 원시의 공감 가운데에서/
인간의 고뇌에서 우러나는 그 위로의 생각 가운데서/
죽음을 뚫어보는 그 믿음 가운데에서/
현명한 마음을 생겨나게 하는 세월 가운데에서...

워즈워드는 영국 초원에서 태어나 초원을 노래하다 초원에서 죽어간 자연시인이며, 계관시인(桂冠詩人)이다. 그러나 그는 자연을 노래하기는 했지만 자연주의자는 아니였다. 자연의 장엄미려한 가운데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찾고 그를 노래하며 신앙했던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프랑스 혁명으로 공화정치의 급물살을 탔던 시대였고, 종교개혁의 반동으로 생겨난 인문주의 및 실증주의가 과학과 문학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대였다. 종교개혁이 개인주의를 조장하고 감정적 신비주의를 발생시킨 영국·독일에서 먼저 싹이 트기 시작하였는데, J.로크의 경험철학이 그 대표이다. 그러나 워즈워드는 그들의 이론에 따르지 않고 자연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 너머의 숭고한 의미를 자연의 언어로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시 '무지개'가 그렇다.

하늘에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나니,/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지어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願)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질진저...

장엄 자연의 8월은 지나간다. 캔쿤의 옥색 바다, 오션씨티의 뭉게구름, 뉴져지 롱비치에서 보는 바다의 조울음 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을 워즈워드만큼은 아니어도 찬탄과 경외로 보낸 뜻깊은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