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제자들에게 천국 시민의 윤리강령을 가르쳐 주셨다. 그 중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 그게 바로 팔복이다(마 5:1-10).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 땅에서도 '천국 시민'이 걸어야 할 길이 있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된다. 당시 로마 시민은 로마 시민답게 프라이드를 갖고 살아야 했다. 그렇다면 천국 시민은 더할 나위 없다.

물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 시민이 걸어야 할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상당한 결단과 희생이 필요하다. 결연한 결단을 갖고 걷는다 해도, 생각처럼 쉬운 길이 아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길을 걷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위로와 복이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사는 자요, 머지 않아 하늘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온전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게 바로 제자의 삶이요, 천국 시민의 길이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마귀의 팔복을. 마귀도 복(?)을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꾀고 있다. 마귀가 하는 달콤한 목소리를 들어보라.

1)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가장 믿을 만한 일꾼이 될 것임이요.

2) 목사의 과오나 흠을 보고 트집만 잡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임이요.

3) 자기 교회면서도 나오라고 사정하야만 나가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교회 안에서 말썽꾸러기가 될 것임이요.

4)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임이요,

5) 걸핏하면 삐죽이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교회를 그만둘 것임이요.

6) 하나님의 일에 인색하여 헌금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일을 가장 잘하는 자가 될 것임이요.

7)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면서도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임이요.

8) 성경 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꾀임에 쉽게 넘어가 마침내 나의 조롱거리가 될 것임이니라.

혹시 구미가 당기는 사람이 있는가? 위험하다. 영적 적신호가 켜졌다. 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파산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소속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다. 하늘에 속한 자이다. 천국 시민권을 갖고 사는 자이다. 그런데 땅에 속한 자처럼 살아서야 되겠는가? 마귀에게 속한 자처럼 살아서야 되겠는가? 삶을 보면 그 소속을 가늠할 수 있다.

가끔이지만, 예수 믿는 가족인데 유산 문제를 둘러싸고 형제들이 법정으로 가는 모습을 본다. 돈이면 다 된다는 유물사관을 갖고 있는 세상이기에, 돈 없이 사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없는 자의 비참함을 경험하지 않은 자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기도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천국 시민이 걸어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 유산 때문에 형제들이 법정 소송을 하고 싸워야 한다면, 차라리 누군가가 포기하는 게 더 떳떳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지 않아서 힘들 때가 있다. 서로의 주장이 엇갈려 심각한 진통을 겪기도 한다. 얼마 있지 않아 고성이 나온다. 잠시 후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멈추어야 할 정지선은 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위험하다.

그런데 오늘날 그 정지선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감정 때문에 정지선을 무시한다. 이권 때문에 함부로 정지선을 일축해 버린다. 예배 드리는 장소에서 큰 소리를 치는가 하면, 강대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기도 한다. 한 교회 건물 안에서 이곳에서는 이 파가, 저곳에서는 저 파가 예배를 드린다. 우리는 질문해 봐야 한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는가?"

아마 금방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라고.

그런데 더 양심적으로 대답해 보라. 아니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한번 물어보라. 그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아마 사단만이, 사단을 따르는 자들만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주님이 제시하시는 천국 시민이 걸어갈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마귀가 제시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