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아틀란타의 여름은 길고 무덥다. 그럴 뿐만 아니라 습기가 많고 눅눅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올 여름은 기상 이변 탓으로 여름답지 않게 시원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여름다운 맛이 사라졌다. 여름이 안겨다 주는 축복이 있다. 우선 여름은 목회가 한숨을 돌리는 계절이다. 숨가쁜 목회의 일정들이 여름이 되면 조금 여유롭다. 여름에는 공동체 모임도 성경 공부도 그리고 기타 훈련도 휴식에 들어간다. 이에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으며 생각이 깊어진다. 마음이 바쁘고 목회 일정이 바쁠수록 깊은 생각이 사라질 때가 많다. 그러므로 한 여름에 나는 무언가를 깊이 사색하고 반추하게 된다. 매미의 자연음 소리에서 푸르고 청명한 하늘에 이르기까지 여름은 정적을 주며 생각의 여유를 갖게 한다. 여름은 색다른 사색으로 나를 부른다. 새벽 기도회에 오래 앉아 조용히 묵상을 해 나가는 시간도 여름이다.
여름은 밀린 책들을 접하게 되는 좋은 독서의 계절이다. 목회의 일상에 치여 책들을 읽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늘 모자란다. 종종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이나 주문한 책들이 아직도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종종 죄스런 마음이 된다. 책들이 나를 빨리 읽어 가십시오 라고 손짓하지만 절대 시간이 모자란다. 그런데 여름만 오면 그 밀린 책들을 끼고 사무실에서 혹은 집에서 책을 읽어 갈 마음의 시간과 여유가 생긴다. 여름에는 교인들도 방학을 하고 휴가를 가므로 심방의 부담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 있어 독서란 필수적인 요인이다. 독서하지 않는 목회자란 자기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책과 씨름하지 않고서는 뻔한 설교를 하기 일쑤이다. 뻔한 설교란 교인들이 이미 들으면서 본론, 결론을 다 내리는 설교이다. 설교자란 듣는 회중들에게 신선한 사고의 발상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독서하지 않는 목회자는 교인들의 사고를 따로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름은 밀린 독서를 따라 잡는 계절이다. 더구나 아내가 썰어준 참외며 수박과 함께 책장을 넘기는 재미란 쏠쏠하기만 하다.
여름은 종종 교인들과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된다. 목회를 하다 보면 시간과 스케줄에 치여 교인과의 만남이 피상적이고 만다. 짧은 만남, 짧은 대화, 이렇게 하다 보면 인간 관계가 건성에 그칠 때가 많다. 그러나 여름철은 무언가 마음이 풍성하다. 아침에 팬 케잌 하우스에서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조찬을 나누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깊이 경청한다. 저녁에도 식사를 나누면서 마음에 가지는 여유로움으로 인해 긴 시간을 할애하여 대화를 나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웬지 기분이 좋아진다. 내 속내를 털어 놓으며 상대방의 고백에 질적인 대응이 온다.
여름은 교우들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계절이다. 한국으로 혹은 타주로 휴가를 떠나는 교우들의 가정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 없다. 이민의 삶이란 조금도 쉴새 없는 숨가쁜 현실이 아닌가? 조금도 쉼없이 돌아 가는 기계와 같은 비인간화의 삶 속에서 잠시 호흡을 돌리고 가족과 휴식을 즐긴다. 인간이란 일과 휴식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일만 하게 되면 인간은 푸석 푸석하게 된다. 창조성이 사라지고 아이디어가 말라 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창조하셨다. 일 년에 한주 혹은 두주는 가족과 함께 조용한 곳, 자연과 더불어 안식을 가져야 한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 오는 교인들의 얼굴에서 새로움과 윤택함을 엿보게 된다. 그런 얼굴을 바라보면서 목회자의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늘 찌들고 피곤함에 절은 얼굴을 보다가 새로운 생기가 넘치는 신선한 얼굴을 볼 때 마음이 밝아진다.
여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지난 주에도 내가 사는 이곳 아틀란타에는 몇 차례 소나기가 내렸다. 메마른 대지 위에 소낙비로 인해 온 산림과 수목들이 청청해 졌다. 그 가운데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가 온 천지를 진동한다. 새벽 기도를 나가면서 이 아름다운 자연의 추이에 하나님께 저절로 감사 찬송을 드리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은 고달프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의 선물은 언제나 풍요럽고 싱그럽다. 그 중에서도 더욱 여름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