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준관 박사
(Photo : ) 은준관 박사

"기독교는 그 본질에 있어서 도덕·윤리적 종교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이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교회는 신앙을 도덕으로 둔갑해 그것을 마치 신앙인 것처럼 위장해 온 근본적인 오류를 넘어서야 한다."

 

은준관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17~18일 일정으로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진행된 한목협 제15회 전국 수련회 첫날 저녁 강사로 나서 '한국교회 목회자: 오늘과 내일'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은 박사는 한국교회 회복을 위해 많은 이들이 '영성 회복' '도덕성 회복' '성스러움의 회복'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소중하고 절실한 접근이기는 하나, 내게는 그리 설득력 있는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며 "이러한 접근은 자칫 지난날 범해 온 '성직 패러다임'의 반복 내지 '도덕주의 패러다임'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봉사'에 대해서도 "교회의 소중한 사역이나, 그것이 (한국교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답은 아닌 듯하다"면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없다. 봉사는 살아 있는 교회 공동체의 존재 양식이며 사역일 때 의미가 있다. 얼마 전 피선된 로마 가톨릭의 교황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 한, 자선단체나 NGO는 될 수 있어도 교회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짧은 한 마디가 지구촌 3억 가톨릭교회 교인과 전 세계를 조용히 뒤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영적 에너지'와 '영적 문맹' 교묘히 얽혀 있어

은 박사는 한국교회 미래가 이 같은 '도덕주의 패러다임' 혹은 '사회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신학, 목회자 하나하나가 그 존재 이유를 찾고 발견해 나갈 때 있음을 역설했다.

그는 "현재 한국교회에는 '영적 에너지'와 '영적 문맹'이 교묘하게 얽혀 있다"며 "수면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영적 문맹'은 수시로 영적 에너지를 타고 '거룩'으로 둔갑하곤 한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 교회 정치, 신학 없는 평신도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거룩의 이름으로 마지막 남은 영적 에너지마저 '영적 문맹'으로 매몰시키는 '거룩한 범죄'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은 박사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아직 소멸되지 아니한 한국교회 신자들이 품고 있는 순수하고 거룩한 '영적 에너지'와 아직 헤어나지 몫하고 있는 그들의 '영적 문맹' 사이를 어떻게 매개해 '영적 파워'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며 "이것은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의 출현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목회는 목회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영적 파워'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신학과 목회자가 새롭게 거듭나야 함을 강조했다.

신학=은 박사는 "지난 300여년 간 신학교육은 급격히 변화되는 목회 환경과 목사상을 향해 어떤 의미의 신학적 기초도, 방향도 제시 못하는 '게토' 집단으로 고립되어 왔다"며 "교회론에 근거한 신학교육의 재편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커리큘럼의 재편이나 과목의 나열, 또는 첨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신학교육의 철학과 목적 진술' '교육 시스템의 분석과 재설정' '커리큘럼의 재구조화' '팀 미니스트리'까지를 포괄하는 시스템적 접근이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목회자=목회자에 대해선 "한국교회 문제는 목회는 목회자가 하는 전문직이라는 일명 '성직 패러다임'에 있다"며 "목회는 목회자가 하는 것이라는 '성직 패러다임'의 특성은 신자를 목회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치명적 오류를 동반한다. 목회의 대상인 신자 또는 평신도는 연쇄적으로 '비인격화'되고 '객체화'된다"고 꼬집었다.

은 박사는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게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 위임된 직을 수행하고 또 만인제사장인 성도들을 세워 그들로 그들의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 목회"라며 "오늘날 목회자의 탈진과 좌절, 그리고 이탈의 악순환은 목회는 목사가 한다는 '성직 패러다임'에 기인한다. 목회의 방향을 교회론에서, 특별히 공동체 사역론에서 다시 찾는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목회 패러다임, '하나님 나라'로 전환해야

그러면서 그는 "짧은 경험에 비추어, 오늘 우리의 자랑스런 목회자들이 '프로그램'에 기웃거리지 않고 과감히 교회론적-목회신학적 패러다임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 공동체, 그리고 공동체 사역으로 향하게 한다면, 이 작은 전환은 '영적 문맹'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종말론적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한국교회 목회자, 그 미래는 여기서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은 박사는 또 "한국교회의 마지막 보루는 아직 소멸되지 않은, 1천만을 헤아리는 평신도의 영적 잠재력"이라며 "목회가 더 이상 평신도를 '영적 문맹'으로 묶어두는 '우민목회'를 계속할 수는 없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마지막 선택은 영적 문맹으로 전락한 우리의 신자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하는 종말론적 결단에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울러 은 박사는 "교회가 크든 작든 교회론의 신학과 존재 이유, 그리고 존재 양식에서 한 교회 한 교회가 위임된 존재 이유와 존재 양식을 찾아나가는 치열한 신학적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며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십자가의 비밀을 기억하고, 죽음을 삼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사신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는 생명공동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