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회와 동떨어진 채 스스로 고립되어 경건과 영성에 힘썼던 수도사들의 하루 생활은 어떤지 역사적인 문헌들을 통하여 조명해 본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먹지 않으면 배를 곯았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타 들어갔다.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여 늘 수면이 부족한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속 사람은 마치 세상을 초월한 사람들 같았다.
5세기 시리아의 주교(bishop)였던 마루타(Maruta)는 수도원 생활의 규칙을 73가지로 정리하였다. 그 중의 한 부분이다: “수도사들의 하루는 세 때로 구분된다. 기도와 책을 읽는 때, 일하는 때, 그리고 식사와 휴식과 잠 자는 때이다.” 또 다른 내용을 보면, “여름철, 날이 더울 때 수도사들은 매우 이른 시간에 일을 시작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정오 예배 때까지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린 후에는 식사와 함께 휴식하였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할 때에는 저녁 식사 (evening meal) 때까지 일했으며, 예배 후에 식사를 했다.”
수도원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본래 구전으로 가르쳤던 것을 나중에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규칙은 수도원의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했다. 가파도기아의 바질 (Basil the Great of Cappadocia) 역시 수도사들의 생활 규칙을 정하였다. 데오도시우스는 자신의 공동체에 바질의 규칙을 적용하기도 했다. 시릴은 자신의 책에서 사바스 역시 자신을 따르는 수도사들에게 ‘대 라우라의 규칙 (the Regulations of the Great Laura)’을 강조했음을 자주 언급하였다.
수도원에서 매일의 생활은 기도 시간에 의해 정해졌다. 라우라와 코노비아 같은 유대 광야의 수도원들은 7일 생활 규칙을 정한 가파도기아의 생활 규칙을 취하였다. 수도사들의 매일의 기도 일정은 다음과 같다:
1) 철야 기도 (nocturnal vigil)는 자정을 넘겨 닭이 울 때 시작되어 새벽 전에 끝났다.
2) 아침 기도 (matins)는 해가 뜰 때 시작되었다.
3-5) 세 번의 낮 기도: 세 번째 (tertia), 여섯 번째 (sexta), 아홉 번째 (nona) 시간에 기도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6. 저녁 기도 (vespers)는 저녁 식사 후 (또는 식사 전), 해지기 전에 기도하였다.
7. 밤 기도 (compline)는 해진 후 그리고 잠에 들기 전에 기도하였다.
광야의 수도사들은 이렇게 하루에 일곱 번 기도하는 규칙에 따라 생활하였다.
작은 굴에서 지내는 수도사들은 다양한 시편과 노래로 구성된 내용을 암송하였다. 반면 코노비아 수도사들은 수도원의 교회에 모여 함께 기도하였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위임 수도사 (designated monk)는 교회 옆에 밧줄 (또는 쇠줄)로 매달아 놓은 시만드론 (symandron)이라 불리는 나무 판을 두드려 기도 시간을 알렸다. 시만드론은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에 속한 수도원들에서 볼 수 있다.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 (St. Catherine)에 있는 시만드론은 비록 후대의 것이지만, 비잔틴 시대의 시만드론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광야의 밤은 매우 고요하다. 시만드론을 두드리면 그 부드러운 소리는 광야의 조용한 밤을 타고 라우라 전체에 은은하게 퍼진다. 위임 수도사가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시만드론을 두드리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코노비아에서 시만드론 소리는 먼 곳에서 온 상인들이 일찍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수도원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도사들은 식사를 기도의 연장으로 이해하였다. 데옥티스투스 수도원에서 유티미우스가 정한 규칙에 보면,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그리고 식당에서 공동체 식사 중에’ 대화를 금지한 규정이 있다. 이런 예는 조지 코지바의 전기에도 기록되었다. ‘수도사들은 정오 기도를 마친 약 오후 1시에 식사하였고 식사 후에는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같은 기록에 보면, 때로 또 다른 식사가 오전 10시에 제공되기도 했다. 이것은 코노비움 밖에서 고된 일을 하는 수도사들에게 제공된 음식이었다. 이것이 일반적이었는지 아니면 특별한 예외 사항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모스쿠스 (Moschus)는 시내 광야의 라이뚜 (Raithou) 수도원에 대해, 그곳의 수도사들은 9번째 시간 (오후 3시)에 식사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식사 시간은 각 수도원마다 달랐다. 이집트의 관습처럼 수도원에서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수도사의 하루는 오후 8시 (the second hour of the night)에 끝났다. 안토니가 정리한 조지 코지바 의 전기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이다: 어느 주일, 조지 코지바는 한 형제와 밤 8시 또는 밤 9시까지
계속 대화하였다. 밤 8시가 벌써 지났다. 코노비움에서 전혀 밤을 보내지 않는 습관을 가진 그는 문을 두드리며, 문지기에게 ‘자신의 작은 굴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문지기는 문을 그만 두드리라고 하면서 “시간이 이미 지났습니다. 주무시고 먼동이 트면 떠나십시오.”
수도원에서 첫 번째 기도인 철야 기도가 자정 직후에 시작되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철야 기도가 시작되기 전에 약 4시간을 잘 수 있고, 철야 기도 후에는 약 2시간을 더 잘 수 있었다. 밤을 6시간으로 구분한 것과 잠 자는 것을 6시간으로 구분한 것은 채리톤이 파란 라우라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규칙이었다.
공동 회집 (mass/eucharistia)은 주말에 가졌다. 데옥티스투스 수도원, 파란 라우라, 유티미우스 수도원에서는 482년까지 수도사들의 회집은 오직 주일에만 있었다. 그러나 제라시무스, 사바스, 코지바 수도원과 같은 일부 수도원에서는 일 주일에 두 번, 토요일과 주일에 공동 회집을 가졌다.
수도사들은 해시계를 사용하여 기도와 노동 시간을 확인하였다. 카스텔리온 (Castellion)에서 발견된 해시계는 돌로 너비 38 cm, 높이 30cm 크기로 만들어졌다. 해시계는 열 단위로 구분되었고 각 단위는 그리스어로 표시하였으며, 십자가 문양이 새겨졌다. 마티리우스 수도원 (monastery of Martyrius)에서도 두 개의 해시계가 발견되었다. 마티리우스 해시계는 낮을 12시간으로 구분했다. 두 개 가운데 한 개는 식당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수도원의 책임자가 식당과 주방에서 수도원의 일정을 정하기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로 대부분을 보냈던 수도사들의 하루 생활은 정말 단순하였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비잔틴 시대의 수도사들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일년에 하루, 이틀 정도는 자신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개인의 경건에 집중할 수는 있다. 경건은 속된 것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