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끔씩 텔레비전에서 긴급속보로 방송되는 뉴스가 있었다. 귀순용사에 대한 뉴스였다. 휴전선을 목숨을 걸고 넘어 귀순한 사람들을 보며, 모든 국민들은 그들과 함께 기뻐하기도 하고, 북에 남겨둔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실 때에는 우리의 마음도 먹먹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그렇게 들었던 자유의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귀순용사 목숨을 건 탈출을 보면서 자유가 목숨을 바쳐서 얻어낼 만한 숭고한 가치이고, 우리가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북한의 체제불안으로 북한을 탈출하는 수 많은 사람이 생겨난 이후에는 이제 그들은 ‘귀순용사’가 아니라 그냥 ‘북한이탈주민’, 줄여서 ’탈북자’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탈북자 수는 2만 3천명이 넘는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우리는 가끔씩 탈북자를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재중교포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탈북자와 재중교포는 다르다. 재중교포는 탈북자와는 달리 법적으로 중국의 보호를 받는 엄연한 중국 국민이다.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 국경을 넘어 밀입국을 하여 동남아 전체로 떠돌며 우리나라로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그러나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은 정말 바늘 구멍으로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근래 들어 매년 2천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지만 그 수는 전체 탈북자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왔다고 해서 영화의 해피 엔딩처럼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입국하고 나면 이들은 맨 먼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신원과 관련된 조사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간첩을 가려내게 된다. 북한과의 대치 상태에서 불가피한 일임은 분명하지만, 수 많은 날들을 목숨을 졸이며 그리던 조국의 품에 들어오자마자 불신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고통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신원이 확인 된 이후에는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적응 교육을 받고 이제껏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전혀 다른 환경에 노출된다. 사회적응은 쉽지 않아 단 시간에 함께 어울리기도 힘들 뿐 아니라, 얼마 되지 않는 정착 자금을 노린 집요한 사기꾼들에게 무방비로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꿈에 그리던 조국의 사람들은 그들을 이상한 사람들처럼 생각한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종교단체나 탈북 지원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 충분한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좋으련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종교적 이슈에 원하지 않게 휘말리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종편 채널들의 ‘5.18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일이 그렇다. 탈북자들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그 모든 책임을 선정적인 언론매체가 지는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에게 돌리게 되고, 이것은 이들에 대한 또 다른 불신을 낳은 계기가 된다. 탈북자의 문제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역 갈등을 뛰어 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책임도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들을 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우리의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불청객이 아니다. 당연히 책임져야 할 우리의 가족이다. 이것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 통일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이런 ‘포용과 책임’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없으면 통일 후 심각한 갈등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이 동서의 갈등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유럽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된 것처럼 우리도 남북갈등을 잘 극복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화합과 번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의 기틀을 세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