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한 해를 출발하면서 내미는 기도제목을 보면 비슷하다. "가족의 건강과 화목"

지금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

날마다 부부싸움을 하며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다. 두 사람이 부부싸움을 할 때면 굉장하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쓴다.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날아갔다. 어느 날, 화가 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관 뚜껑을 열고 흙을 파고 나와서 할마이를 엄청나게 괴롭힐 거야. 각오해!" 할머니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진짜 죽었다. 할머니는 장사를 잘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잔치를 베풀고 신나게 놀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옆집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걱정이 되어서.

"할머니 걱정이 안 되세요? 할아버지가 관 뚜껑을 열고 흙을 파고 나와서 할머니를 괴롭힌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가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걱정 마. 그럴 줄 알고 내가 관을 뒤집어서 묻었어. 아마 지금쯤 땅 밑으로 계속 파고 있을 걸."

부부가 함께 오래 사는 건 복이다. 오래 사는 건 좋은데 싸우면서 오래 산다면 뭐하겠는가? 오래 살더라도 싸우지 말자. 혹시 다투더라도, 무식하게 말고 좀 지혜롭게 싸우자.

다툼은 불행을 낳는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5:24)"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혼자 움막에서 사는 게 속편하다.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잠 27:15-16)"

다투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은 장마철에 지붕이 새는 것과 같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칠 줄 모른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싸우기를 즐긴다. 그런 사람은 통제하기가 어렵다. 마치 바람을 제어하기 힘든 것처럼. 기름을 움켜잡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다투는 기질을 가진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매일 싸우고 다투게 된다. 부부가 다투고 싸우면 배우자가 외도한다. 자녀들은 가출한다. 자녀들이 다투고 싸우면 부모가 속상하다. 다투고 으르렁거리는 집안에 머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낮에 간수들의 감시망을 피해 탈옥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날 밤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교도소로 들어와 자수를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 남자에게 물었다.

"아니, 어렵게 탈옥에 성공했는데 돌아온 이유가 뭡니까?"
"이렇게 빨리 돌아온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매우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집에 돌아가 살그머니 방문을 여는데 아내가 다짜고짜 쌍심지를 켜고 덤비더군요. 탈옥한 것이 8시간 전인데, 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왔느냐고요! 간신히 탈옥에 성공했지만, 마누리의 바가지를 듣는 순간,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의 늪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크고 호화로워도, 분란이 있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 집은 지옥과 같다. 안식처인 가정에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면, 사회 생활이나 교회 생활에서도 기쁨과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

성경은 말한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부유하면서도 다투는 가정'보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이 더 낫다. 넉넉하고 부유하지 못하면 어떤가? 그럴 수도 있지. 다 잘 살 수는 없으니까. 더 잘 될 수는 없으니까. 그럴지라도 화목한 가정을 만들자. 각자의 일터로 나갔던 가족들이 돌아오고 싶은 분위기의 가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자.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 12:25)"

가정을 다툼이 없는 화목한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가족이 집으로 들어오고 싶다. 머물고 싶어진다. 공부하고 싶어진다.

다투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왜 없겠는가? 지혜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다투지 않고 잘 살 수 있다.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 20:3)"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의 차이가 있다. 어리석은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다툼을 그친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 29:11)"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 7:9)"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을 터뜨린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을 다스린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분노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킨다. 그러나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와 다툼을 멈추게 한다.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몹시 화가 났다. 화가 난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가 버려!" 아내도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다. "나가라고 하면 못 나갈 줄 알아!"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자존심을 꺾고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이 비꼬는 투로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안 들어올 것 같이 나가더니, 왜 다시 들어와!"

"가장 소중한 것을 두고 갔잖아!"

"그게 뭔데?"

"바로 당신~"

지혜로운 사람은 다투고 싸울 것도 피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다투지 않을 것도 피터지게 싸운다.

돈더미 위에 가정을 세우려 하는가? 멋진 가구 위에 가정을 세우려 하는가? 경계해야 한다. 믿음 위에 가정을 세워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울 때 든든히 설 수 있다. 여호와께서 세우지 아니하면, 든든한 집을 세우려는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어 다스리게 해야 한다. 성령께서 통치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천국의 법도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 가정은 천국의 모델하우스인가, 지옥의 모델하우스인가? 다툼이 있는 가정은 지옥과 같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에서는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살벌한 가정으로 찾아들어올 가족은 없다. 집을 찾아 들어오는 가족들을 움막으로 쫓아내지 말아야 한다.

결혼의 파탄을 보려는가? 배우자의 자존심을 짓밟아 보라. 한 아내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재치있게 농담을 해 사람들을 곧잘 웃겨주곤 했다. 좋은 재주이다. 그녀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가끔 남편을 재료로 삼아 농담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마음이 너그러운 남편은 아내의 농담을 조금도 탓하지 않고 같이 웃곤 했다. 그러기가 반복되면서 남편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내와 같이 가기를 꺼려했다. 아내는 당황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남편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농담에 능하던 그 재치로 남편을 추켜세워주었다. 한때 동요했던 남편의 마음은 다시 평정을 찾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인데 함께 살아가는 데 문제가 생긴다. 시간이 가면서 서로 다른 게 보인다.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린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탓하고 고치려 한다. 이들은 불행의 늪에서 허덕인다.

행복하게 살아가려는가? 서로를 인정해 주라. 더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맞추어 주며 살아가라. 행복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누구나 그렇게 행복은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