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한마디로 참고 기다리는 시간들입니다. 지금까지도 참아왔고 앞으로도 잘 참으면 됩니다.
저희 바로 옆집은 한 지붕 밑에 대충 5개 가정 정도가 같이 사는 것 같습니다. 밤에 들어갈 때 보면 마치 무슨 자동차 딜러처럼 6대가 넘는 차들이 서 있고 길 건너에도 세워 놓은 차들이 있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얼굴들이 바뀌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음악을 크게 틀고 심지어 무슨 앵무새를 기르는지 가끔씩 그 새의 괴성이 동네를 흔듭니다. 그러기를 어느새 2년이 넘어오는데 물론 그동안 단 한번도 우리 부부는 그 집 사람들을 향하여 불평이나 항의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어차피 “더불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초기 이민자들로써 비용을 줄여가며 사는 것이 분명하고 그 집을 세 준 사람은 그런 상황을 모른채 타 도시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도 없는 것입니다. 늘 집을 나설 때마다 그 집을 쳐다보며 인내를 다짐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그 분들을 향하여 다시 한번 참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여러 문제들을 안고 지속적으로 참고 있는 중입니다. 왜 하필 그런 사람을 만나서 그 오랜 시간을 참아내야 하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러야 하는지 힘들 때가 많습니다. 왜 하필 이런 때를 만나서 집값도 떨어지고 직장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으며 앞길이 언제 풀릴런지 참아내며 살아가는 가정들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참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래 참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오히려 여유있어 보이고 성숙해 보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경우는 오래 참은 분들의 얼굴에서 광채가 빛나고 오래 참아낸 결과를 풍성한 수확으로 걷어내는 멋진 케이스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참는 것은 약하거나 패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능력이며 믿음이고 속사람의 성숙입니다. 어느 도시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초대받아 갔던 가정은 그야말로 오랜 시간을 참아낸 부부의 가정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재혼한 부부로써 서로 참아냈고 경제적 절망을 참아냈으며 유명한 요리사가 되는 인고의 시간들을 참아내고 전혀 협조적이지 않은 미국 경제의 흐름들을 이겨낸 인내의 챔피언들이었습니다.
자녀들은 친 형제보다 더한 형제, 자매가 되어 있었고 그중에 한 딸은 2세 목회자로 뛰고 있으며 그들 부부는 그 도시에서 가장 사업체를 많이 가진 첫 번째 부자로 꼽힐 뿐 아니라 교회봉사와 선교사역에 헌신하는 부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내의 경주 끝에 얻은 면류관이고 참아낸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선물들입니다. 그 부부의 얼굴에 넘쳐나고 있는 겸손의 광채는 어느 화장품으로도 만들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저 역시 참는데는 어느 정도 은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된 베델의 목회도 한마디로 인내와 참음의 연속입니다. 덕분에 교회 성도님들도 잘 참아내는 전문가들이 되어 있습니다. 저희 옆집 사람들도 어느날 집을 사고 떠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부부가 참아준 열매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