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억수같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유적지)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노승배(Rev. Barry Maxwell Rowe) 호주 선교사의 딸과 사위, 그리고 외손자 등 5명이다.


노승배 선교사는 목사안수를 받은 다음 해인 1965년, 간호사였던 그의 아내 원혜숙(Joan Warren) 선교사와 함께 호주연합교회 소속으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것이다. 노 선교사는 산업선교와, 노동의 삶과 영성을 접목시키는 농촌 선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공단이 조성되고 있던 울산 지역의 울산산업선교회에서 사역하였다.


그의 주된 사역은 울산 지역에서 산업화·도시화에 맞는 사역 개발과 산업 단지 안의 외국인을 위한 영어 예배 인도, 그리고 지역의 교계 지도자들과 신체장애자를 위한 자활프로그램 운영 등이었다.


그는 1966년에는 농촌의 가축개량을 돕기 위하여 대형 흰돼지와 염소를 호주에서 들여와, 번식과 분배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또 1969년에는 “양지직업훈련센터”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시계, 라디오, 전자기기, 은 가공, 진주목걸이가공 기술 등을 가르쳐 그들에게 자립심과 자기존중의식을 심어주는 사역도 감당하였다.


노승배 선교사는 1977년 호주로 돌아갈 때까지 10여년간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 맞춰 영남 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노승배 선교사의 큰 딸 쉐린(Sherrin Ford)은 5살 때부터 여름만 되면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에서 직접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이번 방문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생활했던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을 잊지 못해 찾아왔고, 한국교회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렇듯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유적지)은 한국교회에 선교사(史)적 의미는 물론, 선교사간 서로 협력하는 에큐메니칼 협력정신의 실천장으로서, 그리고 선교사들이 다양한 선교의 장을 펼치는 데 충전과 활력을 얻었던 근·현대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또 이곳의 중요성이 더한 것은, 외국의 선교사들의 흔적과 한국교회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선교사들에 의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한국교회에 귀속되어 있다. 그러나 지리산 선교사 유적지만은 한국교회와 선교사 후손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장(章)이 아니라, 이곳을 통해서 수많은 희생과 헌신으로 십자가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선교사들의 땀과 눈물과 기도를 모아, 새로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