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왕으로 40년 통치하던 기간에 하나님을 위하여 아주 거룩한 성전을 잘 지어 모시기를 무척 소원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통하여 용장이 되고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쳐부수고 제국주의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손에 피를 많이 묻혔기에 하나님이 그 손으로 성전짓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전쟁에서 승리해서 전리품으로 얻은 금은, 보석들이며 값진 물건들과 여러 나라 왕들이 조공으로 다윗에게 바친 귀중품들을 모두 하나님 성전 짓는 재료로 준비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의 성전 짓기를 갈망했습니다.
믿음의 담대함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이새라는 아버지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는 늘 형들을 대신해서 양을 돌보곤 했습니다.
다윗은 수천마리의 양떼를 지키며 밤을 새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간혹 홀로 양을 지키는 것이 속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기도하기를 힘썼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어갔습니다.
사무엘상17:4~7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는 말씀처럼 블레셋이 대군을 이끌로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너무나 거대한 블레셋 군에 기가죽어 어찌하지 못하고 떨고 있을 때 다윗은 사무엘상17:26에서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외쳤고 사무엘상17:37에서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합니다.
이것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심을 믿어지는 믿음의 담대함으로 골리앗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그 시대의 전술영웅이고 8척 장군이라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맷돌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다윗이 다가옴을 본 골리앗은 사무엘상17:43에서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합니다. 이에 다윗은 44절이하와 같이 블레셋 사람에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이것은 다윗은 자기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가 있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이 그의 중심을 어여삐 보시고 그 믿음을 인정하심으로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목동이었던 다윗을 제왕의 자리에까지 올리셨고,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과분하고 황송해서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여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성전을 지어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생활
다윗은 온 회중에게 “내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내 아들 솔로몬을 택하사 여호와의 나라 위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 하실새 내게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들리니 이는 내가 저를 택하여 내 아들을 삼고 나는 그 아비가 될 것임이라”(대상28:5-6)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는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대상28:9-10)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성전 설계도를 바탕으로 어떤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가늠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 성전 짓는데 바쳤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 전을 사모함으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라고 합니다. 사유라고 하는 것은 자기 개인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통한 전리품마저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5절에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성전짓기에 모두 드렸으니 너희 백성들 중에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거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모든족장 이스라엘의 모든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감독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팔천달란트 철 십만달란트를 드리고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인해 기뻐했고 보는 다윗도 즐거워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어지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못 믿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기대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마태복음6:19-21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6:24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죽은 뒤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자기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죽은 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이 지어드릴 수 없었어도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라도 성전을 지어드림으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자기입장이 떳떳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성막을 지으라 하셨을 때 모세가 한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억지로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마음에 하나님 성막을 지어 반드시 모시고 살 수 있음을 소원하는 사람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좋아져서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어여삐 보이고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대접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믿음이 있으면 너희 마음에 우러나는 자원하는 정성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했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저희가 성심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벨레스 살렘” 이라는 말입니다. 벨레스란 순수한 중심의 정성이란 뜻입니다. 자기 이름이 떨쳐지기를 바라는 목적도 없고 헌금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셔야 한다는 조건부 기대심리 때문도 아니라 온전히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저 받은 은혜가 너무나 감흡해서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기대도 걸지 아니하고 오히려 받은 것만 해도 분에 넘치게 감사히 생각하며 오히려 송구스런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성심껏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댓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연합
교회 다니는 목적은 성령을 받기 위함이어야 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성령에 이끌려 쓰임 받으며 하늘나라가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 다니고 믿음 생활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또 목숨과 육체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연합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생명의 본체시니 하나님과 함께하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4절에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영적인 믿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제 소망 있는 장소로 불러 주신 것은 우리가 천국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신 것으로 깨닫고 기쁨으로 하늘나라의 소망을 확실히 붙들고 믿어지는 믿음으로 사시면 여러분들도 언젠가 회개하고 거듭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으면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으로 살아 드릴 수밖에 없도록 되어지면 하늘나라에 반드시 가게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믿음의 담대함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이새라는 아버지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는 늘 형들을 대신해서 양을 돌보곤 했습니다.
다윗은 수천마리의 양떼를 지키며 밤을 새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간혹 홀로 양을 지키는 것이 속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기도하기를 힘썼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어갔습니다.
사무엘상17:4~7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는 말씀처럼 블레셋이 대군을 이끌로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너무나 거대한 블레셋 군에 기가죽어 어찌하지 못하고 떨고 있을 때 다윗은 사무엘상17:26에서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외쳤고 사무엘상17:37에서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합니다.
이것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심을 믿어지는 믿음의 담대함으로 골리앗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그 시대의 전술영웅이고 8척 장군이라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맷돌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다윗이 다가옴을 본 골리앗은 사무엘상17:43에서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합니다. 이에 다윗은 44절이하와 같이 블레셋 사람에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이것은 다윗은 자기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가 있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이 그의 중심을 어여삐 보시고 그 믿음을 인정하심으로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목동이었던 다윗을 제왕의 자리에까지 올리셨고,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과분하고 황송해서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여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성전을 지어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생활
다윗은 온 회중에게 “내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내 아들 솔로몬을 택하사 여호와의 나라 위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 하실새 내게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들리니 이는 내가 저를 택하여 내 아들을 삼고 나는 그 아비가 될 것임이라”(대상28:5-6)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는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대상28:9-10)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성전 설계도를 바탕으로 어떤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가늠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 성전 짓는데 바쳤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 전을 사모함으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라고 합니다. 사유라고 하는 것은 자기 개인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을 통한 전리품마저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5절에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성전짓기에 모두 드렸으니 너희 백성들 중에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거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모든족장 이스라엘의 모든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감독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팔천달란트 철 십만달란트를 드리고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인해 기뻐했고 보는 다윗도 즐거워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어지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못 믿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기대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마태복음6:19-21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6:24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죽은 뒤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자기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죽은 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이 지어드릴 수 없었어도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라도 성전을 지어드림으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자기입장이 떳떳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성막을 지으라 하셨을 때 모세가 한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억지로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마음에 하나님 성막을 지어 반드시 모시고 살 수 있음을 소원하는 사람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좋아져서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어여삐 보이고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대접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믿음이 있으면 너희 마음에 우러나는 자원하는 정성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했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저희가 성심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벨레스 살렘” 이라는 말입니다. 벨레스란 순수한 중심의 정성이란 뜻입니다. 자기 이름이 떨쳐지기를 바라는 목적도 없고 헌금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셔야 한다는 조건부 기대심리 때문도 아니라 온전히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저 받은 은혜가 너무나 감흡해서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기대도 걸지 아니하고 오히려 받은 것만 해도 분에 넘치게 감사히 생각하며 오히려 송구스런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성심껏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댓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연합
교회 다니는 목적은 성령을 받기 위함이어야 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성령에 이끌려 쓰임 받으며 하늘나라가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 다니고 믿음 생활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또 목숨과 육체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연합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생명의 본체시니 하나님과 함께하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4절에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영적인 믿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제 소망 있는 장소로 불러 주신 것은 우리가 천국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신 것으로 깨닫고 기쁨으로 하늘나라의 소망을 확실히 붙들고 믿어지는 믿음으로 사시면 여러분들도 언젠가 회개하고 거듭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으면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으로 살아 드릴 수밖에 없도록 되어지면 하늘나라에 반드시 가게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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