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콥 미주목회자지도위원회(위원장 송병기 목사)와 뉴욕목회자지도위원회(위원장 김원기 목사) 주관으로 '2012 목회자 선교세미나' 23일 뉴욕신광교회(담임 한재홍 목사)에서 최바울 인터콥 대표를 초청한 가운데 개최됐다. '중동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뉴욕지역 목회자들과 선교지도자들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최바울 대표는 이번 세미나에서 중동 민주화 흐름은 종말론적인 현상임을 강조하면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밖으로 노출되지 않은 엘리트층에 의해 주도되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며 지금은 이슬람에 유익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초기 중동 민주화는 친서방측 인사들에 의해 추진됐으나 현재는 이슬람 엘리트들이 중동 민주화의 주도권을 잡고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최방울 대표는 최근의 중동 민주화 이후 오히려 이슬람의 장악이 뚜렷해지면서 복음의 통로가 단절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민주화되고 있는 중동국가들은 대체로 집권자들이 기독교인이거나 친미, 민주적인 성향이 강했던 곳들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바울 대표는 현재의 중동 민주화 흐름은 예루살렘의 평화가 키워드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 'shalom'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국제정세를 보고 종말론적 현상을 잘 이해하고 갈 것을 주문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최바울 대표의 강의는 오후4시까지 같은 주제로 이어졌다. 다음은 이날 최바울 대표의 주요 강의 내용이다.
지금 일어나는 중동 민주화는 엘리트들에 의해 추진되는 프로젝트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민중봉기에 의한 독재자 추출사건은 아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평화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구속을 원하신다. 우리와 적그리스도와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원했다. 세례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했다. 그 당시 지도자들이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정치적인 메시야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제국에서 해방시키고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고 세계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 시온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랬고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역사적인 논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예루살렘의 정치적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의 shalom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지금도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시오니즘을 원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적 메시야를 또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루살렘의 평화다. 결국 예루살렘의 평화는 이뤄진다. 그런데 그 안에 정치적인 메시야가 군림한다. 그것은 적그리스도다.
중동 민주화는 형식적인 것이고 내용은 프로젝트라는 말씀을 드린다. 그러면 이것이 왜 전개되는지 또 이것이 적그리스도 체제와 연결되는지 단순히 한 가지만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다. 글로벌화 세계화가 경제적 세계화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전 지구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잘 봐야 한다. 지금 한국이 정말 선교에 있어 엄청나게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속사에 헌신하면서 글로벌적으로 나선다. 그러면서 UN 총재도 한국인, 국제금융 총재도 한국인이다. 세계 선교의 축이 되는 한국이자 세계 경제, 세계 정치의 축도 한국인이 맡고 있다. 이 조그마한 나라가 왜 그렇게 세계의 운명의 중심에 서서 맹렬히 달리는지 아주 놀랍다. 한국이 독특한 것 같다.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다. 대구도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그냥 하는 말은 아니고 희미한 영감이 흘렀던 것 같다. 학회들이 많은데 창조사학회에서 유대인의 혈통이 한국인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이 단 족속이고 중국에서 한자를 보면 노아방주에서 기원해서 숫자 ‘8’자가 생성됐다고 하기도 한다. 거기에 저에게 학문적으로 규명을 해달라고 계속 요청이 왔었다. 저는 세계적인 독일 저널에 논문을 기고했는데 학술저널이다. 논문이 채택되는 것이 쉽지 않고 독일사람들은 굉장히 까다로운데 실렸다. 그 이후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서울대, 고려대 등 대학들의 강의요청이 빗발쳤다. 이 학문의 연계성을 제가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짐작은 하지만 학술 논문으로 쓰는 것은 힘들다. 강해는 하고 설교는 하겠지만 학회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평화인 peace와 하나님의 평화인 shalom이 같이 움직였는데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면서 달라졌다. 뚜렷하게 peace와 shalom은 구별됐다. 세례요한은 감지를 했다. ‘그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고’는 빠지면서 헷갈리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어쨌든 peace와 shalom을 대부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peace도 필요하다. 오늘 사실은 예루살렘의 평화다. 중동 민주화는 그것을 위해 전개되는 극히 일부의 것이다. 같이 말씀을 보고자 한다. 단9:15-17
제가 예전에 이집트에 청년들만 모여서 3박4일 컨퍼런스를 했다. 우리 선교사들이 훈련시키는 청년들만 모았는데 하나님께서 현장에서 엄청나게 역사한다. 그 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 가느냐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니엘서 오늘 본문과 같이 완전히 예루살렘 주변을 둘러싸고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 주전 600년과 똑같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peace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중동소식을 듣는데 주로 peace가 주제다. 그리고 미국 정치, 백악관의 국제경영의 중심이 저것이다. 이것으로 미국 대통령이 판가름나기도 한다. peace 문제로 인해 대통령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사실 세계 대통령인데 그들의 운명이 예루살렘 문제로 바뀐다.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클린턴도 그렇고 지금 오바마도 그렇고 peace 예루살렘을 주요 이슈로 부각시킨다. 미국에 있는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바꿔치우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다 이것에 의해 바뀌어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주전 600년 전부터 해온 기도 peace라는 것은 엄청나게 오래된 기도다. 타종교가 하는 기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엄청난 고대종교가 살아남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인류 역사의 큰 주제를 두고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구속사적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그냥 고생하다가 끝나는 것이라고 치부하면 너무 인생의 깊이가 없고 어떻게 보면 영적인 깊이도 떨어진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이것은 주제 삼아 관심가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 작정으로 전개되지만 어떻게 보면 이 구속사를 거부하거나 왜곡시키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같이 보면서 영적 전쟁이니까 잘 해석하면서 가야 한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것이 영적인 현실이다.
우리가 20년 전만해도 로컬에 있었다. 글로벌은 와 닿지 않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글로벌 현상이 모든 세계의 로컬 현상을 지배하고 또 로컬이 글로벌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우리가 뉴욕에 있지만 세계를 봐야 하고 세계 현상이 뉴욕에 영향을 주고 뉴욕이 또 세계에 영향을 주는 시대다. 그래서 동시에 우리가 두 가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중동 민주화는 결국 peace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데 이것은 결국 되겠지만 언제 될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전 지구를 움직이는 현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현상이라는 말씀을 드리기 원한다. 영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마지막시대 그 말은 쓰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 개혁주의자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그런데 마지막시대라는 의미는 오순절부터도 마지막시대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도래하면서 새로운 교회의 시대가 열리기 때문에 마지막시대라는 말도 맞지만 사실은 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많은 주제가 있었지만 오순절은 딱 하나의 주제로 남는다. 모든 민족에 복음을 증거하면 역사의 완성이 된다고 했다. 오순절에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말했다. 아브라함에게도 모든 민족을 말씀하신다. 그 때는 모든 민족에 대한 개념이 희미할 때인데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 때 들어 모든 민족에서 히브리민족 중심으로 오랜 기간이 지났다. 모든 민족에서 히브리로, 히브리에서 다시 모든 민족으로 가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지 못한다. 마태복음 24장 1,2,3절을 보면 엄청난 신전을 짓는데 헤롯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큰 성전도 짓는다. 그런데 독충을 먹고 죽는다. 비겁한 중간자의 말로다.
어쨌든 성전을 엄청나게 재건을 했다. 제자들은 자기 동네를 볼 때 엄청난 신전이 있었다. 로마 신전의 특징은 큰 신전 앞에 다 황제의 신상을 보게 된다. 거대한 신상 앞에 위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위대했는데 보니까 초라한 것이다. 황제를 넘어서는 성전의 권위, 신전의 권위를 넘어서는 것을 보기 원하는데 엄청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정치적으로 권위를 행세하기를 바라는데 도대체 맥락이 없는 것이다. 신전을 쳐다보고 감탄하고 예수님 쳐다보고 멸시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때 당신이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또 정신을 못 차린다. 성전의 권위가 엄청났었는데 예수님은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진다고 하셨다. 종교적 권위에 의존해서 뭔가 하려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자들이 그 말로 충격을 받았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징조에 대해 물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깨진다는 것은 예루살렘 해체, 유대민족 해체를 뜻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을 중심으로 움직이시니까 유대민족이 해체되면 세계도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다. 예루살렘 해체를 세계의 종말로 봤다. 그런데 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도 깨지고 민족도 해체됐다. 그런데 세상은 멀쩡하다. 그래서 마태, 누가, 마가가 완전 초기교회 회중들에게 ‘그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해체가 세계 종말이 아니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세계의 끝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여전히 자기 민족만의 운명을 믿는 것이다.
예전에 제가 한번 한국에서 이슬람 세미나를 했는데 어떤 분이 막 욕을 했다. 대학 교수였는데 왜 이슬람을 위해 기도하느냐는 것이다. 이슬람 선교보다 중요한 것이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결국 세계의 운명이 유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운명이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민족에 대해 복음을 증거해야 끝이 온다고 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어느 때인지 물어본다.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의 미래와 운명도 다루시지만 그것보다는 성령을 받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그렇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민족이라고 하면 유대인도 포함은 되지만 선택된 민족으로서 특별한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만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종말이라고 하면 모든 민족이다.
역사는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하다 보니 인류가 나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목적이 있고 그것을 위해 전진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 역사가 끝난다. 그 과정에는 엄청난 역사 저항이 있다. 전진자가 전진시키는 역사에 저항이 있다는데 대해 잘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에 저항하고 먹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세계 최고의 권력이 예수님 하나를 잡기 위해서 모든 아이들을 집단으로 살해했다. 크리스마스 때 기쁘다 감사하다 그러는데 영아 살해 사건을 보면 그것이 현실인데 갑자기 기쁨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이상주의자지만 또 현실주의자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만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메시아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권력이 동원되서 영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로마 정치권력이 실패하니까 당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종교권력 유대인이 등장한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연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는데 그 때 정치권력, 정치권력 뿐만 아니라 사회세력, 민중까지 동원돼서 죽인 사건이다. 이것이 역사의 실체고 세계의 실체다.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런 것을 모두 온 몸에 안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십자가를 보면 다 보인다 국가는 무엇이고 사회는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인지. 십자가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절대 창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강력히 저항했다는 것이다.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다시 오실텐데 적그리스도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대환난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것이 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밥먹고 역사만 공부하는데 역사의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것이 왜 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블레싱이라는 축복이 있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축 교회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개화기에 한국에 선교사로 들어온 이들이 다 목 잘려 죽었다. 왜 운동성이 있는가. 역사의 저항이 있기 때문에 운동이 있는 것이다. 오순절부터는 마지막 시대다. 모든 민족을 위한 선교를 위해 성령이 움직이시고 이 사역을 진행해 가는데 거기에 저항하는 나라는 초토화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축복을 받았다. 그것을 저항하는 개인은 초토화되고 그것을 받는 개인은 축복을 받는다. 운명을 바꾸는 중심축이 바로 모든 민족이다. 딱 하나의 주제가 움직인다. 우리가 중요한 것은 어쨌든 복음화다.
89년에 13000개 복음화 종족, 미전도 종족 11000개 였다. 그 때부터 랄프 윈터 박사나 다 놀라서 선교를 향해 움직였다. 끝날에 어떻게 세계의 절반이 미전도 종족이냐는 것이었다. 2010년은 1500개 남았다. 엄청난 속도로 지난 20년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역사가 운동성이 있는데 지난 20년은 역사폭발이 일어났다. 우리가 이것을 도적같이 오리라는 것을 이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보다 빨리 온다는 것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의 때로 보면 2000년 대는 도적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탄이 지구적인 저항을 하는 것은 세상 끝날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마태복음 24:21
그 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후에도 이런 환난이 없다고 했는데 그러니 마지막 환난이라는 말씀이다. 중동판 적그리스도 체제가 가동되다가 지금은 전 지구적인 적그리스도 체제가 가동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배경에는 지중해가 중심인데 강력한 적그리스도 체제였다. 다니엘의 친구들을 풀무불에 넣기도 한다. 똑같이 로마 황제의 잔혹한 핍박이 초대교회에 있었는데 패턴은 같은데 확장되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임박한 마지막시대에 대한 예언이고 계시록과 맥락이 같다고도 한다. 주전 5,600년에 기록된 예언이 인류의 마지막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 놀라운데 그 패턴이라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제사를 폐하고 예배를 폐하고 가증한 것을 등장시키는데 다니엘서에서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영적인 세계를 100% 알수는 없지만 인류 역사를 볼 때 적그리스도의 세계 체제가 가동되는 것이다.
통계상으로 숫자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미전도종족을 나누는 기준도 각자 다르다. 비율은 중요하다. 복음화의 속도와 그 비율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도 같이 매카니즘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왕따라고 이야기했는데 모든 민족에 미움을 당하는 것, 크리스천이 지구 왕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구 왕따가 되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세상이 악해져서 진리를 추구하는 크리스천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적그리스도 공중권세 잡은 자의 개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동성결혼이다. 지금 동성결혼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하다. 우리 시대의 현상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5년 전에 동성연애를 지지한다고 해서 찍어준 것이다. 세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 이 시대의 표적이다. 그리고 급기야 민주당에서는 동성결혼을 당론으로 정했다. 그러데 이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거의 대부분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뉴질랜드는 오랜 전부터 합법화돼서 당연한 것이 됐다고 한다. 설교를 하면서 동성결혼을 비판하면 잡혀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동성결혼이 지금 이스라엘 수도에서는 매년 700만 명이 동성애자들이 모여서 퍼레이드를 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경찰들이 사이드카로 도와준다. 매년 연례행사다. 이스라엘 수도에서 이 일이 일어난다. 보통 일이 아니라 상징적인 일이다. 주께서 노아의 방주 때 심팜하실 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죄가 만연해서 내린 것이다. 지구가 공공연히 동성연애를 인정한다. 왜 이렇게 됐는가.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다. 4년째 동성애 관련된 법안이 올라온다. 세계리더클럽에 들어가니까 글로벌 트렌트, 글로벌 규범화의 기준이 적용된다. 우리 크리스천은 동성관계는 나쁘다고 말하면 왜 나쁘냐고 묻는다. 토론만 하면 동성애 찬성으로 시청자들이 돌아서는데 ‘징그럽잖아요’ 그런 식의 대답을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오히려 반발심이 일어날 것이다. 공개토론 하면 할 수록 왕따 될 가능성이 높다. 어설프게 똑똑한 집사는 그러니까 반대하지 말자고 우리만 하지 말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당장 미국은 법이 허용하는데 왜 당신은 그것을 비난하느냐고 법대로 따지면 걸리게 돼 있다. 지난 400년간의 치밀한 작전이다. 계몽주의자들이 있다. 그 이전을 타락한 중세시대를 암흑의 시대라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성으로 초점을 옮기고 유토피아를 주창했다. 계몽주의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를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말한다. 인간숭배의 시대가 열렸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발달했다. 어떤 경우에도 기본권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생명과 재산이었다. 그런데 과거의 왕은 전권을 누리고 있지만 얼굴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국가는 얼굴이 없다 비판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이후에 약자 보호, 장애인 보호, 여성 보호를 주창하면서 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맞는 가치다. 인권은 인류공동체의 절대적 가치로 400년간 구축했다. 위대한 인간으로 굳혔다. 그리고 소수자 인권보호를 딱 잡게 됐다. 인디언 보호도 그런 것이다. 그 이후 동성애를 소수자로 끼워 넣었다. 20년 전만해도 종교가 아니라고 하면 인권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최근 4년 5년 만에 변했다. 우리가 인권을 인정하고 지지하는데 절대 독재로 군림하면 기독교가 타겟이 된다. 기독교 글로벌 왕따 작전이 추진되는 것이다. 안티기독교 적그리스도 체제가 출범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고 작전이다.
다원주의는 다른 가치를 인정하게 하면서 기독교가 절대 진리임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라는 전략을 펴는 것이다. 그러니 인권을 절대 가치로 내세운다. 언젠가는 인권의 문제에 손대는 사람은 이제 제재를 가할 때가 온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인권이 지배하는 체제 하에 핍박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평화체제가 형성된다. 세계평화인데 이렇게 되면 세계통합정부의 출범도 생각하게 된다.
또 한가지 글로벌 종말론적 현상은 시장의 세계지배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삶은 곧 경제생활이라고 할만큼 노동을 통해 또 재화를 위해 살아왔다. 농장, 목장, 공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경제였는데 20년 사이에 급속하게 변하는 현상은 금융으로 모든 힘이 집중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를 금융자본주의로 끌고 가는데 이 펀드들이 양산되고 그 힘이 엄청나다. 금융이 농장, 목장을 공격하면 한번에 먹어버리고 파괴하고 그렇게 된다. 이 힘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사이버상을 통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한다. 경제 개념 중에 방어하는 개념도 있는데 공격에 대해 방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나라마다 돼 있다. 공격과 방어가 금융에서 나온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IMF 때 금융위기를 처음 들었는데 엄청난 자본들이 들어오니까 그런 현상도 겪게 된다. 엄청난 세력이 그리스를 또 공격했는데 그리스는 흔들흔들 초토화됐다.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도 공격한다는 루머에 국가 지도자들까지 바뀌게 된다. 몇 달 사이에 국가지도자가 금융공격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세계 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지금은 모든 국가가 금융에 의지하는 시스템이다. 옛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공격하면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다. 다른 기업들도 은행도 돈을 풀지 않고 묶어두는데 나라 전체에 영향이 오게 된다. 그러니 금융공격이라는 것이 모든 기업을 공격할 필요가 없다. 공격이 이렇게 쉬워지는 것은 세계경제가 금융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 공장, 목장에서 사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데 최근에 금융이 모든 파워를 갖고 있게 됐다. 금융은 매개자일 뿐인데 농장, 공장, 목장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매개체인데 아무것도 우리에게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오히려 전체를 장악했으니 이것이 이상한 것이다. 금융하시는 분들은 이런 것을 알고 해야 한다. 힘이 거기에 다 있기 때문에 엘리트들이 다 모인다. 여기서 우리는 왜 매개자가 이런 과도한 힘을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발휘하고 있는지 잘 봐야 한다. 뉴욕 월가의 펀드가 동경, 홍콩, 상하이, 싱가폴, 파리 등 24시간 움직인다. 그들은 자지도 않고 세계를 움직인다. 소위 매개자의 세계지배다. 그런데 성경은 적그리스도에 대해 계13:16-18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체제 사악한 사단의 시대 환난의 시대가 다가오게 되면 그 때는 작은 자 어린이 큰 자, 가난한 자 등등 봐주지 않는다. 공산당도 어린이나 노인은 봐줬다. 그런데 절대 봐주지 않는 절대체제라는 것이다.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매매권력이라는 표현을 봐야 하는데 돈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매매이다. 당시 지중해권에서 매매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매가 작은자, 큰자 가리지 않고 지배하게 되는 것은 절대권력이 됐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것을 읽었다면 안보이고 모른다. 적그리스도라고 하면 점을 찍으려고 했지 적그리스도 체제에 대해서는 몰랐다. 적그리스도 체제도 발달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 체제가 어떻게 발달할지 100년 전에는 몰랐다. 예수님이 해석한 것도 아닌데 다른 해석을 하지 않도록 교조적으로 나오는 해석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근대 세계의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4장을 봐야 한다. 유튜브에 어떤 영상을 한번 볼 필요가 있다. 100%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볼 필요는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신사도운동이 적그리스도 체제의 발달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잘 설명했다. 저는 스텝들과 신사도운동이 적그리스도 체제의 발달과 연결이 있다고 몇 번 이야기했다. 적그리스도 체제는 성도의 고난인데 이상하게 엄청나게 인기를 모으는데 고난을 이야기하지 않는 메시지가 급격하게 팽창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긍정적인 것을 말한다. 십자가가 없고 고난이 없다. 고난에 대한 저항력을 없애버린다. 막상 성공주의 번영주의 속에서 지내다가 고난이 딱 닥치면 그냥 무너진다. 제자화가 안됐기에 그냥 무너진다.
민족을 중심으로 국가가 하나의 단일을 이루고 이런 민족국가들이 모여서 세계정부를 이루고 그리고 거기에 각 나라별로 투표해서 권리를 행사하는 근대 세계 체제다. 그 전에는 왕이 지배했다. 혈통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것이다. 민족의 영광을 일어난 것이 1차 세계대전이다. 또 민족의 영광을 위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120개 민족국가였고 미국도 여러 민족이 뭉쳐진 국가다. 민족이 일어나면 이 두 나라는 해체된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세계 대전을 빌미로 민족이 지배하는 것을 해체시키고 사회주의 자유주의 보편주의다. 이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세계경제를 하나로 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댁 왔다. 이런 각도에서 민족과 민족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곳곳에 기근을 말씀하신다. 1년에 생산되는 식량은 80억이 먹을 만한 양이다. 그런데도 10억이 못먹어서 죽는다. 5년 전만해도 20:80을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1:99다. 그런데 말이 이렇지 1:1천만 인 것이 사실이다. 극단적인 것이다. 이런 가짜 세계가 실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계13:16-18의 수의 지배체제를 주목해야 한다.
최바울 대표는 이번 세미나에서 중동 민주화 흐름은 종말론적인 현상임을 강조하면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밖으로 노출되지 않은 엘리트층에 의해 주도되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며 지금은 이슬람에 유익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초기 중동 민주화는 친서방측 인사들에 의해 추진됐으나 현재는 이슬람 엘리트들이 중동 민주화의 주도권을 잡고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최방울 대표는 최근의 중동 민주화 이후 오히려 이슬람의 장악이 뚜렷해지면서 복음의 통로가 단절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민주화되고 있는 중동국가들은 대체로 집권자들이 기독교인이거나 친미, 민주적인 성향이 강했던 곳들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바울 대표는 현재의 중동 민주화 흐름은 예루살렘의 평화가 키워드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 'shalom'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국제정세를 보고 종말론적 현상을 잘 이해하고 갈 것을 주문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최바울 대표의 강의는 오후4시까지 같은 주제로 이어졌다. 다음은 이날 최바울 대표의 주요 강의 내용이다.
지금 일어나는 중동 민주화는 엘리트들에 의해 추진되는 프로젝트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민중봉기에 의한 독재자 추출사건은 아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평화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구속을 원하신다. 우리와 적그리스도와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원했다. 세례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했다. 그 당시 지도자들이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정치적인 메시야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제국에서 해방시키고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고 세계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 시온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랬고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역사적인 논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예루살렘의 정치적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의 shalom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지금도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시오니즘을 원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적 메시야를 또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루살렘의 평화다. 결국 예루살렘의 평화는 이뤄진다. 그런데 그 안에 정치적인 메시야가 군림한다. 그것은 적그리스도다.
중동 민주화는 형식적인 것이고 내용은 프로젝트라는 말씀을 드린다. 그러면 이것이 왜 전개되는지 또 이것이 적그리스도 체제와 연결되는지 단순히 한 가지만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다. 글로벌화 세계화가 경제적 세계화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전 지구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잘 봐야 한다. 지금 한국이 정말 선교에 있어 엄청나게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속사에 헌신하면서 글로벌적으로 나선다. 그러면서 UN 총재도 한국인, 국제금융 총재도 한국인이다. 세계 선교의 축이 되는 한국이자 세계 경제, 세계 정치의 축도 한국인이 맡고 있다. 이 조그마한 나라가 왜 그렇게 세계의 운명의 중심에 서서 맹렬히 달리는지 아주 놀랍다. 한국이 독특한 것 같다.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다. 대구도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그냥 하는 말은 아니고 희미한 영감이 흘렀던 것 같다. 학회들이 많은데 창조사학회에서 유대인의 혈통이 한국인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이 단 족속이고 중국에서 한자를 보면 노아방주에서 기원해서 숫자 ‘8’자가 생성됐다고 하기도 한다. 거기에 저에게 학문적으로 규명을 해달라고 계속 요청이 왔었다. 저는 세계적인 독일 저널에 논문을 기고했는데 학술저널이다. 논문이 채택되는 것이 쉽지 않고 독일사람들은 굉장히 까다로운데 실렸다. 그 이후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서울대, 고려대 등 대학들의 강의요청이 빗발쳤다. 이 학문의 연계성을 제가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짐작은 하지만 학술 논문으로 쓰는 것은 힘들다. 강해는 하고 설교는 하겠지만 학회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평화인 peace와 하나님의 평화인 shalom이 같이 움직였는데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면서 달라졌다. 뚜렷하게 peace와 shalom은 구별됐다. 세례요한은 감지를 했다. ‘그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고’는 빠지면서 헷갈리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어쨌든 peace와 shalom을 대부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peace도 필요하다. 오늘 사실은 예루살렘의 평화다. 중동 민주화는 그것을 위해 전개되는 극히 일부의 것이다. 같이 말씀을 보고자 한다. 단9:15-17
제가 예전에 이집트에 청년들만 모여서 3박4일 컨퍼런스를 했다. 우리 선교사들이 훈련시키는 청년들만 모았는데 하나님께서 현장에서 엄청나게 역사한다. 그 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 가느냐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니엘서 오늘 본문과 같이 완전히 예루살렘 주변을 둘러싸고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 주전 600년과 똑같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peace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중동소식을 듣는데 주로 peace가 주제다. 그리고 미국 정치, 백악관의 국제경영의 중심이 저것이다. 이것으로 미국 대통령이 판가름나기도 한다. peace 문제로 인해 대통령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사실 세계 대통령인데 그들의 운명이 예루살렘 문제로 바뀐다.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클린턴도 그렇고 지금 오바마도 그렇고 peace 예루살렘을 주요 이슈로 부각시킨다. 미국에 있는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바꿔치우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다 이것에 의해 바뀌어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주전 600년 전부터 해온 기도 peace라는 것은 엄청나게 오래된 기도다. 타종교가 하는 기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엄청난 고대종교가 살아남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인류 역사의 큰 주제를 두고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구속사적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그냥 고생하다가 끝나는 것이라고 치부하면 너무 인생의 깊이가 없고 어떻게 보면 영적인 깊이도 떨어진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이것은 주제 삼아 관심가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 작정으로 전개되지만 어떻게 보면 이 구속사를 거부하거나 왜곡시키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같이 보면서 영적 전쟁이니까 잘 해석하면서 가야 한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것이 영적인 현실이다.
우리가 20년 전만해도 로컬에 있었다. 글로벌은 와 닿지 않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글로벌 현상이 모든 세계의 로컬 현상을 지배하고 또 로컬이 글로벌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우리가 뉴욕에 있지만 세계를 봐야 하고 세계 현상이 뉴욕에 영향을 주고 뉴욕이 또 세계에 영향을 주는 시대다. 그래서 동시에 우리가 두 가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중동 민주화는 결국 peace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데 이것은 결국 되겠지만 언제 될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전 지구를 움직이는 현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현상이라는 말씀을 드리기 원한다. 영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마지막시대 그 말은 쓰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 개혁주의자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그런데 마지막시대라는 의미는 오순절부터도 마지막시대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도래하면서 새로운 교회의 시대가 열리기 때문에 마지막시대라는 말도 맞지만 사실은 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많은 주제가 있었지만 오순절은 딱 하나의 주제로 남는다. 모든 민족에 복음을 증거하면 역사의 완성이 된다고 했다. 오순절에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말했다. 아브라함에게도 모든 민족을 말씀하신다. 그 때는 모든 민족에 대한 개념이 희미할 때인데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 때 들어 모든 민족에서 히브리민족 중심으로 오랜 기간이 지났다. 모든 민족에서 히브리로, 히브리에서 다시 모든 민족으로 가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지 못한다. 마태복음 24장 1,2,3절을 보면 엄청난 신전을 짓는데 헤롯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큰 성전도 짓는다. 그런데 독충을 먹고 죽는다. 비겁한 중간자의 말로다.
어쨌든 성전을 엄청나게 재건을 했다. 제자들은 자기 동네를 볼 때 엄청난 신전이 있었다. 로마 신전의 특징은 큰 신전 앞에 다 황제의 신상을 보게 된다. 거대한 신상 앞에 위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위대했는데 보니까 초라한 것이다. 황제를 넘어서는 성전의 권위, 신전의 권위를 넘어서는 것을 보기 원하는데 엄청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정치적으로 권위를 행세하기를 바라는데 도대체 맥락이 없는 것이다. 신전을 쳐다보고 감탄하고 예수님 쳐다보고 멸시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때 당신이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또 정신을 못 차린다. 성전의 권위가 엄청났었는데 예수님은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진다고 하셨다. 종교적 권위에 의존해서 뭔가 하려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자들이 그 말로 충격을 받았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징조에 대해 물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깨진다는 것은 예루살렘 해체, 유대민족 해체를 뜻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을 중심으로 움직이시니까 유대민족이 해체되면 세계도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다. 예루살렘 해체를 세계의 종말로 봤다. 그런데 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도 깨지고 민족도 해체됐다. 그런데 세상은 멀쩡하다. 그래서 마태, 누가, 마가가 완전 초기교회 회중들에게 ‘그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해체가 세계 종말이 아니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세계의 끝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여전히 자기 민족만의 운명을 믿는 것이다.
예전에 제가 한번 한국에서 이슬람 세미나를 했는데 어떤 분이 막 욕을 했다. 대학 교수였는데 왜 이슬람을 위해 기도하느냐는 것이다. 이슬람 선교보다 중요한 것이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결국 세계의 운명이 유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운명이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민족에 대해 복음을 증거해야 끝이 온다고 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어느 때인지 물어본다.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의 미래와 운명도 다루시지만 그것보다는 성령을 받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그렇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민족이라고 하면 유대인도 포함은 되지만 선택된 민족으로서 특별한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만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종말이라고 하면 모든 민족이다.
역사는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하다 보니 인류가 나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목적이 있고 그것을 위해 전진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 역사가 끝난다. 그 과정에는 엄청난 역사 저항이 있다. 전진자가 전진시키는 역사에 저항이 있다는데 대해 잘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에 저항하고 먹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세계 최고의 권력이 예수님 하나를 잡기 위해서 모든 아이들을 집단으로 살해했다. 크리스마스 때 기쁘다 감사하다 그러는데 영아 살해 사건을 보면 그것이 현실인데 갑자기 기쁨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이상주의자지만 또 현실주의자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만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메시아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권력이 동원되서 영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로마 정치권력이 실패하니까 당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종교권력 유대인이 등장한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연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는데 그 때 정치권력, 정치권력 뿐만 아니라 사회세력, 민중까지 동원돼서 죽인 사건이다. 이것이 역사의 실체고 세계의 실체다.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런 것을 모두 온 몸에 안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십자가를 보면 다 보인다 국가는 무엇이고 사회는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인지. 십자가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절대 창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강력히 저항했다는 것이다.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다시 오실텐데 적그리스도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대환난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것이 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밥먹고 역사만 공부하는데 역사의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것이 왜 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블레싱이라는 축복이 있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축 교회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개화기에 한국에 선교사로 들어온 이들이 다 목 잘려 죽었다. 왜 운동성이 있는가. 역사의 저항이 있기 때문에 운동이 있는 것이다. 오순절부터는 마지막 시대다. 모든 민족을 위한 선교를 위해 성령이 움직이시고 이 사역을 진행해 가는데 거기에 저항하는 나라는 초토화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축복을 받았다. 그것을 저항하는 개인은 초토화되고 그것을 받는 개인은 축복을 받는다. 운명을 바꾸는 중심축이 바로 모든 민족이다. 딱 하나의 주제가 움직인다. 우리가 중요한 것은 어쨌든 복음화다.
89년에 13000개 복음화 종족, 미전도 종족 11000개 였다. 그 때부터 랄프 윈터 박사나 다 놀라서 선교를 향해 움직였다. 끝날에 어떻게 세계의 절반이 미전도 종족이냐는 것이었다. 2010년은 1500개 남았다. 엄청난 속도로 지난 20년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역사가 운동성이 있는데 지난 20년은 역사폭발이 일어났다. 우리가 이것을 도적같이 오리라는 것을 이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보다 빨리 온다는 것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의 때로 보면 2000년 대는 도적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탄이 지구적인 저항을 하는 것은 세상 끝날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마태복음 24:21
그 때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후에도 이런 환난이 없다고 했는데 그러니 마지막 환난이라는 말씀이다. 중동판 적그리스도 체제가 가동되다가 지금은 전 지구적인 적그리스도 체제가 가동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배경에는 지중해가 중심인데 강력한 적그리스도 체제였다. 다니엘의 친구들을 풀무불에 넣기도 한다. 똑같이 로마 황제의 잔혹한 핍박이 초대교회에 있었는데 패턴은 같은데 확장되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임박한 마지막시대에 대한 예언이고 계시록과 맥락이 같다고도 한다. 주전 5,600년에 기록된 예언이 인류의 마지막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 놀라운데 그 패턴이라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제사를 폐하고 예배를 폐하고 가증한 것을 등장시키는데 다니엘서에서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영적인 세계를 100% 알수는 없지만 인류 역사를 볼 때 적그리스도의 세계 체제가 가동되는 것이다.
통계상으로 숫자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미전도종족을 나누는 기준도 각자 다르다. 비율은 중요하다. 복음화의 속도와 그 비율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도 같이 매카니즘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왕따라고 이야기했는데 모든 민족에 미움을 당하는 것, 크리스천이 지구 왕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구 왕따가 되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세상이 악해져서 진리를 추구하는 크리스천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적그리스도 공중권세 잡은 자의 개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동성결혼이다. 지금 동성결혼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하다. 우리 시대의 현상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5년 전에 동성연애를 지지한다고 해서 찍어준 것이다. 세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 이 시대의 표적이다. 그리고 급기야 민주당에서는 동성결혼을 당론으로 정했다. 그러데 이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거의 대부분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뉴질랜드는 오랜 전부터 합법화돼서 당연한 것이 됐다고 한다. 설교를 하면서 동성결혼을 비판하면 잡혀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동성결혼이 지금 이스라엘 수도에서는 매년 700만 명이 동성애자들이 모여서 퍼레이드를 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경찰들이 사이드카로 도와준다. 매년 연례행사다. 이스라엘 수도에서 이 일이 일어난다. 보통 일이 아니라 상징적인 일이다. 주께서 노아의 방주 때 심팜하실 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죄가 만연해서 내린 것이다. 지구가 공공연히 동성연애를 인정한다. 왜 이렇게 됐는가.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다. 4년째 동성애 관련된 법안이 올라온다. 세계리더클럽에 들어가니까 글로벌 트렌트, 글로벌 규범화의 기준이 적용된다. 우리 크리스천은 동성관계는 나쁘다고 말하면 왜 나쁘냐고 묻는다. 토론만 하면 동성애 찬성으로 시청자들이 돌아서는데 ‘징그럽잖아요’ 그런 식의 대답을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오히려 반발심이 일어날 것이다. 공개토론 하면 할 수록 왕따 될 가능성이 높다. 어설프게 똑똑한 집사는 그러니까 반대하지 말자고 우리만 하지 말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당장 미국은 법이 허용하는데 왜 당신은 그것을 비난하느냐고 법대로 따지면 걸리게 돼 있다. 지난 400년간의 치밀한 작전이다. 계몽주의자들이 있다. 그 이전을 타락한 중세시대를 암흑의 시대라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성으로 초점을 옮기고 유토피아를 주창했다. 계몽주의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를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말한다. 인간숭배의 시대가 열렸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발달했다. 어떤 경우에도 기본권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생명과 재산이었다. 그런데 과거의 왕은 전권을 누리고 있지만 얼굴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국가는 얼굴이 없다 비판할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이후에 약자 보호, 장애인 보호, 여성 보호를 주창하면서 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맞는 가치다. 인권은 인류공동체의 절대적 가치로 400년간 구축했다. 위대한 인간으로 굳혔다. 그리고 소수자 인권보호를 딱 잡게 됐다. 인디언 보호도 그런 것이다. 그 이후 동성애를 소수자로 끼워 넣었다. 20년 전만해도 종교가 아니라고 하면 인권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최근 4년 5년 만에 변했다. 우리가 인권을 인정하고 지지하는데 절대 독재로 군림하면 기독교가 타겟이 된다. 기독교 글로벌 왕따 작전이 추진되는 것이다. 안티기독교 적그리스도 체제가 출범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고 작전이다.
다원주의는 다른 가치를 인정하게 하면서 기독교가 절대 진리임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라는 전략을 펴는 것이다. 그러니 인권을 절대 가치로 내세운다. 언젠가는 인권의 문제에 손대는 사람은 이제 제재를 가할 때가 온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인권이 지배하는 체제 하에 핍박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평화체제가 형성된다. 세계평화인데 이렇게 되면 세계통합정부의 출범도 생각하게 된다.
또 한가지 글로벌 종말론적 현상은 시장의 세계지배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삶은 곧 경제생활이라고 할만큼 노동을 통해 또 재화를 위해 살아왔다. 농장, 목장, 공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경제였는데 20년 사이에 급속하게 변하는 현상은 금융으로 모든 힘이 집중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를 금융자본주의로 끌고 가는데 이 펀드들이 양산되고 그 힘이 엄청나다. 금융이 농장, 목장을 공격하면 한번에 먹어버리고 파괴하고 그렇게 된다. 이 힘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사이버상을 통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한다. 경제 개념 중에 방어하는 개념도 있는데 공격에 대해 방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나라마다 돼 있다. 공격과 방어가 금융에서 나온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IMF 때 금융위기를 처음 들었는데 엄청난 자본들이 들어오니까 그런 현상도 겪게 된다. 엄청난 세력이 그리스를 또 공격했는데 그리스는 흔들흔들 초토화됐다.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도 공격한다는 루머에 국가 지도자들까지 바뀌게 된다. 몇 달 사이에 국가지도자가 금융공격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세계 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지금은 모든 국가가 금융에 의지하는 시스템이다. 옛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공격하면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다. 다른 기업들도 은행도 돈을 풀지 않고 묶어두는데 나라 전체에 영향이 오게 된다. 그러니 금융공격이라는 것이 모든 기업을 공격할 필요가 없다. 공격이 이렇게 쉬워지는 것은 세계경제가 금융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 공장, 목장에서 사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데 최근에 금융이 모든 파워를 갖고 있게 됐다. 금융은 매개자일 뿐인데 농장, 공장, 목장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매개체인데 아무것도 우리에게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오히려 전체를 장악했으니 이것이 이상한 것이다. 금융하시는 분들은 이런 것을 알고 해야 한다. 힘이 거기에 다 있기 때문에 엘리트들이 다 모인다. 여기서 우리는 왜 매개자가 이런 과도한 힘을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발휘하고 있는지 잘 봐야 한다. 뉴욕 월가의 펀드가 동경, 홍콩, 상하이, 싱가폴, 파리 등 24시간 움직인다. 그들은 자지도 않고 세계를 움직인다. 소위 매개자의 세계지배다. 그런데 성경은 적그리스도에 대해 계13:16-18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체제 사악한 사단의 시대 환난의 시대가 다가오게 되면 그 때는 작은 자 어린이 큰 자, 가난한 자 등등 봐주지 않는다. 공산당도 어린이나 노인은 봐줬다. 그런데 절대 봐주지 않는 절대체제라는 것이다.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매매권력이라는 표현을 봐야 하는데 돈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매매이다. 당시 지중해권에서 매매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매가 작은자, 큰자 가리지 않고 지배하게 되는 것은 절대권력이 됐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것을 읽었다면 안보이고 모른다. 적그리스도라고 하면 점을 찍으려고 했지 적그리스도 체제에 대해서는 몰랐다. 적그리스도 체제도 발달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 체제가 어떻게 발달할지 100년 전에는 몰랐다. 예수님이 해석한 것도 아닌데 다른 해석을 하지 않도록 교조적으로 나오는 해석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근대 세계의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4장을 봐야 한다. 유튜브에 어떤 영상을 한번 볼 필요가 있다. 100%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볼 필요는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신사도운동이 적그리스도 체제의 발달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잘 설명했다. 저는 스텝들과 신사도운동이 적그리스도 체제의 발달과 연결이 있다고 몇 번 이야기했다. 적그리스도 체제는 성도의 고난인데 이상하게 엄청나게 인기를 모으는데 고난을 이야기하지 않는 메시지가 급격하게 팽창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긍정적인 것을 말한다. 십자가가 없고 고난이 없다. 고난에 대한 저항력을 없애버린다. 막상 성공주의 번영주의 속에서 지내다가 고난이 딱 닥치면 그냥 무너진다. 제자화가 안됐기에 그냥 무너진다.
민족을 중심으로 국가가 하나의 단일을 이루고 이런 민족국가들이 모여서 세계정부를 이루고 그리고 거기에 각 나라별로 투표해서 권리를 행사하는 근대 세계 체제다. 그 전에는 왕이 지배했다. 혈통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것이다. 민족의 영광을 일어난 것이 1차 세계대전이다. 또 민족의 영광을 위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120개 민족국가였고 미국도 여러 민족이 뭉쳐진 국가다. 민족이 일어나면 이 두 나라는 해체된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세계 대전을 빌미로 민족이 지배하는 것을 해체시키고 사회주의 자유주의 보편주의다. 이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세계경제를 하나로 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댁 왔다. 이런 각도에서 민족과 민족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곳곳에 기근을 말씀하신다. 1년에 생산되는 식량은 80억이 먹을 만한 양이다. 그런데도 10억이 못먹어서 죽는다. 5년 전만해도 20:80을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1:99다. 그런데 말이 이렇지 1:1천만 인 것이 사실이다. 극단적인 것이다. 이런 가짜 세계가 실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계13:16-18의 수의 지배체제를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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