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 130년 만에 개신교는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의 종교가 되고 제도적으로 자리잡은 종교가 되었다. 청교도적 윤리를 통하여 사회를 개화하고 근대화에 앞장서고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주도하는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지난날 선조들이 이룩한 아름다운 전통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기독교가 해방 이후에 크게 성장하는 가운데 교회의 분열이 있었고, 제도종교로서 자리잡자 1997년 장로교 대형교회의 세습으로부터 시작하여 2000년대부터 대부분 감리교 대형교회의 세습이 일제히 이루어졌다. 장로교에도 변칙세습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감독회장 자리를 두고 교권 쟁취를 위한 수 년차 법정소송으로 가는 분쟁이 있었다. 장자교단이라고 자존감을 갖는 교단의 2012년 9월 총회에서 교단 총무가 신변 보호를 위해 용역들을 동원하고 가스총을 가지고 등장하고, 구설수에 오른 총회장은 변칙으로 총회를 끝냈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어 항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감리교는 자정(自淨)의 획기적인 표시로서 자교단에 만연하는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개신교는 오랜만에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좋은 불씨는 감리교에만 머물지 말고 장로교로 확산되어 세습금지와 더불어 교단의 부조리한 구조를 정화하는 윤리적 쇄신이 요청된다.

I. 초창기 한국 개신교의 청교도적 윤리: 반상(班常)의 계급의식 타파, 약자와 소외자의 옹호, 절제(부모공경, 축첩을 비롯한 불법 결혼 금지, 술취함과 노름과 아편 금지) 운동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기독교가 전통 종교인 불교나 유교의 벽을 허물고 조선 말에 민중들 사이에 파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복음이 가졌던 탁월한 윤리의식 덕이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 평등사상은 사회계급(양반과 상인)의식을 타파하였다. 이것은 바로 근대화 정신을 심어주었고 조선말 지식인들이 대거 민족의 개화를 위하여 기독교로 몰려오게 만들었다. 기독교는 근대적 생활윤리를 제시했다. 조상숭배인 제사금지, 안식일 준수, 부모공경, 축첩을 비롯한 불법 결혼 금지, 술취함과 노름, 아편 금지 등을 세례의 조건으로 규정하였다. 금주금연의 절제운동은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물산장려운동과 연계되어 전개되었다. 절제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하에서 윤리적인 개혁과 함께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자 했던 사회개혁운동이었다. 초창기 기독교는 양반지주 계급의 폭정에 신음하는 민중의 편에 섰고, 더욱이 나라를 강탈한 일제의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독립을 원하는 애국지사들의 편에 섰다. 권력자나 가진 자의 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한 소외자의 편에 섰고, 탐관오리에 박해받는 민중과 일제에 추격당하는 애국지사의 도피처 역할을 했다. 기독교는 사회윤리적으로 탁월해서 민중만이 아니라 지식인들에게까지 희망을 주었다. 초창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회의 등대로서 교회를 세우고 비추는 선구자로서 민족을 선도하고 사회의 존경받는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130년을 거쳐서 사회적으로 제도종교로 자리잡고 난 후에 오늘날 후예들은 초기 선배들의 위대한 정신과 윤리를 망각하고 기존 종교들이 가졌던 기득권 싸움과 세습과 권력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데 더 안달하고 있다. 오늘날 개신교는 10년째 성장세가 감소하고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의식있는 젊은이와 지식인들은 교회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II. 오늘날 관료들 윤리보다 못한 일부 목회자의 윤리
1. 정치인들, 관료들에게 요구하는 윤리


한국사회는 공직자의 행동에 있어서 일반인보다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고 있다. 즉 형법으로 규율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윤리적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정부윤리법에서 보는 것처럼 명백한 형법의 위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권과 관련성이 없는 소액의 선물수수나 혹은 퇴직 공직자의 사기업에 대한 취임을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공직자 선거법은 당선인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요건을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 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의 요건인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으로 하고 있다. 공직자는 퇴직일부터 2년 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 등에 취업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직자들에게 설교하고 이들을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보다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목회자들은 보다 엄격한 윤리로써 교회봉직 함으로써 교인인 공직자들에게 도덕적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목회자들은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견디어 내어야 한다. 교회 선거나 각종 승계 등의 경우에도 보다 높은 윤리적 잣대를 적용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목회자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교회 세습이 금지되어야 할 이유다.

2. 장자교단 총무와 총회장의 부끄러운 행태

그런데 오늘날 일부 한국개신교 목회자들의 형태는 심각한 윤리적 무정부 상황에 빠져 있다. 다음은 “개신교 '부글부글'‥교회 세습 '이전투구'” 라는 제목으로 MBC 등 일반 언론에 보도된 지난 2012년 9월 중순에 개최된 장자교단이라는 장로교 총회의 모습이다. “지난달 중순, 3백만 명의 신자가 소속된 한국 개신교 최대 교단의 총회 현장. 단상에 선 남자가 갑자기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듭니다.” “최근 교단 대표목사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는 와중에, 선출된 대표목사의 유흥업소 출입의혹이 제기됐고, 대표목사를 지지하는 총무목사가 신변을 보호하겠다며 용역을 동원한 데 이어 가스총까지 집어든 것입니다.”(MBC|조현용 기자|입력2012.10.03 22:09|수정2012.10.03 22:36, 뉴스데스크). 이 보도 장면은 정치인들이 모인 국회 단상에서 있었던 최류탄 투하와 비견될만한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 소위 성(聖)총회에서 일어난 것이다. ‘한국교회의 장자 교단’ ‘보수신학의 보루’ 라고 자존감을 갖던 교단이 저 모양이 되었으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리하여 9월 27일 총회회관에서 회집된 비상대책위원회 모임에서는 87명의 노회장이 모였고 교단 정상화를 위해 법적대응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교단소속의 대학교 학부와 신대원 교수 일동이 성명을 내고 ”97회 총회 시에 만행을 저지른 당사자들은 스스로 회개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교수회는 이번 사건과 함께 은급부의 납골당, 아이티 구제헌금, GMS사태, 금권타락선거 등에 연루된 당사자들도 책임지는 처신을 할 것을 촉구했다.

III. 세상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목회자의 세습
1. 재벌이나 권력층의 세습 경영을 답습한 대형교회 세습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강하며, 시민들은 재벌 2세들이 동네 빵집이나 치킨집·구멍가게에까지 진출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재벌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세계적인 기업들과 겨루면서 세계 시장에서 돈을 벌어와 국가 경제를 살찌우는 것에 쓰지 않고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데 혈안이 된다면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하게 된다.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 자녀들을 요직에 넣는 사회의 권력층에 대하여 국민들의 감정이 아주 좋지 않다. 외무부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장관이 물러났고,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구입 과정에 대하여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고, 이에 대한 특검까지 하리만큼 국민들의 정서가 비등하였다.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공직자들에 대하여는 보다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다. 그런데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은 이러한 시민들의 건전한 양식(良識)이 요구하는 윤리수준을 도외시하고 세습(世襲) 등이 성경에서 명확히 금지하는 것이 아니니까, 해도 된다는 행태 때문에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신칭의는 만발하나 이에 상응하는 성화의 삶은 뒤따르지 않는다. 본회퍼 말처럼 싸구려 은혜가 남발되고 제자직의 대가를 치루는 윤리와 성화의 노력은 찾기 어렵다.

2. 교회 공동체보다는 자기 혈육 위주로 생각하는 세상적 사고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신자가 이 세상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삶을 가르치고 보여주는 데 진지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세상적인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위나 아들이 교회를 이어받아 목회를 잘하면 흐뭇하고, 교회도 안정적”이라며 교회 물려주기를 옹호하는 것은 자기 혈육 위주로 보는 세상적 관행이지 않는가? 세습에 대한 가부(可否)를 공동회의에 부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조건 승복하겠다”는 것은 아직도 세상의 윤리에 따라 자기 정당화 하려는 것이지 세상윤리보다 높은 잣대로 생각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것은 목회자의 사회윤리의식이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지나치게 사치한 생활을 하고, 화려한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룸살롱에 다니고, 수천명 출석교회를 세습하는 것 등에 대해 관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에는 사회적 배려가 부재하고 있다.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기를 먹으므로 형제를 실족시킨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전 8:13)고 하였다. 사회적 요구에 반하는 목회자의 행태를 보는 교인들은 그의 처신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고 일반 사회인들은 실망하고 있다. 바울은 말한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 8:12 ). 예수는 복음을 위하여 혈연을 부정하라고 가르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8-50). 손양원, 주기철, 한경직 목사는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기에 오늘날 한국교회의 정신이 되고 있으며 그루터기로서 교인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있다. 이들만큼 되지는 못할지언정 일부 목회자들의 이기주의 행태로 인하여 하나님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대형장로교 W교회는 감리교 세습금지법 통과 후 최초로 세습을 공동의회에서 가결하여 교회적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IV. 십자가 희생의 윤리가 요청된다
1. 신자의 윤리는 세상의 윤리보다 엄격해야


감리교 세습금지법이 금지한 것은 부친이나 장인이 물려주는 목회자로의 소명이나 직업이 아니라 교회당이라는 재산권과 인사권과 관련된 담임목사직 대물림이다. 지난 동구권 공산정권에서는 목회자 자녀가 다시 목회자가 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자유 민주사회에서는 정부가 이를 막지 않는다. 시민 어느 누구도 신앙과 소명을 받은 자녀가 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가문의 영적 가계를 잇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만하다. 시민들이 비난하고 양식있는 신자들이 반대하는 것은 엄청난 재정권과 인사권을 보장받는 담임목사직의 세습이다. 목회 세습과 교회 세습을 구별해야 한다. 목회 세습은 고귀한 목회의 소명과 정신을 대이음하는 것이나, 교회 세습은 종교적인 거대한 재산과 권력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교회 세습은 세상의 재벌 기업가의 재산세습이나 독재자의 권력 세습과 같은 맥락에서 비난받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과 사회정의에 각성된 지식인들이 개신교에 실망하고 천주교로 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천주교가 오랜 전통을 거치면서 확립한 천주교 사제들의 윤리규범 때문이다. 11세기까지 내려온 천주교의 주교좌성당 세습은 교회의 화합을 해치고, 사교회화(私敎會化)하여, 공교회성(公敎會性)을 약화시켰다. 이에 대하여 수도사 출신 교황 11세기 그레고리 7세가 성직 매매 금지, 사제 결혼 금지 등 개혁령을 내렸다. 그 후 천주교 성직자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게 되었으며 독신으로 생활해야 했다. 천주교 신부들은 가족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윤리적으로 추문에 시달릴 여지가 줄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에 감리교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것이다.

2. 나의 뜻(혈육 가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신앙의 가문)이 이루어져야

만약 한 아들이 정말 참되고 진실되고 더할나위 없이 신앙이 깊고 성품이 신중하여 그 누구 보다도 더 잘 교회를 이끌 능력이 된다면 그가 반드시 그 부친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봉직할 필요는 없다. 그는 얼마든지 교회를 개척할 수 있고, 또는 그를 청빙하는 다른 교회에서 담임목사로서 아버지의 목회 경험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공직자들에게도 세습을 금지한다면, 그 원칙은 공직자를 신자로서 돌보는 목회자에게 더욱 더 적용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전(殿)이기 때문에 세상 기관보다는 더욱더 엄격한 윤리와 행동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교회는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세상의 양식(良識) 기준을 따라야만 할뿐 아니라 보다 높은 윤리적 잣대를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려는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은 자신을 쳐복종시키며 자기 가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3. 복음의 윤리는 번영과 영달(榮達)의 윤리 아닌 헌신과 희생의 윤리

오늘날 상당수 한국의 강단에는 십자가의 복음은 없고, 번영과 성취와 영달의 기복적 복음이 지배하고 있다. 복음은 샤마니즘이 아니다. 샤마니즘은 세속적 번영과 영달을 구하고 이를 위하여 재물을 신들에게 바치고 정성을 드리라고 한다. 그러나 복음은 자기 몸을 희생으로 주신 그리스도의 고통과 헌신을 본받으라고 가르친다. 복음은 십자가라는 고난과 대속의 희생에 감격하여 자기의 정과 욕심을 쳐복종 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가르친다. 예수는 세상적으로 실패한 분이시다. 예수는 실패함으로 인류를 대속하신 분이시다. 한국 기독교는 예수가 가르쳐주신 십자가 복음의 윤리를 엄격하게 자신들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는 이행(以行)칭의가 아니라 “율법의 제3의 용법,” 즉 복음적 사용이며,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여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길이 열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세습하는 교회는 어두운 사회를 밝힐 수 없다.

맺음말: 장로교를 비롯한 모든 교단들이 세습금지법 제정으로 교회쇄신의 전기 만들어야

한국 감리교 총회가 감리교회에 만연되는 병폐를 뿌리뽑기 위하여 교단적으로 세습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은 자기의 기득권을 십자가에 못박는 귀한 믿음의 용단이다. 이 귀한 자기 정화의 행위는 감리교단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장로교를 비롯한 개신교 모든 교단이 이 아름다운 결단에 참여해야 한다. 이를 시발로 하여 교회봉직에 보다 엄격한 윤리를 실천하고 사회를 향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여 한국교회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