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흑인 청각장애인 캐롤린 맥카스킬은 어렸을 때 백인들의 수화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했던 경험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15살 때인 1968년. 다른 흑인 학생들과 함께 청각장애인을 위한 흑인, 백인 통합형 학교에 등록한 맥카스킬은 그 학교 선생님들의 빠른 손동작이 전에 다니던 흑인 학교에서 배웠던 수화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맥카스킬은 이후 지금까지 사용했던 수화 방법을 제쳐놓고, '신발', '학교'와 같은 보통명사부터 '모른다'와 같은 문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수화를 전부 다시 배워야 했다.
그녀는 현재 청각장애인 대학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워싱턴DC의 갤러뎃 대학교에서 청각장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은 18일 흔히 수화가 세계 공통 언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며 맥카스킬의 사례에서 보듯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백인들의 수화도 다르다고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맥카스킬은 5년 전 동료 연구원 3명과 함께 미국 흑인 수화(Black ASL)의 독특한 구조와 문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6개 주(州)에서 96명을 인터뷰하고 대화 장면을 촬영한 자료를 분석해 지난해 '미국 흑인 수화에 숨겨진 보물(The Hidden Treasure of Black ASL)'이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들은 흑인 수화에 인종차별의 역사와 흑인 고유의 영어가 반영된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흑인 수화가 단순한 '수화의 비속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연구 보조로 참여했던 메르세데스 헌터는 "흑인들의 수화에는 고유문화가 포함돼 있다"면서 "우리는 보디랭귀지와 함께 수화 동작을 더 크게 한다"고 말했다.
수화에 대한 잘못된 또 다른 인식은 음성언어를 곧바로 수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장애인 인권 전문 변호사인 아처 밀러는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수화에도 수많은 체계가 있고, 미국 수화는 미국 최초의 청각장애 교육자인 갤러뎃이 19세기 초기에 들여온 프랑스 수화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밀러는 "프랑스 수화가 영국이나 호주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며 "이는 미국과 프랑스의 수화 시스템이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미국 수화가 프랑스 수화와 60%가량 비슷하며, 영국 수화 사용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수화에는 또 음성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화와 지역 특색이 포함돼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한다고 밀러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수화로 '전화'를 나타낼 때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 귀와 입까지 대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옛날 촛대식 전화기가 사용될 때는 한쪽 주먹을 귀에 대고 다른 한 주먹은 입에 가져다 대는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수화가 변화하고 지역적, 문화적 차이점이 반영되면서 통역자들에게도 끊임없는 도전이 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