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현재 뉴욕교계의 갈등상황에 대한 해법과 주장을 담은 외부기고를 자유롭게 게재해 보다 건설적인 토론 및 소통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외부기고에 대한 반론이 있다면 언제든지 동일한 위치에 게재할 방침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아래 글은 2011년 10월 25일 기독교 언론사에서 일제히 제보한 기사를 근거로 하여 현안에 대한 답변서 형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리는 바이다.
이 글의 목적은 최근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뉴욕교협)의 제 37회기 총회에서 이루어진 선거결과에 대한 불복(不服)을 주장하는 몇몇 목회자들이 교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교협의 분열을 획책하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하여 긍휼한 마음으로 이를 권고 및 시정을 요구하며, 하나 됨과 화평을 모토로 삼고 있는 제 38회기 교협의 발전과 Leadership을 위한 건설적인 방향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글의 자세한 배경 설명과 총회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은 씨존 www.czoneus.net의 칼럼과 교회넷 www.churchus.net의 신앙칼럼에 올라온 김연규 목사의 글의 제목 “뉴욕교협 총회를 지켜본 소고”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1. 현 집행부의 총회는 불법선거라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제 37회기 교협 현 집행부의 선거방법과 과정은 최선을 다한 매우 공정하고 현실적이었으며 철저하게 비밀 투표로 진행되었다. 불법선거를 막기 위해서 교협 역사 최초로 선거인 사전등록 절차를 도입했고, 가시적 지역교회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는 평신도 대표 등록제를 도입했다.
또한 앞으로는 총회에 참석하여 선거를 하든지 안하든지 평신도 대표자 이름과 투표자 이름을 구분해서 기록하여, 사전에 교회 실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회원교회 회비도 앞으로는 교회 재정부의 서명이 있는 Check발행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불법적인 대리선거를 막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름표와 신분증(ID)을 대조하는 확인 작업을 선거위원회에서 면밀히 하도록 조치했고, 강요가 없는 철저한 자유로운 개인의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비밀선거창구까지도 4곳에 설치했다.
만일 이들의 주장처럼 당시 집행부의 총회가 불법선거였다면, 어떻게 끝까지 기대를 걸고, 선거를 치러서 회장 투표일 경우 1차 147표(양 후보), 134표(노 후보)/ 2차 140표(양 후보), 131표(노 후보)/ 3차 140표(양 후보), 130표(노 후보)라는 근소한 표차이로 아슬아슬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성실하게 그 전 과정을 기다려왔겠는가?
그러므로 이번 총회가 불법선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선의의 경쟁에서 패한 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으로서 목회자답지 못한 비신사적인 행동이며, 또한 불법적인 교협 분열의 당위성과 이탈행위의 정당성을 조작하기 위한 야비하고도 우매한 행동과 작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에 제 37회기 교협총회 당시의 패자(敗者)들이 승자(勝者)들로 역전되어 탈바꿈이 되었다면, 과연 현 집행부의 총회가 불법선거며, 당선의 결과가 모두 무효라고 피를 토하면서 반응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달라졌다면 결코 그렇게 비판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총회가 “매우 은혜롭고 거룩한 총회”였다고 분명코 반응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 선거결과에 대한 패자들의 입장에서 불법선거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단지 패자들의 최후 끝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비평을 피할 수 없을 뿐이다. 이러한 뜻밖의 돌출된 행위는 뉴욕교계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저돌적이고, 우매(愚昧)하기 짝이 없는, 누가 보더라도 미성숙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교협선거에서 승리했으면 당당하게 넓은 마음으로 패자들을 보듬어주고, 패했으면 승리자에게 아낌없이 격려하고 축복하며, 다음 회기를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정회장 후보였던 노기송 목사는 3차 투표 후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양승호 목사를 찾아가 포옹한 뒤 악수로 축하했었다. 이러한 장면이 매우 아름다운 뉴욕교협의 영원한 전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반대편에 섰던 사람을 선거가 끝난 후에도 영원히 원수로 생각하며,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온갖 비방과 음모와 적대감을 조성하는 옹졸한 태도는 목회자로서 반드시 고쳐야 할 기본적인 성품이라고 생각한다.
2.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경찰 공권력(임무)이 투입된데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하여
이번 교협 제 37회기 총회에서 선거결과에 불복한다는 패자들의 강력 한 잇슈(issue) 가운데 하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협의 총회 과정에서 집행부의 경찰 공권력(임무) 투입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인해 모든 역량(力量)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다는 책임 전가성(轉嫁性) 부정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매우 오해된 기본지식과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패자들의 최후 발악의 한 장면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다른 해석의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속담에 “이유 없는 무덤이 있겠는가?”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죽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죽은 시체도 말을 못할 뿐이지, 입을 열수만 있다면 죽게 된 사유를 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한 패자들의 불평과 불만이 노골적으로 다양성 있게 표출됐다는 증거일 것이다.
교협선거에서 경찰 공권력 행사에 대한 패자들의 불만스러운 투정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은 너무나 단순하다. 즉, 성스러운 예배당에서 성(聖) 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경찰이 들어와서 공권력(임무)을 행사했기 때문에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예배와 회의 진행과 선거 과정이 매우 부자연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경찰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다 못했으며, 몸싸움과 무력 충돌도 불사하고 한판승으로 상대를 꺾어보자고 단단히 벼루고 무장해 왔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억울하다는 변론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경찰은 국가 공무원으로서 맡겨진 지역의 공익을 위해 치안과 법질서와 주민의 안전을 돕는 봉사의 직책이다. 문제는 경찰의 눈을 의식하여 자연스럽지 못한 총회를 했다고 하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겁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뉴욕의 교계 목사들은 지도자들로서 대부분이 성인이며, 혹시라도 대인 기피증 같은 정신적 결함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공권력이나 법 앞에서도 담대하고 자유로운 기독교 성직자들일 것이다. 만일 경찰관이나 재판하는 판사 앞에서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심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범행을 저질렀거나 아니면, 법(法)의 심판이 문화적인 충돌과 함께 그냥 무서워지는 타국생활의 심리적 결함의 증세일 것이다.
그러나 무서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경찰은 우리의 이웃이며,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치안을 위해 수고하는 고마운 분들이다. 1.5세나 2세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경찰의 공권력(임무)에 대해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데, 왜 경찰 임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대중 집회나 행사를 한다면 당연히 청원경찰이나 경비원을 사서 고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공동의 안전과 치안을 위한 합리적인 미국의 법이 아닌가? 경찰이 와서 공동의 유익을 위해 자리를 지켜준다면, 어떤 유사시에도 혼란을 겪지 않고 보다 안전하게 실무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경찰은 목사와 성도를 구분하지 못한다. 특정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특정 후보들 4명에게 문제의 인물인줄 알고 “회의를 방해하지 말라!”고 훈시까지 할 정도였다.
만일에 이번 교협 총회 장소에 경찰이 현장에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제 35회기 뉴욕한인목사회 정기총회서 발생한 모 목사의 여기자 폭행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그동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했었다. 이것이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소를 잃어서는 안 되겠기에 미리 외양간을 잘 수리해 놓는 지혜도 가져야 할 것이다.
3. 불법감사 문제로 인한 내부 쿠데타는 이제 종결되었다.
그동안 교협 안에서의 불협화음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불법감사 행위에서 그 핵심적인 원인이 식별되었다. 교협의 재정 감사가 독립투사처럼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나머지 공명심에 사로잡혀 외부의 세력에 의해 교협이라는 조직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온 잘못된 역할에 대하여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재정에 대해 끝까지 인내로서 검증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공적인 서류 내용이나 대중 앞에서 사실 근거도 없는 착복이니, 횡령이니, 마이너스 살림이니, 교만하다니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공인으로서는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결국은 재정 감사 과정의 불법성과 불법적인 잘못된 정보유출에 이어서, 교만의 극치를 달리는 총회보고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교협의 분열과 이탈에 유명세를 타고 계속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제동을 걸 사람이 없는 비극적인 현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은 국가가 정한 법에서 가르치는 방법 밖에는 묘수가 나오지를 않는다.
비유컨대 이젠 교협내부의 돈과 권력과 명예와 관련된 정치목적을 위한 쿠데타는 종결되었다. 새롭게 출발하는 제 38회기 교협은 더 이상 목회사역과 교회 공동체와는 상관없는 불순한 정치 목적의 입지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에 경쟁에서 패한 소수의 무리들이 분열과 이탈을 무기 삼아 최후까지 혼란을 야기하며, 기나긴 37년의 교협의 정통성을 무시하면서까지 약한 자들을 선동하는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교협은 새로운 교협회장과 부회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각될 임원들, 그리고 모든 실행위원들과 함께 교협원로들의 든든한 지원과 모든 교회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년 동안의 항해를 위해 힘차게 출발하게 될 것이다.
4. 분열을 선동하고, 이탈자를 모집하기 위한 성명서
최근 교협총회에서의 교협을 분열 선동하고, 이탈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급히 만들어낸 성명서는 그 내용상 거짓과 선동적인 발언이 그대로 담겨있어 뉴욕교계를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거사(巨事)에는 배후 세력의 달콤한 전략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이용하는 불순한 세력도 있게 마련이다. 표면적으로 성명서에 드러난 K목사는 순복음(A/G)교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소속교단에서 아무도 충고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또 충고해도 듣지도 않는 막무가내인 것 같다. 본인으로서도 매우 비극적이고 불행한 인물이다. 교협분열을 조장하여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겠다고 어설프게 미리 공포는 해 놓았지만,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고, 단체를 결성할 만한 인물도 재정적인 준비도 전무한 상황이다. 사실 K목사에게는 새로운 조직결성보다는 갈기갈기 찢겨진 자신의 인격과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이 성명서에는 그럴듯한 ‘신학적 표명’도 문제이거니와 ‘K 목사 외 101명’이라는 가상적인 숫자도 근거가 희박하여 자칫 거짓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작성한 성명서에 동조하는 101명의 이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이 성명서는 또 하나의 거짓된 문서로 공문서 위조와 같은 전철을 밟는데 불가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제 38회기 교협의 분열선동과 이탈을 꿈꾸는 배후 핵심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할 시점이 오게 될 것이다.
5. 분열 선동과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거짓 신학적 표명
교협의 분열선동과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들의 성명서 말미에는 느닷없이 복음주의 전통, 종교다원주의의 근절, 이단배격, WCC반대 등을 지향한다는 내용의 거짓된 신학적 표명이 담겨있다. 모든 현대신학의 사조(思潮)는 그 흐름이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극단적인 사상에서 파생된 것이 현대신학의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신학사상을 간직하려면, 복음주의 전통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신학사상이 개혁주의 신학사상이 아닌가? 아마 개혁주의 사상의 핵심인 하나님의 주권사상(롬 11:36)과 말씀의 언약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중심의 신학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 난장판을 치고, 분열 선동하며,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된 신학적 표명을 할 수 있을까? 보수주의를 신봉하고 주창하기 전에 존재의 신학과 급진신학도 배격해야 할 것이고, 신복음주의도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수주의와 헷갈리는 근본주의도 배격해야할 것이고, 양극현상인 신근본주의도 배격해야 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를 근절하기 전에 해방신학과 민중신학도 배제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사상도 뉴한연(뉴욕에서 한을 품은 연대)이라는 패배자들의 조직 속에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단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단 감별사들도 철저하게 색출하여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 통합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사상과 WCC(세계교회협의회)를 반대하기 전에 NCC나 한기총이나 한부총이나 세이총(세계이단대책 총연합회), 약자들과 패자들, 그리고 억울한 자들의 통합모임인 가칭 뉴한연(설립예정자/김명옥 목사)도 배제해야 되지 않겠는가?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한 진리를 수호하는 교회들의 연합체인 뉴한연을 만들기 전에 이단 사이비 감별사들의 통합조직인 진리수호목회자연대(진목연)라는 조직도 배제해야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패자들의 이 모든 구호와 신학적 표명이 얼마나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몸부림이겠는가? 원로들의 말씀에 의하면, 자기들 손에 이미 접수한 뉴욕목사회와 접수를 노리는 뉴욕교협도 접수만 이루어지면, 그들은 교회와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목사들만 양성하는 사조직을 만들어 돈줄(a source of money)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교협의 회계연도 전에 이월금 한 푼 없이 남은 돈 모조리 쓰는 마지막 3일 작전의 재미로 교협에 입성하였으나, 그 목적이 무산되자 교협을 분열시키고,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거짓된 신학적 표방을 앞세우는 것이 발상의 동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에게 불리할 때마다 복음주의 신학과 전통을 주창하며, 입만 열면 보수주의와 보수교회들의 연대연합을 구호로 삼는 패자들의 신학적 구호는 실제의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거짓된 위장전술임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매우 일반화된 “보수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꼭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6.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신학적 이해
이젠 특별히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인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WCC는 세계적 규모의 교회 협의기구(Council of Churches)이다. 기독교교회협의회인 NCC도 역시 국가 또는 민족적 규모의 교회 협의기구(National Council of Churches)인데, 두 기구 모두 교회 기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회에 대하여 명령하는 어떤 상회 기관이 아니다. 두 기구는 서로 종속 관계가 아닌 밀접한 관계에 있고, 모두 독립의 교단이 참여하여 가입함으로서 회원이 된다.
WCC는 1948년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창설된 세계교회의 협의기구로서 창설 목적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믿고 홀로 한 분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서로 하나가 되어 공동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친교단체”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모든 교회를 대표하고, 모든 교회에 의하여 함께 조정되는 협의회”를 조직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WCC가 처음에는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로 소급되는데, IMC의 특징은 19세기에 일어났던 선교운동의 한 열매였고, 생활과 실천 운동·(Life & Work Movement)의 일환으로 신앙과 직제운동(Faith and Order Movement)과 함께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각국의 교회들이 복잡한 국제 관계에 대한 교회의 사명과 책임을 통감하면서 일으킨 운동이었다. 이 두 운동이 합쳐서 WCC를 조직하게 되었다.
WCC의 정신은 오이쿠메네 즉,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세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른바 에큐메니칼 운동체로서 교회의 일치와 갱생을 도모하며,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여 함께 기도하고 토론하는 동시에, 상호 이해와 관용정신으로 함께 일하는 협력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가장 강력한 에큐메니칼 반대운동이 일어났는데, 미국의 남침례교회와 루터교파 중 미주리 노회였다. 그들의 반대 이유는, 신앙고백만으로는 WCC회원 가입기준이 신학적으로 너무 막연하고 포괄적이라 하여 성서대로(according to the scriptures)라는 말을 첨가했으나 그들의 반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신학적인 입장에 서서 WCC운동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단체는 초교파 해외선교협회 약칭 IFMA(The 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로서 1917년 미국에서 조직된 교파와는 무관한 극단적인 보수 신앙가들의 조직이었다. 또한 복음주의 해외선교 연합회 약칭 EFMA(Evangelic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로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선교 단체였다. 이들은 미국 NCC에 가입한 일이 없는 극단적인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개인들만 가입시켰다.
미국기독교연합회(The American Council of Christian)와 국제기독교연합회(ICCC)도 미국내에서는 NCC에 반대하고, 국제적으로는 WCC에 반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이 두 단체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메킨타이어 박사이다. 그는 미국 NCC와 WCC는 타락된 단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기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를 모두 배신자요, 배교자로 저주했다. 복음주의자협회(NAE)도 타협주의자라고 비판했고, 빌리그레이엄도 반대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부 ‘용공주의 단체’라고 저주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전도보다는 공산주의자 발굴에 더 관심을 갖는다. 또한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는 분열된다. 이 피해를 파키스탄과 대만과 한국이 가장 많이 받았다.
그래서 한국교회도 이 두 단체의 영향으로 1959년부터 많이 분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뉴욕의 교협이 정기총회 후에 거짓된 신학적 표방으로 조직체의 정통성을 외면하고, 분열조짐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밖에 없는 도덕적, 윤리적 이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매킨타이어 박사의 신학사상은 매우 훌륭하였지만,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표명함으로서 기독교 근본주의로 빠지는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지적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칼빈(John Calvin)의 종교개혁사상에 충실하면서 인류역사에 많은 공헌을 세운 교파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세계 장로교회 연맹 또는 개혁교회 세계연맹(모두 WARC라 약칭함)에 가입한 개혁교회 또는 장로교회요, 또 하나는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혁교회이다. 전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참여할 뿐 아니라 유능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H. Kraemer, Visser't Hooft, R. C. Mackie). 후자는 어떤 강력한 단체나 조직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구미 각국에 있는 WCC에 불만을 품고, 이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교회들을 말한다. 이들도 나름대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재개혁파교회, 스코틀랜드의 자유장로교회, 미국의 개혁교회(CRC or ARC), 미국장로교(PCA) 등이다.
7.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오해받는 부분과 그 이유는?
1) WCC는 정치적인 거대한 세계 조직체로서 형성되는 사회적 기독교(Social Christianity)단체라는 비판을 받는다. WCC는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실현되도록 하는 신앙 운동의 단체이다.
2) WCC는 교회의 기구적 통합을 추구하는 단체로 비판을 받는다. 물론 에큐메니칼 정신 속에는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고, 교회가 다시 통합되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통합의 첫째 목적은 교회를 기구적으로 통합(Union)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업을 위하여 먼저 힘을 합치는데(Unity in work) 있다. 그러므로 회원이 된다고 해서 자기 교파가 WCC기구 속에 흡수되거나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3) WCC는 용공단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비판은 러시아 정교회가 회원이 되고, 그 대표가 중앙위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남북분단의 상황에서는 북한이 공산주의이고 남한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WCC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WCC가 용공단체라는 비판은 피상적인 관찰에서 온 황당한 비판이다. WCC는 한국의 동란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침략 행동이 저질러졌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UN군 사령부가 알려주는 가장 객관적인 증언에 의하면, 그리고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것은 북한군이 비밀리에 준비하고 진군한, 계획적인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WCC는 용공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WCC의 신학적 우주관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다고 보며, 반기독교적인 사람이나 무신론 사상의 소유자라 해도 대화를 통하여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돌이키는 것이 곧 에큐메니칼 운동의 근본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록 공산주의자라도 밖에다 떼어 놓고 적으로 저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회개시키자는 복음적인 생각 때문에 공산권 안에 있는 교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1954년 제 2차 WCC총회가 미국 에반스턴에서 모였을 때 공산권 국가의 교회에서 많은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중 어떤 대표는 교회보다 자기 국가정책(공산주의)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충성을 다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미국 입국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뉴욕의 교협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당장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조선족들 가운데 망명으로 자유를 갈망하여 미국에 입국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사상을 하루아침에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도 미국에 입국했다면 동일한 상황이 될 것이고, 러시아에서 오래 살았던 고려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평신도이든 성직자이든 교협에서 사회주의라고 등을 돌리며, 가입을 불허할 것인가?
WCC는 국제적인 교회협의회 기구이지만, 뉴욕 교협도 역시 그 범위가 지역적이라는 것 외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같은 비슷한 기구이다. 우리 대한민국만 분단된 특수한 상황 속에서 WCC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있지,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종북 좌파성향이나 용공단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이며, 예민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교회는 이념문제를 크게 이슈화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 좌파성향이 아니라면 어떤 사회주의 국가의 목사라도 이념을 초월하여 받아들이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일에 대해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WCC세계교협기구를 용공단체라고 하면서 1950년대의 사고방식을 갖고, 불리할 때마다 그것을 악용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이며, 패쇠된 죽음의 신학이다. 국제연합기구인 UN(United Nations)이 정치적 세계연합 기구라면, 세계교회협의회인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신앙적인 세계연합기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교회들은 미국교단에 교회를 가입시킬 때, 때로는 교단 신학과 다른 개인적인 신학 사상을 기록하는 조건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은 전혀 없다. 그 만큼 개인의 신학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물론 잘못된 신학사상은 수정해야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난 해석의 문제나 적용의 문제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
WCC는 매우 오래전에 한국의 합동측과 통합측이 용공문제로 나뉘어졌던 분열의 불씨였다. 이제는 한국교회도 많이 성숙했기 때문에 이제는 WCC가 하나 됨으로 선교의 에너지를 모으는 복음의 불씨로 바라보게 되기를 소원한다. WCC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배웠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본이 35년 동안 조선을 압제했을 때, 교회는 신사참배라는 피할 수 없었던 굴욕적인 강요 때문에 참배를 한 사람과 참배를 거부하여 모진 고난을 당했던 자들이 지금도 분열의 불씨를 안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지나간 시대에 대해 이제는 용서하고, 모든 오해를 풀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교회(PCA)
김상태 목사 드림.
아래 글은 2011년 10월 25일 기독교 언론사에서 일제히 제보한 기사를 근거로 하여 현안에 대한 답변서 형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리는 바이다.
이 글의 목적은 최근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뉴욕교협)의 제 37회기 총회에서 이루어진 선거결과에 대한 불복(不服)을 주장하는 몇몇 목회자들이 교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교협의 분열을 획책하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하여 긍휼한 마음으로 이를 권고 및 시정을 요구하며, 하나 됨과 화평을 모토로 삼고 있는 제 38회기 교협의 발전과 Leadership을 위한 건설적인 방향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글의 자세한 배경 설명과 총회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은 씨존 www.czoneus.net의 칼럼과 교회넷 www.churchus.net의 신앙칼럼에 올라온 김연규 목사의 글의 제목 “뉴욕교협 총회를 지켜본 소고”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1. 현 집행부의 총회는 불법선거라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제 37회기 교협 현 집행부의 선거방법과 과정은 최선을 다한 매우 공정하고 현실적이었으며 철저하게 비밀 투표로 진행되었다. 불법선거를 막기 위해서 교협 역사 최초로 선거인 사전등록 절차를 도입했고, 가시적 지역교회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는 평신도 대표 등록제를 도입했다.
또한 앞으로는 총회에 참석하여 선거를 하든지 안하든지 평신도 대표자 이름과 투표자 이름을 구분해서 기록하여, 사전에 교회 실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회원교회 회비도 앞으로는 교회 재정부의 서명이 있는 Check발행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불법적인 대리선거를 막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름표와 신분증(ID)을 대조하는 확인 작업을 선거위원회에서 면밀히 하도록 조치했고, 강요가 없는 철저한 자유로운 개인의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비밀선거창구까지도 4곳에 설치했다.
만일 이들의 주장처럼 당시 집행부의 총회가 불법선거였다면, 어떻게 끝까지 기대를 걸고, 선거를 치러서 회장 투표일 경우 1차 147표(양 후보), 134표(노 후보)/ 2차 140표(양 후보), 131표(노 후보)/ 3차 140표(양 후보), 130표(노 후보)라는 근소한 표차이로 아슬아슬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성실하게 그 전 과정을 기다려왔겠는가?
그러므로 이번 총회가 불법선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선의의 경쟁에서 패한 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으로서 목회자답지 못한 비신사적인 행동이며, 또한 불법적인 교협 분열의 당위성과 이탈행위의 정당성을 조작하기 위한 야비하고도 우매한 행동과 작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에 제 37회기 교협총회 당시의 패자(敗者)들이 승자(勝者)들로 역전되어 탈바꿈이 되었다면, 과연 현 집행부의 총회가 불법선거며, 당선의 결과가 모두 무효라고 피를 토하면서 반응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달라졌다면 결코 그렇게 비판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총회가 “매우 은혜롭고 거룩한 총회”였다고 분명코 반응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 선거결과에 대한 패자들의 입장에서 불법선거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단지 패자들의 최후 끝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비평을 피할 수 없을 뿐이다. 이러한 뜻밖의 돌출된 행위는 뉴욕교계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저돌적이고, 우매(愚昧)하기 짝이 없는, 누가 보더라도 미성숙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교협선거에서 승리했으면 당당하게 넓은 마음으로 패자들을 보듬어주고, 패했으면 승리자에게 아낌없이 격려하고 축복하며, 다음 회기를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정회장 후보였던 노기송 목사는 3차 투표 후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양승호 목사를 찾아가 포옹한 뒤 악수로 축하했었다. 이러한 장면이 매우 아름다운 뉴욕교협의 영원한 전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반대편에 섰던 사람을 선거가 끝난 후에도 영원히 원수로 생각하며,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온갖 비방과 음모와 적대감을 조성하는 옹졸한 태도는 목회자로서 반드시 고쳐야 할 기본적인 성품이라고 생각한다.
2.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경찰 공권력(임무)이 투입된데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하여
이번 교협 제 37회기 총회에서 선거결과에 불복한다는 패자들의 강력 한 잇슈(issue) 가운데 하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협의 총회 과정에서 집행부의 경찰 공권력(임무) 투입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인해 모든 역량(力量)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다는 책임 전가성(轉嫁性) 부정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매우 오해된 기본지식과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패자들의 최후 발악의 한 장면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다른 해석의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속담에 “이유 없는 무덤이 있겠는가?”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죽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죽은 시체도 말을 못할 뿐이지, 입을 열수만 있다면 죽게 된 사유를 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한 패자들의 불평과 불만이 노골적으로 다양성 있게 표출됐다는 증거일 것이다.
교협선거에서 경찰 공권력 행사에 대한 패자들의 불만스러운 투정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은 너무나 단순하다. 즉, 성스러운 예배당에서 성(聖) 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경찰이 들어와서 공권력(임무)을 행사했기 때문에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예배와 회의 진행과 선거 과정이 매우 부자연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경찰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다 못했으며, 몸싸움과 무력 충돌도 불사하고 한판승으로 상대를 꺾어보자고 단단히 벼루고 무장해 왔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억울하다는 변론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경찰은 국가 공무원으로서 맡겨진 지역의 공익을 위해 치안과 법질서와 주민의 안전을 돕는 봉사의 직책이다. 문제는 경찰의 눈을 의식하여 자연스럽지 못한 총회를 했다고 하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겁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뉴욕의 교계 목사들은 지도자들로서 대부분이 성인이며, 혹시라도 대인 기피증 같은 정신적 결함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공권력이나 법 앞에서도 담대하고 자유로운 기독교 성직자들일 것이다. 만일 경찰관이나 재판하는 판사 앞에서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심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범행을 저질렀거나 아니면, 법(法)의 심판이 문화적인 충돌과 함께 그냥 무서워지는 타국생활의 심리적 결함의 증세일 것이다.
그러나 무서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경찰은 우리의 이웃이며,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치안을 위해 수고하는 고마운 분들이다. 1.5세나 2세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경찰의 공권력(임무)에 대해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데, 왜 경찰 임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대중 집회나 행사를 한다면 당연히 청원경찰이나 경비원을 사서 고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공동의 안전과 치안을 위한 합리적인 미국의 법이 아닌가? 경찰이 와서 공동의 유익을 위해 자리를 지켜준다면, 어떤 유사시에도 혼란을 겪지 않고 보다 안전하게 실무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경찰은 목사와 성도를 구분하지 못한다. 특정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특정 후보들 4명에게 문제의 인물인줄 알고 “회의를 방해하지 말라!”고 훈시까지 할 정도였다.
만일에 이번 교협 총회 장소에 경찰이 현장에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제 35회기 뉴욕한인목사회 정기총회서 발생한 모 목사의 여기자 폭행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그동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했었다. 이것이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소를 잃어서는 안 되겠기에 미리 외양간을 잘 수리해 놓는 지혜도 가져야 할 것이다.
3. 불법감사 문제로 인한 내부 쿠데타는 이제 종결되었다.
그동안 교협 안에서의 불협화음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불법감사 행위에서 그 핵심적인 원인이 식별되었다. 교협의 재정 감사가 독립투사처럼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나머지 공명심에 사로잡혀 외부의 세력에 의해 교협이라는 조직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온 잘못된 역할에 대하여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재정에 대해 끝까지 인내로서 검증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공적인 서류 내용이나 대중 앞에서 사실 근거도 없는 착복이니, 횡령이니, 마이너스 살림이니, 교만하다니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공인으로서는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결국은 재정 감사 과정의 불법성과 불법적인 잘못된 정보유출에 이어서, 교만의 극치를 달리는 총회보고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교협의 분열과 이탈에 유명세를 타고 계속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제동을 걸 사람이 없는 비극적인 현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은 국가가 정한 법에서 가르치는 방법 밖에는 묘수가 나오지를 않는다.
비유컨대 이젠 교협내부의 돈과 권력과 명예와 관련된 정치목적을 위한 쿠데타는 종결되었다. 새롭게 출발하는 제 38회기 교협은 더 이상 목회사역과 교회 공동체와는 상관없는 불순한 정치 목적의 입지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에 경쟁에서 패한 소수의 무리들이 분열과 이탈을 무기 삼아 최후까지 혼란을 야기하며, 기나긴 37년의 교협의 정통성을 무시하면서까지 약한 자들을 선동하는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교협은 새로운 교협회장과 부회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각될 임원들, 그리고 모든 실행위원들과 함께 교협원로들의 든든한 지원과 모든 교회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년 동안의 항해를 위해 힘차게 출발하게 될 것이다.
4. 분열을 선동하고, 이탈자를 모집하기 위한 성명서
최근 교협총회에서의 교협을 분열 선동하고, 이탈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급히 만들어낸 성명서는 그 내용상 거짓과 선동적인 발언이 그대로 담겨있어 뉴욕교계를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거사(巨事)에는 배후 세력의 달콤한 전략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를 이용하는 불순한 세력도 있게 마련이다. 표면적으로 성명서에 드러난 K목사는 순복음(A/G)교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소속교단에서 아무도 충고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또 충고해도 듣지도 않는 막무가내인 것 같다. 본인으로서도 매우 비극적이고 불행한 인물이다. 교협분열을 조장하여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겠다고 어설프게 미리 공포는 해 놓았지만,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고, 단체를 결성할 만한 인물도 재정적인 준비도 전무한 상황이다. 사실 K목사에게는 새로운 조직결성보다는 갈기갈기 찢겨진 자신의 인격과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이 성명서에는 그럴듯한 ‘신학적 표명’도 문제이거니와 ‘K 목사 외 101명’이라는 가상적인 숫자도 근거가 희박하여 자칫 거짓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작성한 성명서에 동조하는 101명의 이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이 성명서는 또 하나의 거짓된 문서로 공문서 위조와 같은 전철을 밟는데 불가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제 38회기 교협의 분열선동과 이탈을 꿈꾸는 배후 핵심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할 시점이 오게 될 것이다.
5. 분열 선동과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거짓 신학적 표명
교협의 분열선동과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들의 성명서 말미에는 느닷없이 복음주의 전통, 종교다원주의의 근절, 이단배격, WCC반대 등을 지향한다는 내용의 거짓된 신학적 표명이 담겨있다. 모든 현대신학의 사조(思潮)는 그 흐름이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극단적인 사상에서 파생된 것이 현대신학의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신학사상을 간직하려면, 복음주의 전통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신학사상이 개혁주의 신학사상이 아닌가? 아마 개혁주의 사상의 핵심인 하나님의 주권사상(롬 11:36)과 말씀의 언약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중심의 신학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 난장판을 치고, 분열 선동하며,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된 신학적 표명을 할 수 있을까? 보수주의를 신봉하고 주창하기 전에 존재의 신학과 급진신학도 배격해야 할 것이고, 신복음주의도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수주의와 헷갈리는 근본주의도 배격해야할 것이고, 양극현상인 신근본주의도 배격해야 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를 근절하기 전에 해방신학과 민중신학도 배제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사상도 뉴한연(뉴욕에서 한을 품은 연대)이라는 패배자들의 조직 속에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단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단 감별사들도 철저하게 색출하여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 통합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사상과 WCC(세계교회협의회)를 반대하기 전에 NCC나 한기총이나 한부총이나 세이총(세계이단대책 총연합회), 약자들과 패자들, 그리고 억울한 자들의 통합모임인 가칭 뉴한연(설립예정자/김명옥 목사)도 배제해야 되지 않겠는가?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한 진리를 수호하는 교회들의 연합체인 뉴한연을 만들기 전에 이단 사이비 감별사들의 통합조직인 진리수호목회자연대(진목연)라는 조직도 배제해야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패자들의 이 모든 구호와 신학적 표명이 얼마나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몸부림이겠는가? 원로들의 말씀에 의하면, 자기들 손에 이미 접수한 뉴욕목사회와 접수를 노리는 뉴욕교협도 접수만 이루어지면, 그들은 교회와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목사들만 양성하는 사조직을 만들어 돈줄(a source of money)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교협의 회계연도 전에 이월금 한 푼 없이 남은 돈 모조리 쓰는 마지막 3일 작전의 재미로 교협에 입성하였으나, 그 목적이 무산되자 교협을 분열시키고, 이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거짓된 신학적 표방을 앞세우는 것이 발상의 동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에게 불리할 때마다 복음주의 신학과 전통을 주창하며, 입만 열면 보수주의와 보수교회들의 연대연합을 구호로 삼는 패자들의 신학적 구호는 실제의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거짓된 위장전술임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매우 일반화된 “보수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꼭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6.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신학적 이해
이젠 특별히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인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WCC는 세계적 규모의 교회 협의기구(Council of Churches)이다. 기독교교회협의회인 NCC도 역시 국가 또는 민족적 규모의 교회 협의기구(National Council of Churches)인데, 두 기구 모두 교회 기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회에 대하여 명령하는 어떤 상회 기관이 아니다. 두 기구는 서로 종속 관계가 아닌 밀접한 관계에 있고, 모두 독립의 교단이 참여하여 가입함으로서 회원이 된다.
WCC는 1948년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창설된 세계교회의 협의기구로서 창설 목적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믿고 홀로 한 분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서로 하나가 되어 공동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친교단체”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모든 교회를 대표하고, 모든 교회에 의하여 함께 조정되는 협의회”를 조직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WCC가 처음에는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로 소급되는데, IMC의 특징은 19세기에 일어났던 선교운동의 한 열매였고, 생활과 실천 운동·(Life & Work Movement)의 일환으로 신앙과 직제운동(Faith and Order Movement)과 함께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각국의 교회들이 복잡한 국제 관계에 대한 교회의 사명과 책임을 통감하면서 일으킨 운동이었다. 이 두 운동이 합쳐서 WCC를 조직하게 되었다.
WCC의 정신은 오이쿠메네 즉,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세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른바 에큐메니칼 운동체로서 교회의 일치와 갱생을 도모하며,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여 함께 기도하고 토론하는 동시에, 상호 이해와 관용정신으로 함께 일하는 협력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가장 강력한 에큐메니칼 반대운동이 일어났는데, 미국의 남침례교회와 루터교파 중 미주리 노회였다. 그들의 반대 이유는, 신앙고백만으로는 WCC회원 가입기준이 신학적으로 너무 막연하고 포괄적이라 하여 성서대로(according to the scriptures)라는 말을 첨가했으나 그들의 반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신학적인 입장에 서서 WCC운동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단체는 초교파 해외선교협회 약칭 IFMA(The 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로서 1917년 미국에서 조직된 교파와는 무관한 극단적인 보수 신앙가들의 조직이었다. 또한 복음주의 해외선교 연합회 약칭 EFMA(Evangelic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로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선교 단체였다. 이들은 미국 NCC에 가입한 일이 없는 극단적인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개인들만 가입시켰다.
미국기독교연합회(The American Council of Christian)와 국제기독교연합회(ICCC)도 미국내에서는 NCC에 반대하고, 국제적으로는 WCC에 반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이 두 단체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메킨타이어 박사이다. 그는 미국 NCC와 WCC는 타락된 단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기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를 모두 배신자요, 배교자로 저주했다. 복음주의자협회(NAE)도 타협주의자라고 비판했고, 빌리그레이엄도 반대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부 ‘용공주의 단체’라고 저주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전도보다는 공산주의자 발굴에 더 관심을 갖는다. 또한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는 분열된다. 이 피해를 파키스탄과 대만과 한국이 가장 많이 받았다.
그래서 한국교회도 이 두 단체의 영향으로 1959년부터 많이 분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뉴욕의 교협이 정기총회 후에 거짓된 신학적 표방으로 조직체의 정통성을 외면하고, 분열조짐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밖에 없는 도덕적, 윤리적 이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매킨타이어 박사의 신학사상은 매우 훌륭하였지만,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표명함으로서 기독교 근본주의로 빠지는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지적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칼빈(John Calvin)의 종교개혁사상에 충실하면서 인류역사에 많은 공헌을 세운 교파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세계 장로교회 연맹 또는 개혁교회 세계연맹(모두 WARC라 약칭함)에 가입한 개혁교회 또는 장로교회요, 또 하나는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혁교회이다. 전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참여할 뿐 아니라 유능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H. Kraemer, Visser't Hooft, R. C. Mackie). 후자는 어떤 강력한 단체나 조직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구미 각국에 있는 WCC에 불만을 품고, 이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교회들을 말한다. 이들도 나름대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재개혁파교회, 스코틀랜드의 자유장로교회, 미국의 개혁교회(CRC or ARC), 미국장로교(PCA) 등이다.
7.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오해받는 부분과 그 이유는?
1) WCC는 정치적인 거대한 세계 조직체로서 형성되는 사회적 기독교(Social Christianity)단체라는 비판을 받는다. WCC는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실현되도록 하는 신앙 운동의 단체이다.
2) WCC는 교회의 기구적 통합을 추구하는 단체로 비판을 받는다. 물론 에큐메니칼 정신 속에는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고, 교회가 다시 통합되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통합의 첫째 목적은 교회를 기구적으로 통합(Union)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업을 위하여 먼저 힘을 합치는데(Unity in work) 있다. 그러므로 회원이 된다고 해서 자기 교파가 WCC기구 속에 흡수되거나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3) WCC는 용공단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비판은 러시아 정교회가 회원이 되고, 그 대표가 중앙위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남북분단의 상황에서는 북한이 공산주의이고 남한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WCC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WCC가 용공단체라는 비판은 피상적인 관찰에서 온 황당한 비판이다. WCC는 한국의 동란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침략 행동이 저질러졌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UN군 사령부가 알려주는 가장 객관적인 증언에 의하면, 그리고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것은 북한군이 비밀리에 준비하고 진군한, 계획적인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WCC는 용공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WCC의 신학적 우주관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다고 보며, 반기독교적인 사람이나 무신론 사상의 소유자라 해도 대화를 통하여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돌이키는 것이 곧 에큐메니칼 운동의 근본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록 공산주의자라도 밖에다 떼어 놓고 적으로 저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회개시키자는 복음적인 생각 때문에 공산권 안에 있는 교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1954년 제 2차 WCC총회가 미국 에반스턴에서 모였을 때 공산권 국가의 교회에서 많은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중 어떤 대표는 교회보다 자기 국가정책(공산주의)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충성을 다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미국 입국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뉴욕의 교협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당장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조선족들 가운데 망명으로 자유를 갈망하여 미국에 입국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사상을 하루아침에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도 미국에 입국했다면 동일한 상황이 될 것이고, 러시아에서 오래 살았던 고려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평신도이든 성직자이든 교협에서 사회주의라고 등을 돌리며, 가입을 불허할 것인가?
WCC는 국제적인 교회협의회 기구이지만, 뉴욕 교협도 역시 그 범위가 지역적이라는 것 외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같은 비슷한 기구이다. 우리 대한민국만 분단된 특수한 상황 속에서 WCC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있지,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종북 좌파성향이나 용공단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이며, 예민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교회는 이념문제를 크게 이슈화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 좌파성향이 아니라면 어떤 사회주의 국가의 목사라도 이념을 초월하여 받아들이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일에 대해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WCC세계교협기구를 용공단체라고 하면서 1950년대의 사고방식을 갖고, 불리할 때마다 그것을 악용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이며, 패쇠된 죽음의 신학이다. 국제연합기구인 UN(United Nations)이 정치적 세계연합 기구라면, 세계교회협의회인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신앙적인 세계연합기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교회들은 미국교단에 교회를 가입시킬 때, 때로는 교단 신학과 다른 개인적인 신학 사상을 기록하는 조건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은 전혀 없다. 그 만큼 개인의 신학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물론 잘못된 신학사상은 수정해야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난 해석의 문제나 적용의 문제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
WCC는 매우 오래전에 한국의 합동측과 통합측이 용공문제로 나뉘어졌던 분열의 불씨였다. 이제는 한국교회도 많이 성숙했기 때문에 이제는 WCC가 하나 됨으로 선교의 에너지를 모으는 복음의 불씨로 바라보게 되기를 소원한다. WCC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배웠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본이 35년 동안 조선을 압제했을 때, 교회는 신사참배라는 피할 수 없었던 굴욕적인 강요 때문에 참배를 한 사람과 참배를 거부하여 모진 고난을 당했던 자들이 지금도 분열의 불씨를 안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지나간 시대에 대해 이제는 용서하고, 모든 오해를 풀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교회(PCA)
김상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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