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또 흔한 척도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의 당위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설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목회자는 오직 설교로 말하고 설교로만 규정된다는 주장도 있으니, 이것에 기대자면 설교는 목회의 처음이자 끝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기획 인터뷰 ‘설교를 말하다’를 통해 설교라는, 그 끝없고 오묘한 세계를 엿본다.

성암교회 박요한 목사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칼바람이 한창 매섭던 때 취재차 그의 교회를 찾은 적이 있다. 박 목사를 만났다 했지만, 정확히 말해 그를 그저 보았던 것 뿐이다. 인사를 위해 그의 방을 찾았으나 문에는 ‘기도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고,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예배를 앞두고 늘 이렇게 홀로 기도한다는 권사님의 말에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한참 후 강단에 선 박 목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1시간 남짓, 그는 분명 통성으로 기도하다 강단에 섰을 테다. 그리고 그는 뭔가에 취한 듯, 웃다가도 울었고 울다가도 웃었다. 무언가에 젖는다는 느낌, 그날 교인들은 박 목사의 말에 젖었다. 아니 그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성령에 젖고 있었다.

설교를 주제로 박 목사를 인터뷰 하며, 그의 설교에서 기도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았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그 밖에 다양한 책들을 많이 섭렵해야 한다는, 예화를 적절히 활용하되 결코 웃기려고만 해선 안 된다는, 이른바 ‘설교 잘 하는 법’들도 ‘기도’ 없인 한낱 ‘기술’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역설했다. 박 목사는 ‘기도하는’ 설교자였다.

▲성암교회 박요한 목사는 설교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기도로 충만해 채워진 설교만이 성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설교학’ 1등이 설교서도 1등은 아냐
상담 많아진 건 설교 약해졌기 때문

-설교에 있어, 그렇게 기도가 중요한가요?

“아무리 설교 준비를 많이 해도 기도가 부족하면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설교라는 건 그 안에 주님의 은혜가 담겨 성도들에게 흘러야 하는 것이죠. 마치 저수지의 물이 마른 땅을 적시 듯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설교자 안에 그런 은혜가 차오르지 않아요. 저수지에 물이 없는데 어떻게 마른 땅을 적십니까. 설교도 그와 같습니다.”

-기도도 기도지만, 요즘 설교에 신학이 없다 합니다.

“신학도 중요하죠. 하지만 ‘설교학’ 과목에서 1등을 했다고 설교도 1등으로 잘 하는 건 아닙니다. 설교에는 학문만으론 해석되지 않는 신비한 것이 있어요. 영적인 풍성함, 이렇게 표현하면 맞을지……, 같은 말을 해도 다르다는 거죠. 설교에선 영적인 풍성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은 공부로 따라갈 수 있지만 영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기도의 무릎으로 살아온 일생과 주님 한 분만을 섬겨온 사랑의 마음,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기도, 결코 쉽지 않다는 거군요.

“어렵습니다. 기도하기 싫어하는 마음, 영보다는 육의 욕심을 따라 살려는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늘 그것과 싸우는 것이죠. 기도 없이 강단에 오르면 성도들이 알기 전에 설교자 스스로가 먼저 알아요. 마음이 메말랐는데 무슨 설교가 되겠습니까. 그렇기에 늘 마음을 다잡아 기도의 자리, 주님 앞으로 나아가려 해요. 목회란, 어쩌면 이런 싸움의 연속이겠지요.”

-갈수록 목회자, 특히 담임 목회자는 설교자라는 인식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으나 사실 목회자는 설교자가 맞죠. 이따금씩 사람들이 설교만 잘하면 뭐하느냐, 인격이 좋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설교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인격 위에서 설교가 나오는 것인데, 어찌 설교와 인격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설교는 목사의 인격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전 신학생 시절부터 설교가 목사의 전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설교 잘 하는 목사는 목회를 잘 하는 목사고, 그렇지 않은 목사는 목회를 잘하지 못하는 목사라고까지 생각했죠. 물론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상담사역이 대두되는 이유도 한국교회 강단이 약해졌기 때문 아닐까요. 성도들이 상담을 원하는 건 설교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삶에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는 목회자에게 자신이 설교자라는 강한 인식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그 이면에는 기도의 수고라는 무거운 짐을 지기 싫어하는 오늘날 목회자들의 모습도 있죠.”

-설교가 목사의 전부라고까지 생각하셨다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 매우 근본적인 신앙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늘 ‘하지 말라, 해선 안 된다’는 말만 들었죠. 그래서인지 매사에 자신이 없었고 무얼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거란 생각만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책을 통해 하나님께선 날 사랑하시고, 성공하길 바라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때부터 인생이 바뀌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자연스레 설교에 관심이 생겼죠. 교회에 다녀도 말씀이 전혀 자신의 삶과 연결되지 못한 채 고통 받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설교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설교를 설교로 끝내지 말고 한 사람의 인생에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되게 하자, 이게 설교에 대한 제 신념입니다.”

-설교에서 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가 변하고 형편이 어떻든 그대로 진리입니다. 시대와 형편, 세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있는 삶의 교과서죠. 그 말씀대로 살면 우리의 삶도 요셉처럼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걸 전해요. 기도는 여전히 응답되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걸요.”

똑똑해지기보다 영적으로 풍성해졌으면
좋은 설교 하려면 좋은 설교 많이 들어야

▲박 목사는 오늘날 상담사역의 대두가 설교의 약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영 기자

-장로교 목사님이신데, 순복음적인 인상이 짙네요.

“그런가요.(웃음) 개인적으로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긴 합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셨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의 무릎을 꿇으셨죠. 전 똑똑한 교인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삶에 영적인 풍성함이 있는 그런 교인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장로교는 너무 교리가 강화돼서 성경의 영적인 유산들을 다소 상실해 버린 것 같습니다. 전 그런 면에서, 성령님의 현재성, 예수님 때의 사건이 지금도 그대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성도들은 다양하고, 그만큼 설교에서 각자 원하는 것도 다르겠죠. 설교가 너무 특징화 돼선 안 될 이유 아닌가요?

“조용기, 김선도, 옥한흠, 하용조 목사 등 유명한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저마다 분명한 색깔이 있습니다. 마치 무지개의 7가지 빛처럼, 각각의 설교들이 모여 보다 온전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결코 하나의 설교가 7가지 빛을 모두 낼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건 욕심이자 오만입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이미 언급했듯이, 설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거죠. 신비한 뭔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바다가 고래를 품는 것처럼, 저마다 다양한 성도들의 욕구가 있어도 이를 전부 만족시키고도 남을만한 능력이 설교에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성도들 중에는 목사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그들이 왜 목사의 말을 들으러 교회에 오겠어요. 설교엔 그 똑똑함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죠.”

-기도 외에 설교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많은 노력을 했죠. 특별히 다른 이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웬만한 목사님들의 설교는 거의 다 들은 것 같아요. 그 중에서 설교를 좀 한다하시는 분들의 설교는 지난 7,80년대 것까지 구해서 그걸 테잎으로 다 복사를 했어요. 그리곤 필름이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죠. 설교집도 사서 매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따라 읽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듣고 따라했던 것 같아요. 물론 당시엔, 이렇게 해서 정말 설교가 늘까 고민도 하고 힘들어서 그만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 때의 그 열심이 지금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설교는 결코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죠.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며 늘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부단히 노력할 때만이 좋은 설교는 가능합니다.”

-지금도 다른 분들의 설교를 들으세요?

“그럼요. 여전히 훌륭한 목회자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 설교를 돌아봅니다. 예전 한 세미나에서 ‘나는 지금도 매일 다른 이들의 설교를 듣는다’는 故 옥한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깜짝 놀랐죠. 아, 탁월한 설교의 비밀이 여기 있었구나, 했습니다. 설교를 잘 하려면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설교를 무수히 들어야 해요. 듣지 않으면 나오지도 않습니다.”

-설교자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설교는 평생 목사의 짐이 아닐까…, 설교가 재미있고 잘 될 때는 설교만 하고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또 잘 안 되는 날엔 설교만큼 무거운 짐이 없었습니다. 목요일쯤 되면, 이제 곧 주일이구나 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그 때마다 설교는 벗어날 수 없는 평생의 짐이라는 생각에, 목자의 사명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죠. 하지만 설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부족한 내가 감히 강단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 항상 감격하며 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늘 기도해요. 부족한 종이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대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인간의 지혜로는 불가능해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