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민주화 혁명으로 오랜 독재 정권을 타도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이슬람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다.

아랍권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된 ‘재스민 혁명’의 발발지인 튀니지는 지난 1월 23년간 장기집권해 온 지네 엘-알비딘 벤 알리 대통령 정권을 무너뜨린 뒤인 현재 새롭게 출발할 정부가 이슬람을 수용해야 하는지, 수용한다면 어느 수준에서인지를 논의 중이라고 뉴욕타임즈는 최근 보도했다.

튀니지는 1천만여 인구 가운데 98%가 무슬림이지만 사회자유주의 정책과 서구형 라이프 스타일은 낙태 허용과 일부다처제 금지, 여성의 자유로운 복식 허용, 포도주 판매 허용 등 튀니지를 다른 아랍권 국가들과 구분시켜 왔다.

그러나 혁명 이후 정국 혼란을 틈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튀니지의 오랜 세속주의 전통을 전복시키기를 꾀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사창가 폐지를 요구하며 날마다 일고 있는 무슬림들의 시위와 폴란드 출신의 기독교 사제 살해 사건 등에서 감지된다고 뉴욕 타임즈는 전했다.

튀니지의 이슬람 정치 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무슬림형제단 연계 집단인 Ennahdha는 벤 알리 정권 아래서 활동이 금지됐으나 혁명을 통해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서방 국가들의 우려를 의식한 듯 향후 경제 회복을 중점에 두고 종교적·정치적 관용의 노선을 걸을 것임을 밝히고 나왔으나, 여전한 우려의 시각이 존재한다.

혁명 이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이슬람의 역할을 논의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반응도 있지만, 현지 인권단체들과 여성단체들은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며 세속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Ennahdha가 무슬림형제단과는 달리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는 있지만 이같은 입장은 언제 번복될지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이제껏 우리는 유럽 여성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자유를 누려 왔다”며 “누가 대통령이 될지,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 우리는 모르고 이것이 두려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달 중순 지난 33년간 집권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낸 이집트에서도 혁명을 통해 공식적으로 정치 참여가 가능해진 무슬림형제단이 향후 새로운 정국 형성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의 시행을 주장하고 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 나치 동조 혐의로 불법단체로 규정돼 활동을 금지 당했으나, 이번 혁명 기간 정부와 야권 단체들과의 협상에 초청되면서 합법적인 활동을 사실상 보장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정당 발족을 추진할 것으로 발표했다. 무슬림형제단 역시 서방 국가들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집권에 대한 우려를 의식,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추구하지도, 대통령 후보를 내지도 않을 것이며, 세속적 권력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구 90%가 무슬림인 이집트는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이슬람 국가로 알려져 왔다. 또한 이번 혁명 역시 젊은이, 근로자,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이 중심이 되어 이뤄진 만큼 향후 이집트가 급격하게 과격 이슬람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샤리아가 지배하는 이슬람 신정정치 구축을 위해 활동해 온 무슬림형제단의 존재는 이집트에서 자유를 바라는 많은 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라고 미국의 보수 인터넷 언론 월드넷데일리(WDN)는 분석했다. 혁명을 통해 각인된 긍정적 이미지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이집트의 미래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앞선 2005년 총선에서 소속 회원들을 무소속으로 출마시켜 전체 하원의석의 20%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편 이같은 우려는 최근 조직된 새 헌법 위원회에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인사가 포함됐다는 소식과 함께 이집트 내 자유주의자들, 특히 비무슬림들 사이에 더욱 크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이 언론은 전했다. 이 가운데 현지 콥틱 교회 지도자들은 최근 미국 정부 당국자들에 헌법상 샤리아 도입에 대한 반대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