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수건, 운동선수의 모자, 망원경, 김성민 목사(나성한인교회)가 담임으로 취임하던 날 이 세 가지를 꺼내 보였다. 딱딱한 취임사보다 간단하면서도 인상 깊은 첫인사였다. 농부같이 땀 흘리며 성실히 일하고, 규칙대로 경기하는 운동선수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사역하며, 비전을 잃지 않도록 그 포커스를 언제나 하나님께 맞추겠다는 뜻이다. 지난 1월 16일 취임한 후 한 달, 김성민 목사는 현재 성도들을 일일이 심방하느라 여념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목회경험에 대한 결론은 “이민교회도 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집중하고 주신 비전을 향해 나아간다면, 이민교회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때문에 나성한인교회 성도들은 김성민 목사와 함께 성실한 농부, 신실한 선수, 충성된 군사들로 거듭날 것이다.

-취임인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성도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그랬나요? 성도들에게 정식으로 인사하는 날인데, 사실 서로 실감이 안 나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아들을 시켜 짐 가방을 들고 나오게 했어요. 작은 가방이지만 ‘왔구나’하는 인상이 들 것 같았고, 그 안에 뜻을 담아보았습니다. 여전히 잘 모르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열심히 심방하고 있습니다.

-담임 취임 후 소감을 말해주세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래서 많은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하고 부르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의 목격자로 저를 불러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따뜻한 환영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특별히 제가 오면서 위임식부터 했는데 새로운 담임에게 위임식부터 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게 하는 계기이자 성도들의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성한인교회의 오랜 역사보다도 성도들의 마음 자체가 제게 감격이었습니다.

-나성한인교회 성도들은 ‘기대’였지만, 이전 담임했던 교회 성도들은 ‘아쉬움’이었을 텐데요. 청빙을 수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지난 12년 벧엘장로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앞으로 ‘15년을 더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제가 아닌 또 다른 목사님이 오셔서 영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자훈련을 강하게 하면서 성도들이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목사에 대한 존경은 감사하지만 목회자에 대한 포커스가 컸다고 해야 할까요. 양육하고 훈련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제가 비켜 서 줌으로써 훈련받은 자신들이 홀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LA로 올 기회가 있었지만 때가 아니어서 오레곤으로 갔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전도와 복음전파에 대한 욕심(?)이 제 안에 있었는데 그래도 LA지역은 아닐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뽑아서 절 이곳에 심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결정된 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와보니 백만 명의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12년간의 이민목회를 돌아본다면?

1세 목회를 하려고 계획하고 시작된 목회는 아닙니다. 필라델피아연합교회에 2세 교육을 담당했었는데, 당시 담임으로 계시던 임택권 목사님이 1세 사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었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1세 목회에 대한 마음을 확인시켜 주셨지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벧엘장로교회 부임할 때 교회가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 과정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웃음이 없었던 곳에서 웃음이 생기고 감사가 없던 곳에 감사가 생기며 불안함이 하나님 안에서 안정되어 가는 변화였습니다. 그렇게 3년간 회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5년쯤 되니 제가 힘들어지는 겁니다. 목회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더 이상 나누어 줄 것도 없는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사람에 맞춰진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복을 해야 하니까 위로와 격려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보냈던 거죠. 성도들은 좋은데 나는 힘들었던 이유는 비전을 쫓아가는 목회를 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때부터 비전을 품고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예배도 회복되고 개인의 변화도 되었는데 교회의 약한 부분이 소그룹이었습니다. 비전을 품으니 소그룹에 대한 중요성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3년 반 동안 강하게 했는데 그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역 2만 5천의 한인규모에서 벧엘장로교회 전도팀만 50여개에 달했고, 양육반이 9개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12년 목회 가운데 아름다운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민교회가 아주 아주 힘들어도, 분명 회복되고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경험을 하고 나성한인교회에 오니 하나님이 얼마나 더 큰 일로 역사하실까...생각만 해도 은혜가 내립니다.

-목사님의 핵심적인 목회철학은 무엇인가요?

제자훈련입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만 가는게 아니라, 직접 쓰고 읽고 훈련받음으로써 결국 훈련이란 것은 반복 아니겠습니까? 지속적인 훈련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으로는 머리로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가슴까지 내려오기 힘듭니다.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영성훈련입니다. 결국 제자훈련으로 배운 말씀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도 앞에 떼어 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 가운데 은혜를 사모하고 깊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입니다. 새로운 영혼을 섬기려면 먼저 내가 준비되어야 하는데 제자훈련 영성훈련을 통해 준비되었다면 이제 성도들 모두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전교인의 목자화입니다. 그래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한다면?

6개의 사역 한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주일학교(1~5학년), 유스(6학년~12학년), 한어청년, 다민족, 1세(30세~65세), 1세 (65세 이상)등 6개입니다. 제자훈련과 영성훈련, 전도 등이 개인을, 개인은 6개의 사역을, 6개의 사역은 각각의 바퀴로 커져서 토잉 트럭이 되어 이 지역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후에는 이민교회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소망을 주는 나성한인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2011년의 목회 계획은 무엇입니까?

교우들 심방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씩 알아가고 이와 함께 위로부터 오는 회복과 치유를 구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기도하려고 합니다. 금요예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금요일이 결국 주일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민사회에서 주중예배 어렵다고도 하지만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에 은혜를 사모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성도들에게 매주 금,토,일요일은 부흥회로 여기고 하자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잘 훈련하고 전하고 싶습니다. 농부와 선수, 군사로 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전통을 살리면서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할 것들도 함께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분명하되, 방법은 행복하게입니다.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그렇다면 새로운 영혼들이 왔을 때 그들도 행복한 훈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세 목회자로서 1세와 2세의 갈등, 신앙전수 등의 문제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인교회를 돌볼 세대는 2세가 아니라 한어 청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어청년도 무게를 두고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2세 사역은 결국 다민족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세와 2세들이 한 지붕아래 있다는 것은 1세와 2세들의 어우어러짐을 통해 지역과 나라를 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혼합니다. 결혼을 한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결혼한 자녀들은 독립돼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가기를 원합니다.

2세 사역을 보니 32세 정도부터 47세 사이의 2세대가 없습니다. 제가 20대 초반 전도사일때 당시 중고등부학생들의 나이입니다. 70년대 많은 1세들이 자녀들을 위해 이민 왔습니다. 빨리 적응하고 성공해야겠기에 한국말 신경 쓰지 말고 영어교육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밤낮으로 바빴습니다. 2세들은 자연히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그렇다고 미국 주류사회로 깊숙이 들어가지도 못한채 방황하고 말지요. 부모들 때문에 교회는 나가지만 정작 교회에서도 정착하지 못합니다. 대학에 가고 결혼하면서 한인교회를 떠나게 되고 그렇다고 미국교회로 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쳤다면...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오히려 정체성의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위상도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고, 2세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고 2세 사역을 접근해야 합니다. 영어권이라는 2세 사역 타이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다민족 사역이 결국은 우리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세대가 다민족을 품어야 하는 것이죠. 어린이들에게는 구원받아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잘 가르치고 6학년부터는 미션마인드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12학년이 끝나면 이들이 어느 교회든지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초등학교 어린 아이들은 그런 언니 오빠들의 신앙생활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나성한인교회의 2세 사역은 다민족 사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2세들이 100여명 모이는데 이미 다민족으로 모여있습니다. 이 같은 마인드를 가진 담당 사역자로 벌써 세워져있고... 하나님이 모두 준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한어 청년 대학부를 훈련해야 합니다. 이들이 결국 2~30년 후에는 이민 토박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을 섬기고 비전을 심어주고 일꾼을 삼아야 합니다. 이들이 나성한인교회를 품고 나아가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한어 청년부가 마음껏 찬양하고 마음을 열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충만히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존경하는 목회자, 그리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저희 아버지입니다. 물론 목회자는 아니지만요. 이북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생활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그런 분은 아닐지라도 평생 동안 믿음을 지키려했다는 것과,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박희민 목사님입니다. 성도들을 사랑하고 후배 목회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게 큰 감동이고 감사입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연합장로교회 임택권 목사님...그분의 카리스마가 존경스럽습니다. 기도의 무릎 죠지 뮬러(George Muller)와, 오엠의 창시자로 온 나라와 민족을 향한 선교 마인드의 죠지 보워(George Verwer)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Roy Hession의 The Calvary Road와 역시 죠지 보어 목사님의 No turning Back 이라는 책을 자주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