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결혼 7년차 주부입니다. 결혼한 지 한 1년쯤 지나서 부터 남편은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보통 새벽 4시, 5시까지 게임을 합니다. 직장은 간신히 다니곤 있지만 3시간 밖에 자질 못합니다.

남편은 게임 동호회도 만들어 정팅이다 뭐다 모임도 가지면서, 게임속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자주 만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안에서 알게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미혼이라고 했고, 자주 여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오는 듯 했고 전화가 오면 베란다에 나가서 받거나 몰래 통화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신랑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 협박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그만 둘것을 강조했지만 남편은 게임과 게임속 사람들의 만남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채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는데, 저의 허전함 마음 때문이였는지 어떤 남자와 대화를 하다가 사랑을 하게 되버렸습니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알게되자 많이 괴로워하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남편도 역시 다른 상대와 채팅을 하며 사귀고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이렇게 생긴 애인이 생긴 지도 1년이 되어 갑니다.

전 너무 괴롭습니다. 전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여자와의 관계를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절 용서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성생활도 자유롭게 하고 싶다고 하고. 이제 서로 간섭하지 말자고 하고….

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남편과 다시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혼을 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요.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은 믿음이지만 신앙생활을 해온 저는 앞으로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A 자매님의 마음이 얼마나 혼돈스럽고 힘들며 의지할 곳이 없을지를 공감합니다. 그러나 더불어서 두 분의 결혼 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되짚어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해보며 성경적 결혼의 의미와 이혼에 대한 말씀, 그리고 자녀, 두 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언약(맹약)으로 창조된 제도(말 2:14, 잠 2:16-17)입니다. 여기서 언약이라는 것은 ‘자르다’. ‘가르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Beriyth’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승을 반으로 갈라 마주 놓은 고기 사이를 계약 당사자가 지나감으로서 맺어지는 계약으로, 이 계약을 파기하면 갈라놓은 짐승과 같이 죽게 됨을 각오하고 이 계약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식에서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뉘어 앉은 신랑, 신부의 가족, 친지들은 신랑, 신부가 이 결혼 서약에 들어 갈 때에 양쪽에 정돈 해 놓은 성경상의 희생제물(갈라놓은 짐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신부의 베일과 서명부 작성 등에는 구원과 천국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혼은 단순히 ‘식’이 아니라 ‘구원’의 의미가 담긴 천국잔치의 한 모형인 것입니다. 여기서 결혼은 본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결혼의 목적이 서로가 상대방을 ‘~~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엡 5:25, 딛 2:4). 하나님은 지금도 말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아,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할 수 있으며, 내가 어떻게 너를 버릴 수 있느냐(호 11:8)

이혼은 성약을 파기하는 죄악으로 결론지을 수 있으며 우리
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목록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말라기 2장 16절에 명료하게 진술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느니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 8절과 9절에서 특별한 경우에(구체적으로는 간통과 부정) 이혼이 간통과 부정보다는 덜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이혼을 금지시켰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불신자와 결혼한 사람에게 불신자인 배우자가 결혼 상태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한은 결혼한 채 남아 있으라고 권하고 있으며, 이 권고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혼을 허락하는 유일한 예외이며 간통의 경우는 제외된다고 하겠습니다.

이혼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아니며 남자와 여가가 일생을 통해서 신뢰의 상태에 남아있는 것은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혼은 서약을 깨는 것이기에 혐오스런 것이며 ‘서약한 아내, 남편’을 무시하고 서로에게 충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죽어버린 결혼에 대한 ‘장례식’과 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해 나가면서 갈등과 이혼의 위기를 겪고 살아갑니다. 두 분의 경우도 그 위기가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두 분의 경우에는 그 심각성이 더 하다고 하겠습니다. 우선 서로 간에 신뢰가 없고 대화가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7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각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차라리 무관심하지 않았었나 생각 해 봅니다.

특히 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팅으로 인해 서로가 외도를 했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다행히 자매님께서 원 위치로 돌아오셨고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서 하나님의 역사하실 자리는 있다고 보여 집니다.

보통 바람을 피우는 경우를 보면 남편이 되었던, 아내가 되었던 그 이유는 마음속을 채우지 못하는 허전함, 공허함,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장 많이 작용을 합니다.
자매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그럴 것입니다. 맞불작전으로 시작은 했지만 그 내면에는 남편이 채워 주지 못하는 외로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면 자매님의 외도에 대한 책임은 남편에게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남편의 외도 문제도 그렇습니다. ‘결혼 초부터 채팅을 좋아했고 채팅모임에 참석했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남편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안에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다면 거기까지는 진행되지 않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여자까지 있어 이혼을 요구 한다고 하셨는데 그 책임을 남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답니다.

지난 시간들을 한번 돌아보시고 남편이 싫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남편과 얼마만큼 깊은 대화를 나누었었는지, 남편으로 얼마만큼 인정하며 대우해 주었었는지, 남편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울거나, 협박하거나, 기타 다른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여 이미 돌아서 버린 남편의 마음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져 왔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상태이므로 자매님께서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남편은 더 멀리 갈 것입니다. 이제는 의연한 자세를 가지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변화됨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미 마음 떠난 남편보고 변화되라고 아무리 해 봐야 변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날들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가지시고 남편과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건의해 보시면 어떨까요. 무엇보다도 자녀를 위해서 말입니다. 남편도 자녀를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을까요?

자녀를 위해 마지막 노력의 시간을 갖자고 제의를 해 보세요. 또한 진정한 회개 뒤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분명코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참고로 몇 권의 책을 권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돕는 배필이 됩시다(김인자, 나침반)’
‘상한감정의 치유워크북(데이비드 씨맨즈, 예찬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 지음, 친구미디어)’
‘게리 채프먼 “5가지 사랑의 언어”(게리 채프먼, 생명의 말씀사)’
‘사랑만들기(추부길,김정희/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사랑에도 함정이 있다(알프레드 엘스, 프리셉트)’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가정에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추부길(한국가정사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