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13일, 인민군이 후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76세의 노(老) 목사는 가파른 숨을 내쉬며 빠른 걸음으로 교회 종탑으로 달려갔다. 언덕에 이르자 그는 숨이 차도록 줄을 당기며 기쁨의 종소리를 울렸다. 종소리를 들은 군민은 각자의 집에 숨겨둔 태극기를 들고 나와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노(老) 목사는 만세 운동 다음날 새벽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채비를 했다. 그러나 장로와 교인은 어제 일로 인민군이 목사님을 해칠 수 수 있으니 오늘만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자고 간곡히 만류 했다. 그러나 노 목사는 “인민군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때 진정 두려운 것”이라고 말하며 길을 나섰다.

새벽 강단에 선 노(老)목사는 외쳤다. “여러분 공산당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분이십니다. 전쟁이 끝나면 이 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듭시다. 예수를 믿는 나라로 만듭시다.”

잠시 후 새벽예배로 70여 명이 참석한 예배당에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인민군이 노(老) 목사 퇴로를 막기 위해 양쪽 문을 점거했고 총과 칼로 무장한 인민군이 단상에 올라와 노 목사의 등에 총을 겨눴다.

노(老) 목사는 소리쳤다. “하나님 전에서 무례하구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총칼을 들이 대는가” 머뭇거리는 병사를 본 인민군 간부가 노(老) 목사에게 다가온다. “누가 김 목사냐...” 잠시 후 간부는 노 목사를 군화발로 걷어차고 옆에 있던 병사들이 날카로운 대검으로 노 목사의 가슴을 찔렀다.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곧 강단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노(老) 목사를 찌른 후 난사하는 총을 피해 도망가던 한 청년이 신발장 뒤에 몸을 숨겼다. 두려움에 숨죽이고 있던 청년은 잠시 후 숨이 끊어져 가는 노 목사의 가는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수 믿으시오. 주님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찬양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

6. 25 전쟁 당시 인민군의 총 칼에 찔러 무참히 살해당한 김익두 목사의 순교 이야기다.

지난 25일(수), 사순절을 맞아 오클랜드한인연합감리교회(이강원 목사)에서 열린 찬양간증집회에서 정명자 권사(달라스 좋은씨앗교회)는 자신의 시할아버지인 김익두 목사의 순교를 간증했다. 그녀는 곧 바이올린 선율로 ‘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연주하며 집회에 참석한 성도의 심금을 울렸다.

정 권사는 세상말로 잘 나가는 음악가였다. 한 때 KBS 관현악단 부 악장을 역임한 실력파 연주자였으며 ‘정 트리오’를 조직 해 정부 각종 행사와 경제계의 이벤트 행사에 초청받으며 세속적인 만족감에 젖어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 그는 ‘자신의 달란트인 찬양과 바이올린 연주로 영육 간에 병든 사람을 치유하라’는 하나님 음성을 통해 세속적인 삶을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난 삶을 간증해 오고 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정 권사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성도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때로는 순교자의 간증을 통해 참석자에게 희생의 대가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정 권사는 간증 도중 바이올린연주와 함께 진행됐다.

정 권사는 이날 간증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인데 우리가 세상일에 열심을 내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여기 서 있기 까지 수많은 순교자의 피와 땀과 눈물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 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전도하므로 그 사랑의 빚을 전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강원 목사는 “정 권사의 살아 있는 피의 증거를 통해 김익두 목사님 순교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 주셨다. 찬양과 연주를 통해 순교의 깊은 의미를 묵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