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한 켠에 목사로서 마음 훈훈한 이야기를 본 일이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운 때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이 어느 날 ‘주일은 쉽니다’라고 하는 간판을 내 걸고는 영업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이 말이 뭐 신앙인들에게 대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다니지만 돈 버는 일 때문에 주일도 잊고 장사를 하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은혜를 받고는 그 간판을 문 앞에 내 걸고 ‘이제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 같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일 일을 잃은 직원들 모두를 교회로 인도 했습니다. 물론 주일 교회를 오는 직원에게는 그날 근무한 것으로 쳐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지난 주 ‘Thanksgiving Day’가 있었습니다. 미국을 와서 7번째 경험하는 날 입니다. 이 날 만큼은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삶을 돌아보고 감사할 사람들을 찾아보는 날입니다. 제가 미국을 처음 왔을 때 온 가족을 데리고 이날 식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거나 물건을 살만한 곳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가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업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다녀보아도 ‘Open’한 곳이 없습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분위기가 변하는 것을 봅니다. 그 동안 문을 꽁꽁 닫고 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가게는 반 나절만 영업을 하기도 하고, 어떤 가게는 종일 영업을 하기도 합니다. 경기가 어려우니 하루라도 문을 열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논리인 듯 합니다.

이런 때 앞에 보았던 기사의 내용은 뭔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안 하던 일도 하는 때가 요즘 추세인데 왜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는가?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신앙이 아니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 식당 주인 되시는 분은 믿음만 회복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복을 누릴 줄 아는 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신앙을 갖은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얻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질 못합니다.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살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주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잘 살도록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전달키 위하여 통로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창12장에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모든 민족의 축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너로 말미암아 세상 만민이 복을 받게 할 것이다. 너를 축복의 통로로 만들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때를 살고 있지만 참 잘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시즌 마다 쇼핑을 즐기고,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나눌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기는 것이 없어 고민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향해 나눌 것이 많은 지 모릅니다. 꼭 경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아픔과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삶에 왜 복을 주시고 채우시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 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다른 목적을 위해 그것을 사용해 버렸다면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뭘 맡길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누구나 ‘No’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복 주시고, 풍성케 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주변과 환경을 위해 전달자로 사용하시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목적을 잘 이루어 가면 나의 인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누려야 할 더 많은 것들이 채워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해 여러분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거나 유익을 준 기억이 있으십니까? 내가 현실적으로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을 얼마나 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길 원하셨지만 자신만 생각했을 때 그 사명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2000년이 넘는 세월을 유리 방황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우리를, 아니 나를 부르셔서 축복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복의 통로요 전달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목적을 잘 감당하셔서 나도 상상할 수 없는 복을 누리고, 남도 그 복을 경험하게 하는 삶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