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는 붙잡아야 할 것이 있고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내려놓으면 포기가 되고, 너무 오래 붙잡으면 집착이 됩니다. 포기는 희망을 잃어 손을 놓는 것이고, 집착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 손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만이 아니라 언제 붙잡고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이름과 함께 널리 알려진 ‘평온을 구하는 기도(Serenity Prayer)’가 있습니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를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끝까지 바꾸려고 하면 지칩니다. 반대로 바꿀 수 있는 것까지 운명이라 여기며 포기하면 무기력해집니다. 우리에게는 받아들이는 평온과 변화시키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가 함께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이와 닮은 아굴의 기도가 있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 아굴은 무조건 많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구했습니다. 너무 많아 하나님을 잊지 않고, 너무 적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베트남전 당시 약 7년 반 동안 포로생활을 했던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 제독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스톡데일은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견뎌야 했습니다. 콜린스가 누가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했느냐고 묻자 스톡데일은 뜻밖에도 “낙관주의자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것이다”라고 기대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정해 놓은 시간이 계속 지나가자 마음이 무너져 갔습니다. 스톡데일이 붙들었던 것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이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짐 콜린스는 이것을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지혜가 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희망에 내 시간표를 붙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때로 하나님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더 붙잡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 이 문은 반드시 열려야 한다. 이때까지는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께 내가 만든 시간표를 알려 드리고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결과를 믿는 것은 다릅니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열린 손으로》에서 기도를 ‘열린 손’의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두려울수록 손을 움켜쥡니다. 사람을 붙잡고, 자리를 붙잡고, 계획을 붙잡고, 지나간 일을 붙잡고, 원하는 결과를 붙잡습니다. 그러나 주먹을 꽉 쥐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주먹을 더 세게 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움켜쥔 손을 펴는 것입니다.
손을 펴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손을 펴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에 우리가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실패가 나를 붙잡고, 상처가 나를 붙잡고, 이루지 못한 꿈이 나를 붙잡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를 붙잡습니다. 기도는 그 손을 하나님 앞에서 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오늘의 순종과 충성과 성실입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동안의 기도와 수고와 순종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모든 기도의 절정을 만납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숨기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는 기도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어려운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이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더 원합니다.”
예수님은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뜻에 집착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기도입니다. 간절히 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붙잡아야 할 것은 붙잡되 하나님이 놓으라 하시는 것은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결과는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의 손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열린 손이 됩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