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밤 열한 시. 설교 원고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그제야 진짜 일이 시작된다.
강단에 띄울 PPT, 주일학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공과, 소그룹 나눔 질문, 영어권 아이들을 위한 자료.
부교역자도 미디어 담당자도 없는 작은 교회에서 이 일은 고스란히 목회자 한 사람의 몫이다.
나는 그 밤을 수없이 보냈다. 아무리 애써도 일은 줄지 않았고,
정작 아내와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할 시간은 늘 뒤로 밀렸다.
그 무렵 교계에는 AI 설교 이야기가 넘쳐났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설교 사역에 AI를 활용하는 목회자는 2023년 17%에서 최근 58%까지 늘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성도의 65%는 AI로 작성한 설교문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목회자는 AI를 쓰기 시작했는데, 성도는 그 설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간극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교는 정보가 아니라 고백이다.
한 주 동안 말씀 앞에서 씨름한 목회자의 삶이 담긴 언어이기에, 성도는 그 문장 너머의 사람을 듣는다.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 채우면 문장은 매끄러워질지 몰라도 강단의 진정성은 무너진다.
그렇다고 AI를 외면하는 것만이 답일까. 목회자이면서 디자인과 개발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질문을 던져 보았다.
AI가 설교를 '쓰는' 대신, 이미 쓰인 설교를 더 멀리 '나르게' 할 수는 없을까.
한 편의 설교가 주일 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고, 주일학교 아이들의 공과가 되고,
월요일 아침 성도의 묵상이 되고, 가정예배 식탁의 대화가 될 수는 없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원칙 하나를 세웠다. 원고는 한 글자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AI는 목회자의 문장을 고치거나 덧붙이지 않고, 오직 그 말씀이 각 자리에 맞는 그릇에 담기도록 돕는다.
이 원칙대로 도구를 만들어 내 사역에 써 보니, 토요일 밤의 몇 시간이 돌아왔다.
그 시간은 가족에게, 심방에, 그리고 기도에 돌아갔다.
AI 시대의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두려움도, 무조건적인 수용도 아니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지킬지 분별하는 일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고독한 씨름은 목회자가 끝까지 지켜야 할 몫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 밤새 붙들고 있던 반복된 수고까지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교회는 늘 그 시대의 도구로 복음을 전해 왔다. 인쇄술이 성경을 성도의 손에 쥐여 주었듯,
오늘의 기술도 말씀을 대신하는 자리가 아니라 말씀을 섬기는 자리에 설 때 비로소 교회에 유익이 된다.
강단의 주인은 언제나 말씀이고, 그 말씀 앞에 선 목회자의 고백이다. 그것만큼은 어떤 기술에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필자 소개: 전지훈 전도사. 핸리 아펜젤러 신학대학원 M.Div 과정에 있으며 뉴욕에서 사역하고 있다.
Pratt Institute 대학원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했고,
목회 자료 플랫폼 강단AI(gangdanai.com)를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