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26년, 전국 일반고 중 서울대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있어 화제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화성고등학교 얘기다.
올해 서울대에 무려 44명의 합격자(재학생 37명)를 냈다고 한다. 비결이 궁금하지 않나? 이 학교의 비결은 약 20년간 이어진 엄격한 ‘스마트폰 제한’ 규칙이란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과 시간과 취침 전 휴대전화를 반납하도록 지도했다니 놀랍다.
[2]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자 수면의 질이 높아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학업 효율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며칠 전, 스마트폰을 물에 빠뜨려 수년간 찍어놓은 사진과 저장된 천 명에 가까운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복구불능으로 다 날라가버리고 말았다. 새 스마트폰을 구입할 때까지 3일간의 생활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했는지 모른다.
[3] 하지만 외부와의 소통이 끊어진 며칠간의 삶에서 그동안 등한시 되어온 하나님과의 소통이 좀 더 원활하게 이루어진 유익도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과의 대화나 교제가 활발한 고등학생들에게 스마트폰 제한이란 규칙은 끔찍스러울 정도였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 제한이 전국에서 명문대학에 가장 많이 입학시키는 학교라는 자랑스런 전통을 낳게 되니 불만을 갖거나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4]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끊느냐보다 ‘무엇을 얻느냐’에 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음으로써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그분께 집중했을 때 비로소 그동안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다. 세상의 소리를 잠시라도 줄여야 하나님의 말씀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 목적이다.
[5]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내 삶을 끊임없이 흔드는 소음과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그분을 굳게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눅 5:16). 그분은 사람들의 요구와 분주한 사역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선시하여 실천하셨던 분이다.
[6] 스마트폰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익한 소통과 정보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시간과 집중력을 빼앗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고 선언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편리한 것이라고 해서 언제나 유익한 것도 아니다.
[7]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의도적인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하루 중 일정한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해 보자.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줄이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연결을 회복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무엇에 시간을 내어 주느냐가 결국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를 잘 드러낸다.
화성고등학교의 스마트폰 제한이 학업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드는 규칙이었다.
[8]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절제는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한 믿음의 훈련이라 말할 수 있다. 세상의 소리에 늘 연결되어 있으면서 정작 하나님의 음성에는 무관심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
오늘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아 보자. 우리가 내려놓은 작은 불편함과 답답함의 자리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회복된다.
[9]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렘 33:3).
세상의 소리를 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부르짖고 집중할 때, 하나님과의 시원스런 소통과 그분으로부터의 응답이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삶은 더 깊어지고 믿음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오늘 하루, 단 30분 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더 귀 기울여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