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예수전도단(YWAM Korea)의 기틀을 세우고 평생 한국과 한민족을 품어온 오대원(David E. Ross) 목사가 91세 생일을 맞았다.
오 목사의 91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최근 워싱턴주 몬로에 위치한 선교센터 '성령의샘(Pneuma Springs)'에서 마련됐다. 이날 오랜 세월 선교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역자들과 지인들은 오 목사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의 삶과 사역에 감사를 전했다.
1935년 9월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오대원 목사는 1957년 테네시주 킹대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버지니아주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인 1961년 아내 엘렌(Ellen) 사모와 함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다. 당시 한국은 6·25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치·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25세의 젊은 선교사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그가 특별히 마음을 쏟은 대상은 한국의 젊은이들이었다. 대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했고, 이 모임은 점차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전도와 제자훈련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후 1970년대 초 '예수전도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됐으며, 1980년 국제 선교단체 Youth With A Mission(YWAM)과 연합하면서 오늘날 YWAM Korea로 이어졌다.
오 목사의 비전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전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청년들이 훈련받아 복음을 들고 세계 각국으로 나아가는 선교사가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받던 교회에서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 목사는 청년들을 깨우고 선교의 일꾼으로 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한국을 섬기러 왔다가 평생 한국을 품은 선교사
오 목사의 65년 선교 여정을 관통하는 단어를 꼽는다면 '한국'과 '다음 세대', 그리고 '세계선교'라 할 수 있다.
1961년 한국에 들어온 미국의 젊은 선교사는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며 청년들과 삶을 나눴고, 한국 청년들이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품었다. 이후 그 비전은 예수전도단을 통한 청년 제자훈련으로,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를 깨우는 선교훈련으로, 다시 북한과 통일한국을 품는 사역으로 확장됐다.
1986년 한국을 떠난 뒤에도 한민족을 향한 그의 사역은 계속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인 2세와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세계선교 자원으로 세우는 사역을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워싱턴주 시애틀 지역으로 사역의 중심을 옮겨 안디옥국제선교훈련원(AIIM·Antioch Institute for International Ministries)을 세웠다.
그는 1978년부터 북한을 위한 기도와 통일에 대한 소명을 품고 북한선교와 남북 화해를 세계선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남과 북이 함께 변화돼 새로운 하나의 코리아를 이루자는 '뉴 코리아(New Korea)' 운동을 전개했다. 북한선교섬김학교(NKSS)를 비롯해 통일 관련 캠프와 세미나, 국제 네트워크 구축과 중보기도 운동 등을 통해 북한선교 인력을 훈련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25세에 처음 한국 땅을 밟았던 청년 선교사는 이제 91세의 노(老)선교사가 됐다. 91세를 맞은 지금까지 이어진 그의 여정은 한 외국인 선교사의 한국 사역을 넘어, 한국교회가 복음을 들고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과 함께한 긴 동행이기도 하다.
그가 평생 품어온 질문은 여전히 한 곳을 향한다.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가 어떻게 복음을 들고 열방을 섬길 것인가, 그리고 남과 북이 복음 안에서 어떻게 화해와 회복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65년 전 한국을 향해 시작된 그의 선교 여정은 그렇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