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목적·언약에서 공동체로’ 韓 ‘스스로 성경 연구하며 신앙 수용’ 역사적 출발점 조명
풍요·숫자 속 잃어버린 본질 진단… “오늘 교회를 교회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의 본질을 찾아서’ 공개토론회가 바울세계선교회(대표 한영숙 목사) 주최로 25일 오전 10시30분 퀸즈중앙감리교회(담임 이요섭 목사)에서 열렸다.

‘역사적 고찰을 통한 한국교회와 미국교회 비교’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각각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교회가 어떤 정신과 신앙적 토대 위에서 출발했으며 오늘날에는 그 본질을 얼마나 지켜가고 있는지를 되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미국교회는 신앙의 목적과 언약을 먼저 세운 공동체가 사회와 국가로 확장됐다는 점이 강조됐고, 한국교회는 외부 선교사의 도래만으로 그 역사를 설명하기보다 한국인들이 스스로 새로운 사상을 찾고 성경을 연구하며 신앙을 받아들였던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관점이 제시됐다.

서로 다른 두 역사적 흐름은 결국 오늘의 교회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모아졌다. 미국교회에는 신앙공동체가 사회와 국가를 형성할 정도로 강했던 목적의식이 어떻게 풍요와 성공 속에서 변할 수 있었는지를, 한국교회에는 성경을 스스로 탐구했던 전통이 오늘날 외형과 숫자를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얼마나 이어지고 있는지를 각각 돌아보게 했다.

“AI 시대에도 교회는 무엇인가”… 요한복음에서 찾은 본질

이날 발표를 맡은 한영숙 목사(좌)와 이길주 교수(우)
(Photo : 기독일보) 이날 발표를 맡은 한영숙 목사(좌)와 이길주 교수(우)

이날 토론회는 애국가 제창에 이어 퀸즈중앙감리교회 담임 이요섭 목사의 개회기도로 시작했다. 한영숙 목사는 토론에 앞서 ‘요한복음이 전하는 교회의 본질’(요 1:14)을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이날 토론의 신학적 서문을 열었다.

한 목사는 최근 ‘페이지 처치(Page Church)’라는 표현을 접한 경험을 먼저 소개했다. 한 사람이 매일 한 페이지씩 자신의 묵상이나 명상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이를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접한 뒤 AI와 로봇의 시대에 과연 무엇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교회는 시대에 따라, 민족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텍스트이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컨텍스트다. 그렇다면 성경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요한복음에는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도 바울의 서신과 마태복음 등에는 교회라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지만, 이미 여러 교회가 존재하고 있던 후대에 기록된 요한복음에는 오히려 이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당시에도 사람들이 ‘교회’라고 하면 이미 어떤 모습의 종교집단을 떠올렸을 것”이라며 “어쩌면 요한은 교회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러 종교단체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선언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았다.

한 목사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는 것이 교회”라며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크냐 작으냐, 건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본질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요한복음이 말하는 교회의 ‘영광’을 부활과 연결했다. 그는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지만 그 죽음을 이기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며 “교회는 죽음을 이긴 부활의 생명이 증거되는 곳이고 그것이 없다면 교회로서 존재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말씀도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핵심으로 제시했다.

한 목사는 “은혜는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고, 다시 말하면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며 “나도 용서받은 자이고 너도 용서받은 자라는 것을 경험하며 서로를 용서하는 사랑이 나타나는 곳이 교회”라고 말했다.

교회의 본질을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믿음의 눈이라고도 했다. 한 목사는 “믿음의 눈을 잃고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 인간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하기 시작하면 교회의 본질은 보이지 않게 된다”며 “교회는 무엇을 해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소금이고 빛”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회의 본질을 지켜가는 일, 다시 찾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이후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살피고 오늘의 교회를 진단하는 토론 전체의 기준이 됐다.

“터보다 뜻이 먼저였다”… 美 신앙공동체가 사회와 국가로

미국사를 전공한 이길주 교수는 미국 초기 역사의 핵심 흐름을 ‘신앙공동체-사회공동체-국가공동체’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먼저 일반적인 인간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터-사람-생산-소유-목적-지속성’이라는 흐름으로 풀었다. 살아갈 땅이 생기고 그곳에 사람이 모이며, 생산과 소유가 발생하고 이후 공동체의 목적과 이를 후대까지 이어가려는 지속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땅과 소유를 먼저 앞세운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갈등과 전쟁을 낳기도 했다며, 같은 땅 안에서 ‘누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인가’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배제와 폭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17세기 북미로 건너온 필그림과 청교도들은 이 순서를 뒤집었다고 봤다.

이 교수는 “1600년대 초 이 순서를 확 뒤바꾼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목적을 먼저 세웠다”며 “공동체의 탄생은 목적에서 시작돼야 하고 그 목적은 한 시대에 끝나지 않는 영원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목적을 믿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다음에 터와 생산과 소유가 따라오는 것”이라며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그 신앙공동체에 기초해 사회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다시 그 사회공동체가 확장돼 국가공동체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그림과 청교도 사이의 차이도 분명히 했다. 필그림은 영국 국교회와의 완전한 결별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청교도는 영국 국교회 안에서 개혁의 가능성을 남겨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자신의 신앙적 목적을 먼저 세우고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필그림은 영국 국교회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면 나머지를 끊어야 한다고 봤고, 청교도는 국교회 안에서도 목적과 사명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차이는 있지만 ‘같은 목적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영원성을 향해 가자’는 점에서는 공통됐다”고 말했다.

“육지에 내리기 전 먼저 약속”… 메이플라워 서약의 공동체 정신

이길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이길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미국 초기 신앙공동체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을 들었다.

메이플라워호를 탄 이들은 목적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66일간 혹독한 대서양 항해를 거쳐 뉴잉글랜드에 도착했다. 그러나 긴 항해를 끝내고 육지를 눈앞에 두고도 곧바로 배에서 내려 각자의 삶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66일 동안 바다에 있었다면 육지가 보이는 순간 당장 뛰어내리고 싶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들은 내리기 전에 먼저 모여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고 이 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합의하고 내려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합의가 없었다면 각자 흩어져 말뚝을 박고 자기 땅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며 “먼저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될 것인지 정한 것이 메이플라워 서약”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메이플라워 서약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하고 기독교 신앙을 널리 전파한다”는 목적과 함께 하나님과 서로 앞에서 하나의 시민적 정치체를 이루겠다고 서약한 대목을 강조했다.

그는 “모래밭에 내려와 거기를 교회로 본 것”이라며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서로 앞에서 엄숙하게 서약하고 자신들을 하나의 시민적 정치체로 결속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저쪽에 있고 시민사회가 이쪽에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교회가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있다는 연결성이었다”고 설명했다.

메이플라워 서약에 등장하는 법과 제도의 의미도 조명했다. 이 교수는 “힘 있는 자, 능력 있는 자, 많이 배운 자, 목소리가 큰 자의 순서대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며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위해 법과 조례, 헌장과 관직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와 공공의 유익”이라며 “그것을 위해 만든 질서이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초기 필그림과 청교도 공동체 자체를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원주민과의 충돌과 폭력, 강한 사회통제, 이후 마녀사냥으로까지 이어진 어두운 역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필그림 공동체가 완전했다는 뜻은 아니다. 폭력적이고 통제적인 공동체였고 이후 마녀사냥까지 나왔다”며 “그러나 하나만큼은 공동체를 신앙고백에 기초하지 않고 만들어 놓으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10년 뒤 존 윈스럽이 아라벨라호에서 전한 설교를 통해 청교도 공동체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윈스럽이 성직자가 아니라 법률가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변호사는 사회의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사회에 대한 책임과 소명의식을 신앙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굉장히 독특한 역사적 전개”라며 “앞선 메이플라워 서약이 법률적인 문서라면 윈스럽이 아라벨라호에서 한 것은 설교였다”고 말했다.

윈스럽이 제시한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됐음을 고백하고 ‘사랑의 끈’으로 서로 결속된 공동체였다. 이 교수는 윈스럽의 설교를 소개하며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여유와 넉넉함을 기꺼이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온유함과 겸손함, 인내와 관대함으로 친밀하게 교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자신의 것으로 삼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수고하고 견뎌야 한다는 공동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가 교회였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목조선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라며 “땅에 내려가 교회를 지어야 비로소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윈스럽이 공동체의 ‘난파’를 막기 위해 미가서의 말씀을 제시한 점도 소개했다. 이 교수는 “당시 배가 난파되면 모두 죽는 것이고, 그들은 공동체가 난파하면 자신들뿐 아니라 후손까지 잃는다고 봤다”며 “그 난파를 피하는 길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동체 의식이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라는 비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직 제대로 도착하지도 않은 땅에서 ‘모든 사람의 눈이 우리를 바라볼 것’이라는 고백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느냐”며 “그것은 성서에서 나온 것이다. 뜻이 먼저 존재하고 그 뜻이 언약의 공동체를 만들며, 그 책임을 함께 감당할 때 공동체가 언덕 위의 도시가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미국의 ‘정교분리’도 신앙과 사회가 서로 무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정교분리는 특정 종교를 일으켜 세우거나 특정 종교를 억압하기 위한 법을 국가가 만들지 말라는 의미”라며 “신앙의 영역과 사회공동체의 영역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청교도 신앙에서 독립선언서까지… “성경적 개념과 이성의 결합”

이날 질의응답에서는 미국의 초기 신앙공동체가 훗날 미국 독립과 국가 형성에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두고도 논의가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미국의 역사에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성경의 가르침을 사회와 국가에 적용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이 교수는 “청교도 사상과 미국의 독립사상은 같은 흐름에 있다”며 미국 독립선언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독립선언서에는 ‘우리는 다음의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자명하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 내용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고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받았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앙과 합리성이 한 문장 안에서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독립선언서의 결론 부분 역시 초기 청교도 공동체의 언약적 성격과 연결했다.

이 교수는 “독립선언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를 굳게 신뢰하며 서로에게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걸고 서약한다는 내용이 나온다”며 “이것은 기도이고, 청교도들이 배 위에서 했던 신앙고백과 그 구조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초기 문서에서 ‘하나님’은 등장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이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이 교수는 “예수라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신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반면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보다 넓은 신앙적 언어로 사용될 수 있었다”며 미국의 건국 문서들이 다양한 신앙적 배경을 가진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려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가 가져온 종교’ 이전에 스스로 신앙을 찾아 나서

한영숙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한영숙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에 대한 발제는 당초 발제할 예정이었던 강준찬 목사가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면서 한영숙 목사가 한국교회사의 흐름을 설명했다.

한 목사는 자신이 교회사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2년 전 별세한 남편 고 김종환 목사가 1982년 잡지 ‘한국인’에 기고했던 장문의 글 ‘민족 자각에서 본 한국 교회사의 이해’를 소개했다.

한 목사는 “김 목사가 남긴 자료를 정리하다 이 글을 다시 읽게 됐다”며 “우리가 흔히 생각해 온 한국교회사에 대해 생각을 많이 바꾸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한국 기독교의 출발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한 목사는 고 김종환 목사가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한 시점에서만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을 제시했던 부분을 소개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기존 사회와 사상에 대한 고민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며 중국을 통해 서학을 접했고, 이를 직접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허균 등 조선 지식인의 사례도 언급하면서 이후 유학자들이 중국에서 서학과 기독교 관련 문헌을 접하고 이를 가져와 스스로 연구하면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교회가 먼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와서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며 “처음에는 기독교를 학문으로 공부했지만 성경을 공부하다 신앙이 생겼고, 그 사람들이 신앙고백을 하면서 스스로 교회를 조직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기 한국 천주교 공동체가 외국인 성직자가 없는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세우며 공동체를 운영했던 역사도 언급했다.

한 목사는 이후 천주교 박해가 심화된 과정에 대해서도 고 김종환 목사의 글을 토대로 설명했다. 새로운 학문과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보다 제사 문제와 교황청의 지침에 대한 복종 등이 조선사회의 기존 질서와 충돌하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해석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 민족이 새로운 학문이나 종교를 처음부터 무조건 배척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오랜 유교와 불교의 전통 위에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연구해 온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한국교회사를 선교사의 도래 이후로만 축소할 경우 한국인들이 스스로 기독교를 찾고 연구했던 역사가 가려질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와서 기독교가 전파됐다고만 생각해버리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역사가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린다”며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이미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있었다는 것과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의 노고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구 선교사들이 각각 자신들의 교단을 배경으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교회가 여러 교단과 교파로 나뉘게 된 과정도 언급했다.

한 목사는 “선교사들은 각각 자신들의 교단이 파송한 사람들이었고 그 교단들을 따라 한국교회의 조직도 형성됐다”며 “그 이전에 우리 민족이 새로운 살 길을 찾기 위해 기독교를 스스로 찾으려 했다는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 한 목사는 “미국에서는 신앙의 뜻을 먼저 세우고 그 뜻에 의해 사회와 나라가 만들어졌다면 우리 역사에서도 고려에는 불교, 조선에는 유교라는 사상이 국가의 바탕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며 “그러나 기독교의 뜻에 의해 한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적은 없다는 점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 김종환 목사가 강조했던 ‘민족’의 의미 역시 단순한 혈통 중심의 민족주의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 목사는 “민족의 주체성을 이야기하면 혈통이나 민족주의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김 목사는 기독교 사상의 형성과 배경도 그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의 민족문화가 없었다면 루터의 사상을 이야기하기 어렵고, 라틴 문화권 없이 어거스틴의 사상 형성을 말하기 어려우며, 헬라 문화의 배경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도 달랐을 것이라는 것”이라며 “한국교회 역시 한국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떠나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한국교회의 출발은 성경 연구”… 한글 창제까지 이어진 문제의식

공개토론회 후 뉴드림교회 김남석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공개토론회 후 뉴드림교회 김남석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한 목사가 이날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특징으로 꼽은 것은 ‘성경 연구’였다.

그는 “한국교회는 성서를 연구하는 데서 시작했다”며 “교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직접 성경을 연구했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다 나중에는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민족이 스스로 기독교를 찾았다는 것, 기독교를 찾으러 다녔다는 것, 그리고 그 출발이 성서에 근거했다는 것은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고 김종환 목사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바라본 독특한 관점도 소개됐다.

한 목사는 고인이 글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 시대를 ‘유사한 기독교적 사상’이 나타난 시대로 표현했다며 “임금이 백성을 위해,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든다는 것에서 그런 사상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젊었다면 이 한 문장만 가지고도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교회사를 전공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번 연구해볼 만한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은 ‘풍요와 성공’, 한국은 ‘숫자와 외형’에 치우쳐… 출발점에서 멀어진 교회

두 발제가 끝난 뒤 오늘의 미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어디에 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미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활용해 하나님의 말씀을 사회와 국가에 적용한 측면이 강한 반면, 한국에서는 백성과 민족을 새로운 길로 이끌려는 동기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두 출발점이 오늘 어떤 모습으로 이어졌는지를 물었다.

이 교수는 미국교회와 미국사회의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2차 세계대전 이후를 지목했다.

그는 “2차 대전의 승리에 너무 취해버렸다”며 “어떤 측면에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신의 위치로 미국을 올려놓고 ‘우리가 제시하는 길이 하나님이 제시하는 길’이라는 방향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의 승리뿐 아니라 그 뒤에 풍요가 따라왔고, 거기에 취하면서 교회문화도 달라졌다”며 대형교회 중심의 흐름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 교수는 “미국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최고일 수는 없다”며 “그런 의식이 교회사 속에서 큰 변화 가운데 하나였고 오늘까지도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 화폐에 등장한 ‘In God We Trust’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1950년대부터 화폐에 ‘In God We Trust’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며 “풍요를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그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미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한 목사의 진단은 다시 ‘성경 연구’의 문제로 돌아왔다.

한 목사는 “한국교회의 전통이 성서에 기초를 두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너무 공부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라며 “정말 진지하고 솔직하게 성경을 이야기할 수 있는 풍토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개토론회 후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Photo : 기독일보) 공개토론회 후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그는 과거 고린도서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했던 경험을 들며 말씀을 피상적으로 다룰 때는 문제가 없지만 본문을 삶에 직접 적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성경이 ‘나 자신’을 향해 말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목회자는 자기 교인들이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를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깊이 공부하고 그 신앙고백을 설교로 내놔야 한다”며 “그러려면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가장 잘해야 하는지를 다시 물었다.

한 목사는 “이 시대에는 교육도 세상이 하고 레크리에이션도 세상이 하고 친교도 세상이 다 한다”며 “성경 하나 하는 것만은 교회가 계속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사람만 많이 모이면 성공이라는 식으로 가는데 과연 그러냐.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면 성공이고 그것이 교회냐”고 반문했다.

한국사회에서 목회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경험도 언급했다.

한 목사는 자신이 1979년 미국에 온 뒤 1980~90년대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목사라는 신분을 사회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가족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이를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얼마나 잃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동시에 성경 연구란 과거의 문장을 오늘에 그대로 옮기는 작업도 아니라고 했다.

한 목사는 “2000년, 3000년 전 기록을 그대로 오늘에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오늘 이 시대에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시대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교회의 ‘언약 공동체’와 한국교회의 ‘성경 연구’라는 서로 다른 역사적 자산을 돌아본 이날 토론회는 결국 교회의 미래 역시 새로운 방법과 외형을 더하는 데 앞서 교회가 무엇인지 다시 묻고 그 본질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