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척 벤들리의 기고글인 '번영복음이 말하는 가장 큰 거짓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The prosperity gospel's greatest lie isn't what you think it is)를 7월 3일 게재했다.
척 벤틀리는 글로벌 기독교 사역인 크라운 파이낸셜 미니스트리의 CEO이며 미국 내 1,000개 이상의 크리스천 뮤직 및 토크 방송국에 출연하는 일일 라디오 방송 '마이 머니라이프'의 진행자,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친애하는 척(Chuck)에게,
최근 미국 교회들 사이에서 부의 축적을 강조하는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이 점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이 이러한 신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제 입장을 변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나요? 크라운(Crown) 사역의 지지자로서, 저는 당신의 바른 메시지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신실한 청지기(Faithful Stewardship)' 올림
'신실한 청지기'에게,
성경은 번영 복음의 가르침을 지지하지 않으며, 그 정반대의 극단인 빈곤 복음(poverty gospel) 역시 지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 세상의 보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동시에 부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거나 부자를 탐욕스럽고 악하다고 정죄해서도 안 되죠.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많든 적든, 그 물질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5:14-30). 성경적 기준은 우리의 재정적 선택에 있어 주님께 신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그분의 소유이며, 우리는 잠시 맡은 청지기일 뿐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신이 지적했듯,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늘이 아닌 땅에 보물을 쌓는 일로 신앙의 초점을 옮기고 있습니다.
돈에 관한 최후의 경고
라오디게아 교회가 존재했던 것은 무려 2,000년 전의 일이지만, 그 교회의 영적 상태는 놀랍게도 오늘날의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합니다. 라오디게아 도시는 신약성경의 골로새서 2장과 4장, 그리고 가장 유명하게는 요한계시록 3장에 언급됩니다. 이곳은 로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금융, 직물, 의료 산업으로 명성이 높았다. 주후 60년경 끔찍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이 도시는 로마의 재정 지원을 거절하고 스스로 재건하는 길을 택할 만큼 넉넉했습니다. 그들은 맹렬할 정도로 철저한 자급자족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고, 이러한 번영은 결국 그들의 영적 생활의 형태마저 결정지어 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 예수님은 그 교회를 향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부 자체가 아니었어요. 그릇된 대상을 의지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자급자족에 빠진 그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맹신했고, 주님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처절한 영적 빈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번영 복음이라는 거짓 가르침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입니다.
라오디게아인들과 다를 바 없는 현대인들
재정적 성공은 우리의 신뢰를 주님에게서 우리의 수입, 투자금, 은퇴 계좌, 혹은 소유물로 교묘하게 옮겨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여전히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은연중에 '우리의' 자원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깨닫거나 경외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라오디게아의 믿는 자들을 향한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참된 '부'에 대해 무엇이라 말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riches)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treasures)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골로새서 2:1-4)
바울은 세상적 부의 속임수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영원한 가치를 지닌 모든 풍성함과 보화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참된 부란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들'이라고 말하길 좋아합니다.
골로새서에 표현된,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깊은 우려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세상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정적 자기 의존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에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현세적인 부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그리스도조차 필요 없다고 믿을 지경에 이르렀음을 뼈아프게 목격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책임 있는 청지기로 부름받았다
성경적 청지기 직분이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리자이지 소유자가 아닙니다. 부는 지혜롭게 사용하고, 너무 꽉 움켜쥐지 말며, 관대하게 나누어야 할 소중한 선물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원으로 복을 주실 것인가 아닌가는 핵심 질문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그 자원들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이끌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그분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자기 의존(자급자족)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 때 진정한 위험이 싹틉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은행 계좌 너머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십니다. 무엇이 우리의 애정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요? 우리의 궁극적인 신뢰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의 가장 큰 안도감은 결코 부 자체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 부를 주시는 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우상이 아닌 선물로서의 부
우리는 독립성, 재정적 성공, 그리고 자기 의존을 열렬히 칭송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부, 기술, 오락, 편리함에 유례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불안, 외로움, 빚, 그리고 영적 무기력증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부는 선물이지 신(god)이 아닙니다. 부는 특정한 필요를 채워줄 순 있지만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필요는 결코 채워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축복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더 가까이 이끌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받은 것은 그들이 부유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우리가 재정적으로 너무나 든든하고 안정된 나머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야고보서 1:17)을 주시는 그분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는 비극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