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유세프 목사. ©Christian Post
마이클 유세프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이클 유세프의 기고글인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교회 안의 조용한 신앙 위기'(The silent faith crisis no one in the Church is talking about)를 6월 27일 게재했다. 

이집트 출신의 신학박사 마이클 A. 유세프는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사도교회(Church of The Apostles)의 담임목사이자, 190개국에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리딩 더 웨이'의 설립자이다. 그는 무어 신학교, 풀러 신학교, 에모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5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금 교회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25년 3월, 개신교 출석 교인 2,13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way Research)의 '2025 제자도 현황: 부끄러움 없는 삶(Living UnashamedTM)' 설문조사는 그리스도인의 증인 된 삶과 일상의 제자도에 관해 뼈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조사 결과는 복음주의 교계 내부에 조용하지만 심각한 영적 표류가 일어나고 있음을 폭로한다. 그것은 공개적인 반역이나 저항의 형태가 아니라, 은밀하고 서서히 진행되는 '증인 됨의 퇴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 전반에 걸쳐 일관된 패턴이 드러난다. 개신교 출석 교인의 과반수인 53%는 주변 지인들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답했다. 동시에 42%는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일상에서 영적인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더 나아가 33%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바나(Barna) 그룹의 설문조사 결과다.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전할 개인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력하게 동의'한 기독교인은 단 31%에 불과했다! 

이러한 답변들을 종합해 보면, 이들이 신앙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신앙의 '공적인 표현'이 조용히 축소되고 있을 뿐이다. 믿음은 여전히 온전하고, 예배는 계속되며, 교리는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을 밖으로 선포하는 일,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상의 증언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것은 거리에서의 폭동이 아니라 영혼 안에서의 위축이다. 영혼의 '침묵'이다.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복음을 조용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도대체 이것이 어떤 종류의 제자도란 말인가? 

일요일에는 예수님을 믿고 월요일에는 그분을 숨기는 것이 과연 온전한 기독교 신앙인가? 마음속으로는 그리스도를 안다면서, 정작 입술로는 그분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신자를 어떻게 참된 신자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나를 찬양하는 팬(admirers)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은밀하게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말씀하셨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다. 선택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침묵 속에서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담대하게, 눈에 띄게, 그리고 끊임없이 전하라는 부르심이다. 

앞선 수치들은 불신앙에 대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침묵하는 믿음'에 대한 통계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부르는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확언하고,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며, 성경적 교리를 고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매우 핵심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 

믿음은 존재하지만, 표현은 부재하다. 기독교 신앙을 내면으로는 긍정하지만, 외부로는 철저히 감춘다. 예배 중에는 예수님을 시인하지만, 일상 속에서는 그분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내 삶의 한 구석으로 '격리(compartmentalization)'시키는 것이다. 신앙은 '개인적인 믿음'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갇혀 버렸고, 삶의 공적인 영역은 철저한 '침묵'이 지배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이것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그리스도의 마음은 결코 '침묵하는 증인'을 원치 않으신다 

필자는 성도들에게 복음 선포가 기독교인의 삶에서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종종 상기시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가장 맞닿아 있는, 그분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탄은 가장 증오한다. 

이 영적 현실을 직시하라. 원수가 항상 핍박을 통해서만 우리의 신앙을 잠재우는 것은 아니다. 종종 그는 안락함과 산만함, 그리고 조용한 순응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은밀히 달성한다. 침묵하는 기독교인은 결코 영적으로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다. 침묵하는 기독교인은 곧 '약해진 증인'이다. 입 밖으로 한 번도 선포되지 않은 진리는, 결국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죽은 진리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믿음은 진실하되, 드러나지 않을 때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거짓 교리를 전파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 너무나도 인색하고 미온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들은 믿지만, 말하지 않는다. 예배하지만,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시인하지만, 그분을 세상에 선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믿음과 고백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선언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고백'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일상 속 기독교인의 증거는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가? 

새로운 표준(New Normal): 목소리를 잃어버린 기독교 

오늘날 신자들의 삶을 형성하는 미묘한 문화적 압박이 존재한다. 그것은 노골적인 핍박이 아니라, 은밀하고 조용한 '순응'을 요구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행동하라고 압박한다. 

①타인을 존중하되, 단정적으로 말하지 말 것. ②영적이되, 특정 종교의 구원관을 강요하지 말 것. ③친절하되, 신앙의 선을 분명하게 긋지 말 것. 

그리하여 서서히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예배하고 마음속으로는 그분을 굳게 믿지만, 대화 속에서는 예수님이 철저히 배제되는 기형적인 형태의 기독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교회가 마주해야 할 정직한 질문 

우리는 영적인 정직함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열렬히 사랑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꽁꽁 숨겨두는 분이 되셨는가? 우리의 신앙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고백되는 삶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확인하는 주간 행사가 되어버렸는가? 복음은 그저 속으로만 동의할 뿐, 남들과는 거의 나누지 않는 개인적인 신념으로 전락했는가? 

그리스도인들이여, 만일 그리스도께서 진정 우리 삶의 주님이시라면, 그분은 자기 백성들의 삶 속에 결코 숨겨져 있을 수 없다. '침묵하는 제자'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담대한 증인을 향한 성경적 부르심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해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지 않았다. 그들이 갈등했던 유일한 순간은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때'뿐이었다. 실제로 예수님의 초기 사도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도행전 4:20). 

그들의 안에는 증언의 흘러넘침이 있었고, 진리를 향한 강렬한 충동이 있었으며,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위적으로 짜낸 억지 담대함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덧입은 '공적인 신앙 고백' 말이다. 억지로 짜맞춘 종교 생활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간증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회복될 때, 증언도 돌아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 신자의 삶의 중심에 자리 잡으실 때, 침묵은 불가능해진다. 예수님과의 진짜 만남은 반드시 진짜 선포를 낳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진짜 신앙은 결코 숨겨질 수 없다. 

왜 그런가? 복음은 그저 우리가 믿는 '어떤 관념(something)'이 아니라, 우리가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할 '살아계신 인격(Someone)'이기 때문이다. 

경고: 침묵하는 신앙은 위축된다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영적 원리가 있다. 표현되지 않는 것은 결국 줄어들게 마련이다. 고백되지 않는 것은 결국 약해진다. 공유되지 않는 것은 결국 생명력을 잃고 기계적인 종교 관습으로 퇴색하고 만다. 

그렇기에 침묵은 영적으로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다. 침묵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을 거두어가시기 때문이 아니다. 증언이 사라지면 제자도의 본질적인 생명력 자체가 시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소망: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분의 백성을 부르신다 

하지만 이곳에 여전히 은혜가 있다. 예수님은 침묵하는 제자들을 내다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깨우신다. 그분을 향한 '부끄러움 없는 신앙'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다시 부르신다.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셨듯,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오신다.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은 전혀 변함이 없다. "내 증인이 되라." 

완벽함을 요구하시거나 엄청난 종교적 실적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하고, 선명하며, 용기 있는 일상의 신앙 고백을 원하시는 것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 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속에만 머물러 계시는가, 아니면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선포되고 있는가? 당신의 신앙은 개인적인 위안거리에 불과한가, 아니면 세상을 향한 공적인 선언인가? 그리스도는 그저 일요일 하루의 경건을 위한 분인가, 아니면 매일매일 당신의 입술로 시인되는 분인가? 

세상은 '침묵하는 신자'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상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다. 속으로만 믿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믿음을 담대하게 세상에 외치는 남녀들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선언했듯, "이웃에게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주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의 당연한 의무"다. 

침묵하는 신앙은 결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신 신앙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훨씬 더 위대한 자리로 부르셨다. 

우리의 삶 구석구석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증언하는 그날까지, 세상 앞에서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우리를 부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