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요즘 나는 농부가 다 된 아내와 살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서 친하게 된 통장 집사와 친구가 되더니, 공짜 텃밭을 얻어서 같이 농사짓느라 요즘 정신이 없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텃밭으로 출근해 일을 하고 있을 정도다.
덕분에 각종 상추와 쑥갓, 고추, 오이, 완두콩, 감자, 수박 등 다양한 식물들을 심어서 매일 수확해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2] 상추는 너무 많아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다가 그래도 남아서 주스처럼 갈아서 마시곤 한다. 마트에서 사 먹는 거랑 손으로 가꾼 것들을 직접 따서 먹는 거랑 비교가 되질 않는다. 몇 주 전에는 완두콩을 따와서 쪄먹는 데,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밭에서 따서 쪄주시던 그 맛이 생각났다. 오늘은 이름 모를 빨간색의 콩을 밭에서 따왔는데, 껍질을 벗겨보니 얼마나 이쁜지 신기하기만 하다.

[3] 한 번 밭에 가면 적어도 6시간 정도나 머물다가 오는 이유를 알 듯했다. 귀엽고 사랑스런 손자가 미국에 떨어져 살고 있으니, 매일 물을 주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식물을 마치 손자 보듯 예뻐한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정성 들여 물을 주고 가꾸고 사랑해 주면 그만큼 보상을 해 준다.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4]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유리 교수가 쓴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청림출판, 2026)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교수는 수십 년간 현미경으로 식물세포를 들여다보며 식물의 뿌리와 씨앗 속에서 수십, 수백 번의 계절 내내 길어 올린 삶의 태도를 글로 묘사하고 있다. 관찰만 잘하는 게 아니라 글도 깊이 있고 흥미롭게 잘 쓰는 인재다.
목차만 봐도 구미가 당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5] ‘연잎 우산, 식물이 건네준 설계도’, ‘아름답지 않아도 꽃이다’, ‘한 걸음 늦은 봄도 향기롭다’, ‘송충이는 왜 솔잎을 먹는가?’, ‘맹그로브의 숨구멍’, ‘빛이 사라진 후 시작되는 것들’, ‘담쟁이는 홀로 자라지 않는다’, ‘흙을 떠난 뿌리가 사는 법’ ‘바오밥 나무에게 배우는 느림의 미학’, ‘포충낭 속 작은 우주’ 등 대부분이 놓치고 있는 식물에 대한 깊은 의미와 삶의 교훈에 대한 유익한 글들이 즐비하다.

[6]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자라나지만, 각기 나름대로 제 방식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고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 물론 제 스스로의 힘이나 지혜로 살아내는 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에 따라 순종할 뿐이다.
세상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살피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하나씩 알아갈수록 신비롭고 광대한 세계를 설계하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7] 식물을 바라보며 문득 사람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씨앗이 땅속에 묻힐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생명이 움트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다루신다. 기다림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식물을 통해서도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을 배우게 되니 너무 좋다.

[8] 우리는 꽃이 피는 순간만 주목하지만, 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꽃도 열매도 오래가지 못한다. 새순이 올라온 뒤에는 하루에 수십 센티미터씩 자라기도 하며, 몇 주 사이에 수 미터 이상 성장하는 대나무도 4~5년 정도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죽은 듯한 그 기간에 모소 대나무는 땅 위가 아니라 땅 아래에서 정신 없이 자란다. 사방으로 뿌리를 뻗으며 거대한 지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9] 이런 뿌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하루빨리 이름을 내고 높아지려는 이들이 많다. 높은 성장은 깊은 뿌리를 요구한다는 진리를 식물을 통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누구와 경쟁하지 않는다. 상추는 상추대로, 고추는 고추대로, 오이는 오이대로 자란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창조주가 의도하신 모습대로 자라 열매를 맺어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

[10]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여 시샘하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행복이란, 더 많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충실하게 자라가는 데 있다. 오늘도 텃밭의 작은 식물들은 말없이 그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이 놀라운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볼수록, 그분을 향한 감사와 경외심도 함께 자라남을 절감한다. 우리 하나님, 쵝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