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며칠간 ‘사극’(Historical Drama)에 푹 빠져 있었다. 새벽 4시까지 시청한 날도 있었다. 사극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선 시대를 넘나드는 ‘인간사’의 통찰과 보편적 가치를 보여준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권력에의 욕망, 가족 간의 사랑, 정의와 불의의 대립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진리이다. 난세 속에서 선조들이 당한 힘겨운 생활상과 갈등과 다툼의 과정들을 통해서 얻는 삶의 지혜와 교훈이 있다.
[2] 나는 TV를 보더라도 현대의 드라마는 잘 보지. 않지만 사극은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에 시청한 사극은 “뿌리 깊은 나무”이다. 이 드라마는 국가의 뿌리는 결국 ‘백성’이며, 그 뿌리를 깊게 만드는 자양분은 ‘교육과 소통(한글)’임을 강조한다.
우선 당시 양반이 아닌 천민들의 힘겨운 삶을 보면서 “오늘의 나는 너무도 풍성한 자유를 맛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3] 여전히 빈익빈 부익부의 차별화가 존재하긴 하지만, 과거 조선 시대에 비하면 이건 정말 천국과 마찬가지인 행복을 만끽하는 것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지금도 하루 세 끼 먹지 못하는 최빈자(最貧者)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입고 싶은 것 마음껏 입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만족을 누리지 못한 채 자기보다 더 좋은 환경에 태어난 이들을 시샘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이들이 있다.
[4] 또 하나 깨달은 점은 우리가 지금 너무도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글 창제와 반포와 대중화 과정에 있어서 얼마나 큰 장벽과 반대가 있었는지를 감잡을 수 있었다. 그 일에 있어서 세종대왕의 고민과 갈등이 얼마나 컸을지도 미루어 짐작이 갔다.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의 영향 아래서 약소국인 조선이 한자가 아닌 자기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5] 지도자 한 사람의 집념과 의지가 후대에 미칠 영향이 지대함을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특히 영적 지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이 불신 세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비록 소수이긴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친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덩달아 효과적으로 잘 전해질 것이다.
[6] 하지만 기독교인 한두 사람이나 영적 지도자 한두 사람의 문제점이 매스컴을 타게 되면 삽시간에 기독교나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비난이 쏟아짐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전받은 점은 연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맡은 역할을 너무나 잘 감당하더라는 점이다. 역시 연기의 챔피언들은 다 TV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사실이 아닌 내용도 사실처럼 연기를 한다.
[7] 드라마 속 허구를 사실처럼 그려내는 연기자들의 열정과 진지함은, 역설적으로 진리를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깊이 되돌아보게 한다. 가짜를 진짜처럼 말하고 연기하는 이들의 열정과 간절함보다, 진짜를 경험하고 소유하고 있는 우리의 뜨거움과 확신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뼈아픈 자성(自省)의 깨우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우리의 모습이 세상 연기자들의 모습보다 못하단 게 말이 되겠는가?
[8]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한글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 세종대왕처럼, 그리스도인과 영적 지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세상이 읽는 하나의 ‘살아있는 복음’이 된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그 속에 담긴 소명에 집중하며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
TV 속 재능인은 ‘연기자’(Actor)이고,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증인’(Witness)이다.
[9] 이제 우리는 화면 속의 감동을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진리의 증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삶이 곧 세상에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임을 기억하며, 연기자보다 더 뜨거운 열정과 진심과 간절함으로 복음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