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한인학회(ICKS)가 허드슨연구소,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공동 주최한 연례회의에서 북한의 납북과 초국가적 탄압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30일 워싱턴 D.C. 허드슨연구소에서 열린 ‘2026년 한미동맹의 도전’(Challenges to the US-ROK Alliance in 2026) 회의에서 다양한 북한인권 관련 주제들이 다뤄진 가운데 오전 첫 패널은 ‘납북과 초국가적 탄압’을 주제로 진행됐다. 조지 허친슨(George Hutchinson) 국제한국학저널(IJKS) 편집장이 사회를 맡았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제이 박(Jaewoo Jay Park), 그렉 스칼라튜(Greg Scarlatoiu) ICKS 회장 겸 HRNK 대표, 아만다 모트웨트 오(Amanda Mortwedt Oh) ICKS 연구원이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기자와 레이먼드 하(Raymond Ha) ICKS 연구원이 참여했다.
이날 패널은 북한 납북 문제를 단순한 과거사나 인도주의 사안으로만 보지 않고, 피해자 가족의 현재적 고통, 북한 정보기관의 조직적 개입, 국제법상 책임 추궁 가능성, 향후 한미일 공조의 과제로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제이 박은 첫 발표에서 ‘납북: 피해자 중심 접근’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발표에서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 세대를 넘어 겪는 고통을 알리는 한편, 피해자 중심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제이 박은 한국 사회의 낮은 관심과 남북 대화에서 납북 문제가 충분히 제기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같은 문제가 반복돼 왔지만 해결된 사례가 많지 않아 한국 대중의 관심도 낮아졌다”며 “미북 대화가 다시 열릴 경우 한국과 일본의 납북 문제를 함께 의제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표에 나선 그렉 스칼라튜는 ‘납북: 가해자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주제로, 납북을 북한 정보기관의 국가 주도 공작 차원에서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외국인을 납치한 목적이 단순한 우발적 범죄나 개별 사건이 아니라, 공작원 훈련과 신분 도용, 해외 작전 수행을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이었다고 설명했다.
스칼라튜 대표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의 신분이 북한 공작원에게 이용된 사례를 언급하며 “북한은 납북을 작전상 신분 확보와 공작원의 해외 이동성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의 해외 납북은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됐으며 국가에 의해 정당화됐다”며 “이 문제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반인도범죄로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납북 문제가 북한 인권과 안보를 분리해서 볼 수 없게 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봤다. 납북 피해자들은 북한 정보기관 입장에서 외국어와 문화, 생활방식, 신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이들의 생사와 소재를 은폐해 왔다는 설명이다.
사회자인 허친슨 편집장은 스칼라튜의 발표를 두고 “피해자 문제를 가능하게 한 작전 구조와 정보기관, 국가 주도 메커니즘을 보여준 발표”라며 “피해자들의 운명을 은폐하는 과정까지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발표자인 아만다 모트웨트 오는 납북을 국제법적 위반 차원에서 분석했다. 그는 자신이 개인 자격으로 발표한다고 전제한 뒤, 북한의 납북이 국제인권법, 국제형사법, 국가책임의 교차점에 놓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오 연구원은 “북한의 납북은 현재도 계속되는 반인도범죄이며, 개인 형사책임과 국가책임을 동시에 발생시킨다”며 “전통적 집행 수단에는 한계가 있지만 보편관할권과 민사소송은 부분적이나마 의미 있는 책임 추궁 경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납북 문제를 6.25 전쟁과 전후 국군포로·민간인 미송환 문제, 1970년대 이후 일본·한국·루마니아 등 외국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납북, 최근 선교사 납치·억류 문제로 나눠 설명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송환되지 못한 국군포로들이 북한에서 강제노동과 사상교육을 겪었고, 그 자녀들까지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 연구원은 북한의 납북을 국제법상 ‘강제실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제실종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한 뒤 구금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를 숨기는 경우를 말한다”며 “북한 납북 피해자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법의 보호 밖에 놓였다”고 했다.
또 북한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당사국이라는 점을 들어, 납북은 신체의 자유와 자의적 구금 금지, 법 앞의 인격 인정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일 뿐 아니라, 외국 영토에서 민간인을 데려간 주권 침해이자 내정불간섭 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책임 추궁 방안으로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사법재판소(ICJ), 국내 민사소송, 보편관할권이 거론됐다. 오 연구원은 ICC 회부의 경우 북한이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회부가 필요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이 현실적 장애라고 봤다. ICJ 역시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통로가 될 수 있지만 국가 동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국내 법원을 통한 민사소송과 보편관할권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그는 “판결 집행이 어렵더라도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법적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보편관할권은 이런 범죄가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원칙을 유지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문제의 핵심은 법 원칙만이 아니라 납치된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아직도 답을 기다리는 가족들”이라며 “효과적인 대응은 법적 도구와 피해자 중심 접근을 함께 통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에서는 반복돼 온 문제 제기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도널드 커크 기자는 납북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들어왔다”며 “그런데 결정적 전환점이나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커크 기자는 요코타 메구미 사건, 대한항공기 납북자, 한국전쟁 국군포로, 납북 어부, 일본과 한국 해안에서 납치된 피해자들을 언급하며, 이들의 문제가 남북 화해나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이 문제를 알고 있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질문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도 제한적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수십 년 만에 가족이 며칠 동안만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방식은 진정한 화해가 아니라며, 북한에 더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레이먼드 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세 범주로 나눠 분석했다. 첫째는 북한 내부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둘째는 북한 밖에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셋째는 북한 밖에서 외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인권 침해다. 그는 이날 주제인 납북 문제가 세 번째 범주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 연구자는 “납북 문제는 피해자 가족과 지역사회에 계속되는 눈에 보이는 영향을 남긴다는 점에서 다른 북한 인권 문제와 구별된다”며 “이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고, 외교적 노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서는 북한 납북 문제를 더 이상 반복적 문제 제기나 의례적 행사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스칼라튜 대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와 각종 구금시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매년 모여 행사를 하고 유엔에서 논의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실제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납북 피해자 가족들에게 생사 확인과 진실 규명을 포함한 구체적 결말을 제공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오 연구자는 책임 추궁과 피해자 송환이 반드시 서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그는 “책임 추궁은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며 “한미일 3자 또는 다자 차원의 고위급 관여,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에서의 의제화, 제재와 증거 수집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서는 통일 이후 전환기 정의와 미국 의회의 역할도 거론됐다. 데이비드 맥스웰은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을 전제로 한 책임 추궁과 사회 안정의 균형 문제를 제기했고, 오 연구자는 “전환기 정의는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며 증거 기록 축적과 진실 규명 절차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스칼라튜 대표는 북한인권법 재승인과 관련해서도 “미국 시민이라면 지역구 의원들에게 북한인권법 재승인의 중요성을 설득해야 한다”며 “한국군 포로, 억류 선교사, 일본인 납북자, 외국인 납북자, 한국인 납북자는 모두 연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일 3자 공조가 북한 인권 의제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