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로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전해지는 말도 있다.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그분은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2] 또 그는 이런 말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기독교는 개보다 못하다.”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기독교인은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오늘날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현실을 보면, 이런 말들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3] 이 말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기독교인이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정신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결국 이 말들은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 기독교가 원래 모습에서 많이 멀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개독교’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4] 물론 이런 표현은 지나치고 불공정한 면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교회의 권위적인 모습, 돈을 중시하는 태도, 위선적인 행동, 그리고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삶이 사람들에게 실망을 준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다.

[5] 본질 그 자체가 문제이다.
기독교는 원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냥 종교 이름이나 소속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배는 드리지만 삶은 바뀌지 않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행동은 세상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

[6] 그래서 이런 비판의 말들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교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우리는 그 거울을 보면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독교의 핵심은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예수님은 섬기라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섬김 받으려고 할 때가 많다.

[7] 예수님은 낮아지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높아지기를 원한다. 이 차이가 바로 사람들이 느끼는 거리감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커질수록, 간디나 쇼 같은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변화가 필요하다. 교회가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8] 전쟁 중에 한 병사가 겁을 먹고 비겁한 행동을 했다. 그런데 그 병사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폴레옹은 그 병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삶을 바꾸라.”
이 말의 핵심은 단순한 꾸중이 아니라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라는 강한 요구이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은 용기와 책임, 명예를 상징한다.

[9] 그런데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비겁하게 행동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그에 합당한 삶이 따라야 한다.
화려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름이 아니라 삶으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교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다시 기독교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