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예수님을 믿고 받은 복 중 하나는 “말씀 묵상”입니다. 목회 초기에 말씀 묵상을 배운 것이 제 목회와 설교, 그리고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마음의 정원을 가꾸고 영혼을 돌보는 데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묵상(默想)”은 한자로 ‘잠잠할 묵(默)’과 ‘생각할 상(想)’의 합성어입니다. 묵상의 ‘묵(默)’은 말을 멈추고 고요히 침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想)’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묵상(默想)할 때 ‘상(想)’이라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목(木)’, ‘눈 목(目)’, ‘마음 심(心)’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나무를 눈으로 자세히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바라보고 주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음 심(心)’이 더해져, 눈으로 본 것을 마음에 담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묵상이란 침묵 가운데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더 깊이 살펴보면 ‘나무 목(木)’에는 십자가(十字架)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묵상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결국 십자가(十)에 이르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묵상은 영어로 ‘Meditation’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메디타리(meditari)’로, “깊이 생각하다. 되새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묵상은 소가 음식을 먹은 후에 다시 꺼내어 ‘반추(反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Meditation(묵상)’과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가 ‘Medicine(약)’입니다. 말씀은 영혼의 약입니다. 약이 몸에 스며들어 병을 치유하듯이,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이 우리 영혼에 스며들어 치유합니다. 이 단어의 어근인 라틴어 ‘메데리(mederi)’는 ‘치유하다’는 뜻입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이 치유를 경험합니다. 왜 성경은 말씀 묵상을 강조할까요? 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할까요(시 1:1-3)?
첫째, 영혼은 묵상(默想)하는 것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자신이 먹는 것으로 자랍니다. 몸이 음식을 먹고 자라듯이, 영혼은 영적인 음식인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잘 소화하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은 읽은 말씀을 소화하는 과정입니다. 읽은 말씀이 우리 존재 속에 스며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는 데서 멈추면 말씀이 머리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암송하고 깊이 묵상할 때, 머리에 있던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옵니다. 묵상이 깊어질수록 말씀이 우리 존재 속에 스며들어 내면화됩니다. 나아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씀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천천히 반복해서 음미하는 것입니다. 진리 앞에 서서 조용히 내면을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을 깊이 오래 숙고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영혼은 점점 더 깊이 성장하게 됩니다.
둘째, 영혼은 바라보는 것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은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소망이 넘쳐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잠잠히 바라본다는 것은 곧 집중을 의미합니다. 섬세한 주의력을 의미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산만함입니다. 산만함은 불안과 초조를 낳고, 조급함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묵상할 때 우리는 집중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의력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 깊이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볼 때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십니다(롬 8:29).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길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통해 그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깊은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복과 머묾을 통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말씀을 읽지만, 나중에는 말씀이 우리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말씀을 붙잡지만, 나중에는 말씀이 우리를 붙잡습니다. 깊은 묵상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뿌리가 얕으면 쉽게 흔들립니다. 얕고 피상적인 삶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깊은 묵상을 통해 자란 영혼은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묵상하며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묵상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더 깊이 머물게 하십시오. 조용히 말씀 앞에 머무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치유되고, 다시 살아나며,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조용한 묵상 속에서 당신의 영혼을 새롭게 빚고 계십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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