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부활절이 가까워온 가운데, 남가주 한인교회들은 그리스도가 걸어간 수난의 길을 묵상하며, 고난의 길로 걸어가신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고난주간 특별집회로 모이고 있다.

가상칠언을 살펴보거나, 십자가 사건을 있던 그 주에,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돌아본다. 매년 찾아오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반복하다 보면, 처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깨달았을 때 받았던 감격으로부터 어느새 멀어져,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더이상 자신의 삶에 연결되지 않은 채, 종교적 상징, 구호로만 남게 된, 화석화된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부활절을 앞둔 이 기간은 화석화된 신앙을 부수고, 새로워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지난 3월 30일 월요일 박은성 목사는 고난주간 특별 새벽예배에서 겉은 깨끗하고 거룩하나, 속은 텅 비어 있던 예루살렘 성전, 또 그곳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뒤틀린 신앙을 바라보던 그리스도의 그 타들어가는 마음으로부터, 우리 역시 멀어져 있지 않은지 물었다.

“해롯이 새롭게 레노베이션한 깨끗한 성전, 그런데 그 속은 텅 비어 있는,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는 없는 그 성전을 바라보시며 불쌍히 민망이 그 속이 타 들어가는 아픔을 느끼셨다. 우리 교회를 보면서 내 심령을 바라보면서, 내장이 찢어질 것 같은, 타들어가는 마음이 있냐는 생각이 든다. 제가 영락에서 맞는 열 번째 고난기간인데, 제 안에 이 타들어가는 마음이 없는 게 너무 불쌍하다. 주님이 우리 오셔서 보실 때, '너희들의 심령이 깨끗하구나.' , '교회가 너무너무 깨끗하구나. 온전하구나.' 그러실까?"

박은성 목사(나성영락교회).
(Photo : 나성영락교회) 박은성 목사(나성영락교회).

나성영락교회는 ‘그 은혜’라는 주제 아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십자가에 부활하시기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깨끗하게’(마 21:12-13), ‘기쁘시게’ (막 12;43-44), ‘잠잠하게’(눅 22:1-2), ‘낮아지게’(요 13:13-15), ‘사랑하게’ (요 19:28-30), ‘기다리게’(마 27:59-61)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나누고 있다.

첫째 날 박은성 목사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첫번째 사건, 성전정화 사건을 묵상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역사는 첫번재는 깨끗하게 하시는 역사, 두번째는 나로 하여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역사, 세번째는 침묵 중에 묵묵하게 하시는 역사, 네번째는 낮아지게 하시는 역사이며, 사랑하게 하는 역사이며, 오래 기다리게 하는 역사이다.”

그는 성전정화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성전 환전상과의 결탁해 성전과 제사를 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에 대해 경고했다.

“예루살렘은 유월절을 지키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2백만명이 모였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우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예루살렘 성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 성에서 마치셨다. 예수님의 사역의 자리는 갈릴리였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성전을 향해 있었다. 십자가를 앞두고, 그 성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던 본래 성전의 모습을 상실했다.”

“예루살렘에 갈 때 유대인들은 성전세를 내야했는데, 환전상들을 통해 환전 수수료의 이윤이 나오게 했다. 그 일을 대제사장이 가져갔고, 엑스트라 수입이되었다. 또, 제물을 드릴 때,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가축만 통과시켰다. 제물을 판매하고 남는 마진을 제사장들이 가져갔다. 예수님이 그 장면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매매상들과 환전상들을 내쫓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고난주간 첫번째 날 월요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신 일이다.”

그는, 거룩함과 정결함이라는 명분을 위해 것이 사실상 가장 부패한 것이었다는 가치 전도에 대해 경고했다.

“대제사장들, 유대지도자들이 묵인하고 지지했던 매매상들과 환전상들은 거룩함과 정결함을 위해서 거기 있던 사람들이었다. 깨끗한 화폐, 깨끗한 제물.. 예수님 보시기에는 가장 더러운 것이었다. 그들이 볼 때는 가장 깨끗하고 가장 정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더러웠다.”

박은성 목사는, 마태복음 5장 3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를 언급하며, 이와 대조적으로 대제사장들은 심령이 깨끗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마가복음 1장, 문둥병자 치병 사건에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표현에서, 헬라어 ‘카타리조- καθαρίζω’(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다, 죄악을 씻어내다)가 사용된 점을 언급하며, “그들은 저의 심령을 고쳐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우리가 혹 기적적으로 육신이 고쳐진다고 해도, 수술을 통해 완치된다고 해도 심령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그 병은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삶이 정화되지 않으면 질병은 언제라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1500년 대 유럽의 교회가 권력과 정치와 결탁된 부패한 곳이 되어, 성직을 매매하고, 사치와 비리, 음행과 불륜에 깊이 빠졌었다며, 그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한 가지를 향한 루터의 외침에 대해 언급하며, 첫째날 설교를 마무리했다.

“1500년대 유럽의 교회는 강력한 권력자들의 정치의 장이되었다. 성직도 돈으로 사고 팔고, 사치와 비리와 음행과 불륜에 깊이 빠졌다. 은혜를 돈으로 사려 했다. 깨끗함을 돈으로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핵심은 Sola Gratia. 오직 은혜로만이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과 손길이 우리 삶에 강권적으로 역사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