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갑 시스코프 대표
(Photo : 기독일보) 여인갑 시스코프 대표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카운트다운을 한다. 수험생의 D-day,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의 날짜 세기, 혹은 새해를 기다리는 제야의 종소리까지. 무언가를 세는 행위는 단순히 시간이 흐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끝에 맞이할 대상에 대한 간절함과 준비를 의미한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아주 특별한 카운트다운이 있다. 바로 오메르 계수(Counting the Omer)이다.

오메르의 기원: 보리 한 단에서 시작된 여정

오메르(Omer)는 히브리어로 단(sheaf), 즉 곡식 뭉치를 뜻하는 단위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둘째 날부터 보리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바쳤고, 그때부터 정확히 7주, 즉 49일을 세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레위기 23:15-16)

이 50일째 되는 날이 바로 칠칠절이다. 농경 사회에서 이는 수확의 기쁨을 의미했지만,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애굽이라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 십계명을 받기까지의 영적 성숙 기간을 상징한다.

단순히 몸만 빠져나온 출애굽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광야의 학교 시간이 바로 이 49일의 카운트다운이었던 셈이다.

신약의 완성: 십계명에서 성령으로

이 역사적 리듬은 신약에 이르러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미술 시간에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물감을 찍어내는 것처럼 성경의 구약(그림자)과 신약(실체)이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도안처럼 서로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는 이를 예표와 성취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한 구약의 유월절(Passover)과,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영생을 얻음.

광야에서 율법을 기다린 오메르 계수와, 부활 후 승천하시기까지,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는 50일.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 받음과,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 성령님 강림하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50일째에 돌판에 새겨진 율법을 받았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50일째에 마음비석에 새겨진 성령의 법을 받았다. 오메르 계수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을 모실 만한 정결한 그릇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영적 산고의 시간이다.

현대 이스라엘의 풍경: 스마트폰 속의 "오늘의 오메르"

유대인들은 오메르 계수 기간을 성찰의 시간으로 보내며 다음을 전통적으로 금한다.

 * 결혼식 및 축제 금지: 개인의 기쁨보다 공동체의 회개에 집중한다.
* 이발 및 면도 금지: 외모를 단장하는 즐거움을 내려놓고 내면을 살핀다.
* 음악과 춤 금지: 감각적 유흥을 멈추고 고요히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한다.
* 새 물건 구입 자제: 새로운 소유보다 본질적인 신앙의 회복에 주력한다.

흥미롭게도 이 고대의 전통은 21세기 이스라엘에서 매우 멋지게 이어지고 있다. 현대 유대인들은 단순히 달력을 넘기지 않는다.

스마트폰에는 '오메르 계수 앱(App)'이 깔려 있고, 일몰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오늘은 오메르의 몇 번째 날입니다"라는 푸시 알림이 울린다. SNS에서는 자신이 오늘 하루 어떤 영적 덕목(인애, 절제, 인내 등)을 묵상했는지 인증샷을 올리며 '오메르 챌린지'를 이어간다.

그들에게 이 카운트다운은 케케묵은 율법이 아니라, "나는 오늘 어제보다 더 나은 영혼이 되었는가?"를 묻는 일상의 체크리스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오메르 계수를 하며 앱 알림을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게 아니라 이 대칭 구조의 리듬 속에 자신을 동기화시키는 행위인 셈이다.

부활절 이후, 영적 슬럼프를 넘어서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부활절의 화려한 축제가 끝나면 영적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곤 한다.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사이의 이 황금 같은 50일을 그저 보통의 날들처럼 흘려 보내고 만다. 하지만 성령강림은 갑자기 일어난 우연이 아니다. 전혀 기도에 힘쓰며 마음을 합쳐 기다렸던 계수함 끝에 임한 필연적 사건이다.

이번 시즌, 우리도 나만의 '오메르 계수'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 알람 설정: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에 '영적 오메르' 알람을 맞춰보자.
* 마음 정돈: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내 안의 잡동사니(미움, 시기, 게으름 등)를 치워보자.
* 디지털 디톡스: SNS와 미디어 사용을 줄여 영적 소음을 차단하고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춘다.
* 소비의 절제: 쇼핑 앱 알림을 끄고, 불필요한 지출 대신 그 비용을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 관계의 교정: 서먹한 이웃에게 먼저 따뜻한 인사를 한다.

부활의 기쁨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어지기까지, 우리에게는 세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을 빌려서라도 좋으니, 매일 밤 우리 영혼의 좌표를 하나님께 맞추는 이 거룩한 카운트다운에 동참해 보면 좋겠다.

그 끝에서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선명한 음성을 듣게 될 소망을 가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