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에서 상처 입으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채찍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형벌 도구입니다. 짧은 손잡이에 여러 가닥의 가죽 끈이 매여 있고, 그 끝마다 뼛조각이나 납덩어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이 채찍은 단순히 때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찢어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채찍이 내리쳐지고 다시 당겨질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갔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가시는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보다 더 깊은 상처는 마음의 고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하며 침을 뱉었습니다. 갈대로 머리를 때리고 뺨을 치며, 옷을 벗겨 수치와 모멸을 안겼습니다. 예수님은 거절과 버림받음의 깊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처를 몸과 마음에 받으셨습니다. 상처투성이가 되셨고,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로마 병사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요 19:34).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상처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경험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상처는 아픕니다. 상처는 피를 흘리게 합니다. 상처가 깊어지면 고름이 생기고, 치유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극심한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께 이토록 혹독한 고난을 허락하셨을까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심판하시고,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그 대가는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사람들과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부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쳤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죽음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부활하신 후에도 상흔(傷痕)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상처에서 인류의 죄를 씻는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입니다. 곧 하나님의 피입니다. 구약에서는 속죄를 위해 짐승의 피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피는 죄를 덮을 뿐,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죄를 완전히 제거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대신 상처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경험하셨기에 상처 입은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치유입니다. 회복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것을 넘어서는 영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요 11:25). 그를 믿는 자는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복된 소망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그 부활의 능력이 성령님 안에서 우리 안에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예수님은 상처 입은 십자가 나무에서 피어난 부활의 꽃이십니다. 또한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고전 15:20). 부활의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우리가 가진 상처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상처 위에 부활의 꽃을 피우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상흔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사랑의 증거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를 품고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로 다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상처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 때문에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끝에서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의 상처 위에도 반드시 부활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길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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