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난 1월 초,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 주례를 했다. 오는 4월에도 결혼식 주례를 한다. 요즘 결혼식은 과거처럼 길게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주례자 없이 사회자가 꼭 필요한 순서만 진행하고 설교나 훈시 없이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기독교 예식엔 대부분 주례자가 설교를 한다. 하지만 길게 설교했다간 난리가 난다. 특히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경우라면 가능한 한 빨리 마쳐야 한다.
[2] 바로 이어서 다른 결혼식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객들에게 따분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례자의 고민이 깊어진다. 길게 하는 건 몰라도 짧게 결혼식 설교를 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내 주례 설교에 꼭 나오는 문장이 하나 있다. R. C. 스프로울(R. C. Sproul)이 말한 내용이다. “In Christian marriage, love is not an option. It is a duty.”
[3] “기독교 결혼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란 뜻이다.
이 문장은 기독교 결혼관의 핵심을 매우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 신학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명령”이란 점이다. 성경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 순종이다.
[4] 감정은 변한다. 오늘은 뜨겁지만 내일은 식을 수 있다. 오늘은 설레지만 내일은 서운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식으면 관계도 끝난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사랑이 식더라도 사랑하라.” 왜냐하면 기독교 결혼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엡 5:25절에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되어 있다.
[5] 여기서 “사랑하라”는 말은 헬라어 ‘ἀγαπᾶτε’로 명령형이다. 즉, 사랑은 선택이기 이전에 순종해야 할 명령이란 말이다.
둘째, 기독교 결혼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covenant)이다.
성경은 결혼을 하나님 앞에서 맺는 거룩한 언약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말 2:14에서 “그는 너와 언약한 아내라.”라고 되어 있다.
[6] 따라서 사랑은 기분이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이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지키기 위한 ‘책임적 사랑’이다.
셋째, 기독교 결혼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는 것이다.
기독교 결혼의 모델은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에베소서 5장은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한다.
[7] 그리스도는 교회가 완전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일 때 사랑하셨다. 그래서 기독교 결혼의 사랑은 감정 중심 사랑이 아니라 희생적 사랑이다.
이 문장을 신학적으로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독교 결혼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거룩한 책임이다.”
[8] 이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독교 결혼에서 사랑은 기분이 아니라 순종이다.” 또는
“사랑할 수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결혼은 ‘헌신’이요 ‘거룩한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신혼 초에는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겠지만, 세월이 가면 그 사랑도 식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이 결핍되거나 고갈되어 같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혼이나 별거를 생각하게 된다.
[9]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은 없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뜨겁게 지속되는 사랑도 없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의무요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의무이자 책임이자 사명이자 헌신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 또한 그분을 사랑하고 주위 모든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원수까지라도. 그런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동반자를 어찌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