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며 심미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그의 산문집 <예찬>에서 예찬의 중요성을 말한다. 예찬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며 예찬하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투르니에는 인생에 대하여, 자연의 변화에 대하여 예찬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새 아침을 예찬하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예찬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찬은 감탄이다.
르네상스를 가장 르네상스답게 살았던 사람이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라고 한다. 귀족으로 태어나 평생 공부만 했던 천재다. 천재적인 머리로 평생 공부만 했던 그는 <900명제(900 Conclusion)>라는 당시 모든 철학을 집대성한 책을 남겼다. 그러나 지오반니 피코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그의 연설문 원고인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연설문이다. 이 연설의 주제 중의 하나가 ‘감탄하라!’이다. 그가 말하는 품격 있는 삶(행복한 삶)의 비밀이 감탄이다.
앙드레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현명한 사람은 감탄하는 사람이라며 감탄을 강조한다. 감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여행하는 목적, 예술을 감상하는 목적이 감탄하기 위함이다. 강의를 듣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것도 경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여행하며 강의를 들을 때 감탄해야 한다.
감탄하는 것은 몸과 마음에 중요한 영양제를 들이키는 것이다. 감탄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진정한 능력자는 사소한 일상에서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가 "자두 하나를 보고도 감탄한다면 당신은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교양이란 하찮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적과 같은 감동을 느끼는 실력이다. 그래서 앙드레지드는 감탄이 최고의 교양이다 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감탄으로 가득 채운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감탄하면 작고 사소한 일이 멋지고 근사한 일이 된다. 우리는 시원한 물 한 잔에 감탄할 수 있고, 아름다운 경치 앞에 감탄할 수 있고, 맛있는 커피 한잔에 감탄의 탄성을 지를 수 있다. 반가운 만남에 감동할 수 있고 멋진 스포츠 경기에 감탄 할 수 있다.
행복하려면 감탄하라!! 행복한 탄성을 지르며 아침 식사 테이블에 앉으라. 행복이 동석할 것이다. 식사하는 내내 감탄의 탄성을 통해보라! 탄성을 발하는 만큼 준비한 아내가 행복하고 함께 먹는 가족들의 입맛이 돋는다. 여행을 하며 감탄하라! 경치에 감탄하고, 음식에 감탄하고, 함께 여행하는 이웃의 말에 감탄하라! 감탄의 탄성을 내뱉는 만큼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감탄은 신앙생활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도 감탄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자신이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연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도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감탄하신 존재다. 하나님의 감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도 하나님을 본받아 스스로에게서 또 이웃에게서 감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설교를 들으며 ‘아멘!’하는 것도 감탄하는 것이다. 아멘!은 거룩한 감탄이다.
목회자에게도 감탄이 필요하다. 감탄하는 목회자가 성공적인 목회를 한다! 성도의 작은 변화, 작은 헌신에 감동받아 감탄하는 목회자가 행복한 목회자다. 하나님이 주시는 작은 위로와 응답에도 눈물로 감사드리며 뜨거운 가슴을 품는 목회자가 은혜 충만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감탄이 없는 목회는 메마르고 무미 건조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감탄이 없는 목회자는 무능하고 불행한 목회자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달라스 지역에서 목회자와 목회자 사모가 참여하는 컨프런스가 있었다. 여러 강사의 강의가 있었다. 모든 강의에서 가장 은혜받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어느 사모님이 있었다. 필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 사모님이 하도 열심히 감탄하고 아멘하는 바람에 덩달아 더 큰 은혜를 받았다. 사모님의 탁월한 감탄 감수성 덕분에 필자의 감탄 감수성도 일깨워졌었다.
텍사스를 떠나며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받았다. 맛나는 바비큐를 먹었다. 그 식사보다 맛난 바비큐보다 더 근사하고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감탄이 가득한 간증이었다. 어느 목사님이 가난한 성도가 켜켜이 쌓은 5000불을 건축(헌금)으로 드린 것을 언급하며 그 집사님은 옥합을 깨뜨린 것입니다라고 했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5000불은 결코 큰 돈이 아니다. 그 교회 성도들 가운데 5000불 이상 헌금할 성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사님의 눈에는 그 어려운 성도의 5000불이 옥합을 깨뜨린 귀한 헌금으로 감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목사님이 더욱 더 존경스럽고 귀해 보였다.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1874년 1월에 그의 평생지기인 아우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고흐는 감탄의 유익을 알았다. 예술가는 평범에서 감탄의 이유를 찾는 사람이고 문학가는 감탄의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이다. 필자도 고흐의 메시지로 이글을 마치려 한다. “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세요!” 오늘도 감탄이 풍성한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행복 설계사 강태광 목사 (World Share USA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