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어떤 왕도 없다... 예수님까지도?(No kings ... including Jesus?)를 27일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많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지난 18일, 미국 전역 곳곳에서 '노 킹(No Kings)'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독재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시위자는 "이봐, 트럼프! 우리 아무도 돈 받고 나온 거 아니야. 그냥 네가 싫어서 나온 거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위대는 민주당 지지자나 좌파들이었다(이 둘은 구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우파에서는 이번 집회를 두고 "민주당의 삐짐 데이(Democrat Sulk Day)"라고 조롱했다. 반면 "노 킹" 집회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모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선을 넘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필자만 그 말이 믿기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상황이 반대라면, 즉 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자신들의 아젠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그들 대부분은 과연 거리로 나왔을까?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노 킹" 집회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이는 그 진영에서는 보기 드문 변화다. 보통 좌파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몇 년 전 월스트리트저널의 제이슨 윌릭(Jason Willick)이 언급했듯, 1780~90년대 프랑스 혁명의 전철을 밟곤 한다.
"프랑스 혁명은 1792년 이전의 온건한 시기 동안 미국의 이상을 본받아 군주제를 타도하려 했다. 그러나 양국의 차이는 근본적이었다. 미국은 개인을 도덕적·정치적 가치의 기본 단위로 보았지만, 프랑스는 집단적 의지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일반의지'라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의지를 제거해야 했다. 그 때문에 미국의 혁명은 헌정 정부로 끝났고, 프랑스의 혁명은 공포와 폭정으로 끝났다."
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의지를 파괴하려는 행위"는 지난 5년뿐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정치적 양 진영 모두에서 일어났다. 프랭크 허버트가 듄의 아이들(Children of Dune)에서 쓴 문장은 이 현상을 정확히 묘사한다:"내가 너보다 약할 때, 나는 네 원칙에 따라 자유를 구걸한다. 그러나 내가 너보다 강할 때, 나는 내 원칙에 따라 네 자유를 빼앗는다."
이러한 자유와 발언권의 약탈은 최근에는 한 개인이 아닌 군중과 정치인들의 조합에 의해 더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프랑스 혁명 정신의 현대적 반복이며, 그 결과 역시 재앙적이었다. 심지어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조차 그 위험을 노래했다. 그들의 곡 The Mob Rules의 가사처럼 말이다: "도시를 봉쇄하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경고하라. 죽음과 어둠이 벽을 무너뜨리며 몰려온다.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유를 빼앗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군중이 지배한다."
이처럼 "군중"이 문화 속에서 다수의 사고방식을 장악하게 될 때, 처칠이 말한 민주주의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는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이지만, 그 외의 모든 체제보다 낫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놓쳤다.
가장 완전한 정치 체제는 '군주제'다.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올바른 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 조건을 충족하는 '단 한 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군주는 '최고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개념이다. "노 킹" 시위대의 구호를 보면서 필자는 알베르 카뮈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라" (로마서 13:1-2) 즉, "노 킹" 운동 속에 흐르는 반(反)권위의 정신은 단순히 정치적 저항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향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사람들도 있다.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초월적 권위를 "하늘의 독재, 일종의 신적 북한"이라 부르며 혐오했다. 또 토머스 페인은 "나의 마음이 곧 나의 교회다"라고 썼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고방식에 공감한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히 선언한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다" (시편 10:16), "여호와께서 왕으로 영원히 좌정하셨다" (시편 29:10)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한다: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디모데전서 6:15)
문제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어떠한 왕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조차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떠올려보라.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에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라'" (누가복음 19:14)
군중은 변덕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를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 했던 사람들이(요한복음 6:15), 잠시 후에는 "우리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라고 외쳤다(요한복음 19:15).
성경은 이 같은 노골적인 거부가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며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그들의 결박을 끊고 그들의 줄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편 2:1-3)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예수님은 빼앗고 지배하는 왕이 아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며 자유케 하시는 왕이시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노 킹(No Kings)"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이라면, 안심하라. 트럼프는 왕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왕이시다. 그러니 언젠가 그 발등상 아래 엎드리게 되기 전에 지금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라.



































